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3화 조롱

  •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 주변으로 점점 모여들었다.
  • 채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 “나는 차은우 씨 할머니의…”
  • 그녀는 일부러 뜸을 들이다가 폭탄 발언을 했다.
  • “가정부예요!”
  • 한편 그녀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본 차은우도 미간을 찌푸리고 다가왔다.
  •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가 이런 폭탄 발언을 던질 줄이야!
  • 할머니의 간병인이라니!
  • 그는 피식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이 흔들렸다.
  • 할머니의 간병인이라니! 채연이었기에 할 수 있을법한 말이었다.
  • 한은지는 예상 밖의 대답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분명 낮은 자세로 스스로를 비하한 쪽은 채연이건만 그녀는 어쩐지 자신이 더 초라해진 느낌이 들었다.
  • 일개 간병인이 어떻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에 나타난단 말인가?
  • 그녀는 싸우고 싶은데 상대에게서 단단한 벽을 느꼈다. 분명 이 여자를 실컷 조롱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흥분한 사람은 차분히 응대하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
  • 차은우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당황한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만 유지하던 그가 그녀의 한마디 때문에 술까지 쏟았다.
  • 눈치 빠른 한은지는 어색함을 모면하려 그에게 다가가서 애교부리듯 말했다.
  • “차 대표님, 제가 닦아드릴게요.”
  • 그녀가 손수건을 내밀며 그에게 손을 가져갔다.
  • 진한 향수 냄새가 풍기자 차은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비키려 했다.
  • 그런데 이때 채연이 그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나 차은우가 들고 있던 술잔에서 술이 쏟아져 한은지의 옷에 튕겼다.
  •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 새된 비명과 함께 한은지는 굳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 “그쪽 걱정이나 하는 게 좋겠네요.”
  • 채연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 한민지는 채연이 의도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표정만 일그러뜨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그녀에게 술을 쏟은 상대가 차은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었다. 한민지가 이를 갈며 말했다.
  • “죄송하지만 실례 좀 할게요.”
  • 말을 마친 그녀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 ‘이게 다 저 망할 여자 때문이야!’
  • 드디어 소란을 부리던 장본인이 사라지고 상황이 정리되었다.
  • 채연이 차은우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 “감사는 됐어요.”
  • 차은우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 ‘귀찮게 하는 여자를 쫓아버렸으니 내가 응당 고마워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 그는 휴지를 꺼내 손을 닦으며 채연을 힐끗 보았다.
  • 그녀는 지금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 ‘날 이용해서 한민지를 골탕 먹일 생각을 다 하다니! 참 대단한 여자야. 난 그래도 걱정해서 다가왔는데 전혀 그럴 필요 없었어.’
  • 기분이 좋아진 채연은 술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 “술은 안 돼!”
  • 차은우가 차갑게 경고하며 그녀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았다.
  • 채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술도 못 마시면서 억지로 마시지 마. 저번처럼 진상 부리지 말고.”
  • 그는 이 말을 남긴 뒤, 뒤돌아섰다.
  • 채연은 저도 모르게 며칠 전 술 취했을 때가 떠올랐다.
  • ‘내가 도대체 취해서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저 사람이 저러지?’
  • 사실 그녀는 그날 기억이 거의 없었다.
  • 단지 그에게 귀뺨을 날린 사실만 기억할 뿐이었다.
  • ‘생각보다 속 좁은 남자였네.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니.’
  • 그녀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였다.
  •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눈치 빠르게 흩어졌다.
  • 이제 아무도 감히 채연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이때, 파티 홀 전등이 눈부시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 사회자가 무대에 오르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주최자와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했다. 주최자는 J시티 하씨 가문이었고 오랜 세월을 거쳐 드디어 되찾은 그들의 딸이 오늘의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