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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슈퍼모델

  • 귀뺨 사건이 있은 뒤로 차은우와 채연은 냉전에 돌입했다.
  • 서로 못 본 척하고 지내니 별다른 마찰도 없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차은우는 채연과 함께 스카이 호텔에 도착했다.
  • 대리석과 유리로 지어진 이 궁전은 K시티에서 가장 호화롭기로 소문난 파티 전용 호텔이었다. 오색 찬연한 빛을 내뿜는 유리창과 금테를 두른 아치형 천장, 눈부시게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이목을 끌었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정계 유명 인사나 성공한 사업가들 정도였다.
  • 채연은 이런 곳에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모여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 그녀는 길게 심호흡하며 긴장을 풀려고 애를 썼다.
  • ‘어쩐지 드레스까지 준비하라고 하더니!’
  • 귀족 파티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더 컸다.
  • 차은우가 지나가자 기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를 내렸다.
  • 차은우가 고개를 끄덕여야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다는 것은 기자라면 다 알고 있었다. 만약 몰래 찍다가 걸리면 사표는 물론, K시티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었다.
  • 한 번도 여자를 대동하고 파티에 참석한 적 없던 차은우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등장하자 기자들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몰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채연은 차은우를 따라 파티 홀로 들어갔다.
  • 그들이 입장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채연에게 쏠렸다.
  • 찬란한 불빛 아래 상앗빛 드레스를 입고 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는 그녀는 마치 도도하고 아름다운 여신 같았다.
  • “저 여자 누구야?”
  • “어떻게 차은우와 함께 등장했지?”
  •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너무 예뻐.”
  •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 차은우가 입장하자 몇몇 정치계 인사들이 다가와서 인사했다. 눈치 빠른 채연은 옆으로 한발 비켜주었다.
  • 그때 정교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채연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 그들은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보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이거 TW에서 주문 제작해야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드레스잖아요?”
  • “맞아요. 그런데 그거 품절 아니었어요? 어떻게 샀어요?”
  • 이런 식의 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채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담담히 대꾸했다.
  • “잘못 보셨어요. 이거 짝퉁이에요.”
  • 그 말에 두 여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몇 달을 눈독을 들이다가 결국 구매에 실패한 드레스인데 그들이 옷을 잘못 봤을 리 없었다.
  • 이때 호텔 직원이 위스키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 채연은 자연스럽게 직원에게서 위스키 한잔을 받아들였다.
  • 이때,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도도한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꺼운 화장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가슴이 깊게 파이는 오프숄더 드레스로 섹시함을 강조했다.
  • 슈퍼모델 한은지는 평범한 모델이 아니었다. 그녀는 HS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외동딸로 K시티에서 이름 있는 재벌 2세였다.
  • 채연에게 다가온 그녀가 경멸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 “당신 누구야?”
  • 이유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는 그녀에게 채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 “그쪽한테 알려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네요.”
  • “너!”
  • 채연의 냉랭한 태도에 한은지의 예쁜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모두의 선망인 그녀가 언제 이런 무시를 받아봤을까!
  • “네가 감히 나한테 그딴 식으로 대꾸해? 너 정말 내가 누군지 몰라?”
  • 채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 “죄송해요. 그쪽이 누군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서요.”
  • 한은지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 그녀는 이미지도 잊은 채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 “영악한 년! 너 차 대표님이랑은 무슨 사이야? 왜 그분이랑 같이 입장한 거지?”
  • 질투에 눈이 먼 여자의 절규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차은우를 쫓아다녔지만 차은우는 한 번도 그녀에게 관심을 준 적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고 그녀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 일도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다른 여자가 그의 팔짱을 끼고 입장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 “아, 그래요? 잘 들어요. 나는….”
  • 채연은 일부러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