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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바꿔치기

  • 며칠 뒤의 어느 화창한 오후, 채연은 보육원으로 향했다.
  • 저번에 사람을 구하느라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오늘 원장 선생님을 뵈러 다시 온 것이다.
  • 보육원에서 자라는 동안 이아영 원장은 그녀를 무척 아껴주었다.
  • 보육원은 혹시라도 아이들의 친척이나 부모님이 찾아올까 봐, 모든 보육원 출신들의 연락처와 정보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 어릴 때, 채연은 혹시 부모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큰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매번 실망이었다.
  • 그렇게 실망을 거듭하다 보니 이제 그녀도 무덤덤해졌다.
  •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먹고 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 계단을 오르던 채연은 복도에서 안세희를 만났다.
  • 안세희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 인사했다.
  • “채연아, 너도 왔어?”
  • 채연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세희는 그녀의 보육원 동기이자 지금은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동창이었다.
  • 비록 마주친 적은 많지 않았지만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 두 사람은 함께 원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 “원장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 이아영 원장은 고개를 들며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 “드디어 왔구나. 너희가 바쁜 줄은 알았지만… 정말 급한 일이라 이렇게 불렀단다.”
  • 채연이 물었다.
  • “원장 선생님, 전에는 부모님 찾는 일 때문에 자주 부르셨잖아요. 이번에는 무슨 일로 부르셨죠?”
  • 같은 날 보육원에 온 채연과 안세희는 나이와 키도 비슷했기에 매번 아이를 찾는 부모님이 방문하면 꼭 그들을 같이 불러서 대조했다.
  • “DNA 검사 때문에 불렀어. 너희들 머리카락이랑 손톱이 필요해.”
  • “그래요?”
  • 채연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 반면 안세희는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렸다.
  •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머리카락과 손톱을 밀봉팩에 담아 원장에게 건넸다.
  • “이번에 아주 대단한 분들이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다고 보육원에 방문하셨어….”
  • 오늘은 채연이 차은우의 집에 이사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급히 이곳으로 오느라 아직 짐 정리도 끝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 마음이 급해진 그녀가 말했다.
  • “원장 선생님, 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 “어서 가.”
  • 이아영이 웃으며 그녀를 배웅해 주었다.
  • “네가 바쁜 거 다 알아!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할게.”
  • 채연이 떠나자 안세희는 붙임성 있게 다가가서 이아영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 “원장 선생님, 도대체 어떤 분들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 말을 마친 그녀는 손에 든 비닐봉지를 흔들며 말했다.
  • “이거 좀 드셔봐요. 오면서 과자 좀 사 왔어요.”
  • 이아영은 항상 상냥하고 예의 바른 안세희가 좋았다.
  • “세희는 역시 착해! 너 혹시 J시티 하씨 가문이라고 알아?”
  • 안세희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 “하씨 가문이요? J시티의 가장 덕망 높은 군인 가문 말씀이세요? 육군 사령관 하해진 어르신과 육군 장교 하성욱 님 맞아요?”
  • “우리 세희는 아는 것도 많아. 하씨 가문에서 오래전에 손녀를 잃어버렸는데 여태 못 찾았대. 돌고 돌다가 K시티까지 오셨는데 너희랑 같은 또래라고 하더라고.”
  • 이아영이 말했다.
  • “바다에서 바늘 찾기 식으로 어떻게 찾아요? 증표 같은 건 없대요?”
  • 안세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은으로 된 팬던트가 하나 있다고 하던데 너희가 가진 소지품 중에는 없었던 거 같아. 그래서 가장 정확한 DNA 검사를 의뢰한 거야.”
  • ‘은 팬던트?’
  • 안세희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과거 채연에게 아끼던 은 팬던트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부러웠던 안세희는 채연이 목욕하러 간 사이 그것을 훔쳤다. 채연도 그 뒤로 그것을 다시 찾지 않았다.
  • 만약 버리지 않았다면 이 은 팬던트는 그녀의 방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 ‘채연이 군인 가문 출신이었어? 그래서 사격 실력이 그렇게 남달랐던 거야? 이런 것도 유전이 되나?’
  • 안세희의 마음에 질투의 불길이 치솟았다.
  • ‘왜 모든 행운은 채연에게만 돌아가는 거야? 차은우를 먼저 만난 것도 그렇고 하씨 가문도 그렇고... 안 돼! 이 모든 건 내가 가질 거야!’
  • 안세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이아영을 향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 “원장 선생님, 옷 좀 갈아입고 오실래요? 오늘 오랜만에 만났는데 저랑 나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제가 살게요.”
  • “넌 여전히 말을 예쁘게 하는구나.”
  • 한바탕 안세희를 칭찬한 이아영은 탈의실로 들어갔다.
  • 이아영이 자리를 비우자 안세희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다 내 거야! 돈도, 명예도, 그리고 차은우도! 내가 모두 가질 거야!’
  • 그녀는 이 틈을 타서 재빨리 자신과 채연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바꿔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