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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사칭

  • 곧이어 남자가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 채연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 자신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 불쌍한 토끼인 줄 알고 구했던 놈이 음흉한 늑대였다니 제 무덤을 판 셈이었다.
  •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지옥 같던 시간이 끝이 났다.
  • 그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마지막 의식의 끈을 잡고 그가 말했다.
  • “미안해. 내가 너 평생 책임질게….”
  • 그는 마치 그녀의 향기를 뇌에 새기려는 것처럼 그녀의 목덜미를 깊게 파고들었다.
  • “꺼져.”
  • 채연이 그를 밀치며 차갑게 말했다.
  • 부상을 입은 탓에 그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졌다.
  • 채연은 온몸을 떨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입었다. 떨림이 너무 심해서 단추를 잠그는 것조차 힘들었다.
  • 머릿속은 이미 백지장이 되었다.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첫 경험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 채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남자를 쏘아보았다. 당장이라도 분노가 폭발할 것 같았다.
  • 그녀는 천천히 표창을 집어 들고 남자의 목을 겨냥했다.
  • ‘미친놈! 감히 은혜를 원수로 갚아?’
  • 그녀는 표창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결국 힘없이 내려놓았다.
  • 아까 보였던 반응으로 보아 누군가가 그에게 약을 탄 것이 분명했다.
  • 중독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 ‘그냥 개한테 물린 셈 쳐야지.’
  • 남자가 잠든 틈을 타서 채연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떨리고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 그녀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현장을 벗어났다.
  • 이런 일을 겪고 보육원에 갈 수는 없었다.
  • 그녀는 엉망이 된 기분을 안고 방향을 틀어 학교로 향했다.
  •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본 이가 있었다.
  • 그녀의 대학 동기 안세희였다.
  • 안세희, 카네스 대학 시장 마케팅 학과 4학년. 채연과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동기였다.
  • 오늘 밤 이아영 원장의 호출을 받은 사람은 채연과 안세희 두 명이었다. 채연보다 늦게 출발한 안세희는 우연히 채연이 남자를 구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 채연이 떠난 뒤, 그녀는 살금살금 남자에게 다가갔다.
  • 날이 너무 어두워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라이트를 켰다.
  • 환한 빛을 비추자 남자의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날카로운 인상의 눈썹과 꾹 감은 눈, 차가운 인상의 입술.
  • 하늘이 내린 외모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잘생긴 남자였다.
  • 그런데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 그녀는 다시 자세히 남자를 살폈다.
  • ‘차은우!’
  • 경제 잡지 일면에서 본 적 있는 남자였다.
  • K 시티에서 차은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각종 언론과 잡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고 잘생긴 외모로 가장 인기 있는 솔로 남성에 선정된 인기남이었다.
  • 안세희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그냥 채연의 약점을 잡을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횡재한 기분이었다.
  • 비틀거리며 다급히 현장을 떠나던 채연의 반응을 보면 그녀는 이 남자의 신분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 그리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 사악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 만약 자신이 이 남자를 구했고 남자와 관계까지 했다고 하면 현대판 신데렐라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 게다가 그녀는 처녀도 아니었다.
  • 이런 절호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 채연과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같이 자랐지만 그녀에게 채연은 밉고 싫은 존재였다. 채연은 홀로 빛나는 존재였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심지어 원장 선생님마저 채연을 가장 아꼈다. 안세희는 그런 채연에게 큰 질투를 느꼈다.
  • 언젠가부터 채연은 사격 훈련에 참여하면서 보육원을 떠났고 그 뒤로 그녀와 경쟁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 그런데 국가 대표로 활동하던 채연이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카네스 대학에 편입할 줄이야! 예쁘고 공부 잘하는 그녀는 캠퍼스 인기 스타로 단연 등극했다.
  • 안세희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채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상황이 극도로 싫었다.
  • ‘채연, 넌 네가 어떤 기회를 차버렸는지 영원히 모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