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과 유리로 지어진 이 궁전은 K시티에서 가장 호화롭기로 소문난 파티 전용 호텔이었다. 오색 찬연한 빛을 내뿜는 유리창과 금테를 두른 아치형 천장, 눈부시게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이목을 끌었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정계 유명 인사나 성공한 사업가들 정도였다.
채연은 이런 곳에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모여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그녀는 길게 심호흡하며 긴장을 풀려고 애를 썼다.
‘어쩐지 드레스까지 준비하라고 하더니!’
귀족 파티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더 컸다.
차은우가 지나가자 기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를 내렸다.
차은우가 고개를 끄덕여야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다는 것은 기자라면 다 알고 있었다. 만약 몰래 찍다가 걸리면 사표는 물론, K시티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었다.
한 번도 여자를 대동하고 파티에 참석한 적 없던 차은우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등장하자 기자들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몰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채연은 차은우를 따라 파티 홀로 들어갔다.
그들이 입장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채연에게 쏠렸다.
찬란한 불빛 아래 상앗빛 드레스를 입고 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는 그녀는 마치 도도하고 아름다운 여신 같았다.
“저 여자 누구야?”
“어떻게 차은우와 함께 등장했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너무 예뻐.”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차은우가 입장하자 몇몇 정치계 인사들이 다가와서 인사했다. 눈치 빠른 채연은 옆으로 한발 비켜주었다.
그때 정교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채연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보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거 TW에서 주문 제작해야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드레스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그거 품절 아니었어요? 어떻게 샀어요?”
이런 식의 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채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담담히 대꾸했다.
“잘못 보셨어요. 이거 짝퉁이에요.”
그 말에 두 여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몇 달을 눈독을 들이다가 결국 구매에 실패한 드레스인데 그들이 옷을 잘못 봤을 리 없었다.
이때 호텔 직원이 위스키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채연은 자연스럽게 직원에게서 위스키 한잔을 받아들였다.
이때,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도도한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꺼운 화장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가슴이 깊게 파이는 오프숄더 드레스로 섹시함을 강조했다.
슈퍼모델 한은지는 평범한 모델이 아니었다. 그녀는 HS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외동딸로 K시티에서 이름 있는 재벌 2세였다.
채연에게 다가온 그녀가 경멸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당신 누구야?”
이유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는 그녀에게 채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쪽한테 알려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네요.”
“너!”
채연의 냉랭한 태도에 한은지의 예쁜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모두의 선망인 그녀가 언제 이런 무시를 받아봤을까!
“네가 감히 나한테 그딴 식으로 대꾸해? 너 정말 내가 누군지 몰라?”
채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죄송해요. 그쪽이 누군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서요.”
한은지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지도 잊은 채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영악한 년! 너 차 대표님이랑은 무슨 사이야? 왜 그분이랑 같이 입장한 거지?”
질투에 눈이 먼 여자의 절규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차은우를 쫓아다녔지만 차은우는 한 번도 그녀에게 관심을 준 적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고 그녀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 일도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다른 여자가 그의 팔짱을 끼고 입장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