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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비밀스러운 사모님

  • 3년 후,
  • 운상 그룹 내의 접견실.
  • 에어컨 바람이 시리게 불었고,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는 신이화로 하여금 더더욱 닭살이 돋게 만들었다.
  •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향해 설명했다.
  • “죄송합니다, 하연수 씨. 윤 대표님께서는 확실히 새로운 인연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니 이 수표를 보상으로 받으시고 이만 떠나주시죠.”
  • 하연수가 벌떡 일어서더니 할 수 있는 모든 애교 수단을 다 써먹기 시작했다.
  • “신 비서님, 미안한데 백야에게 전화 좀 해줘요, 내가 보고 싶어 한다고, 되게 되게 보고 싶어 한다고.”
  • “백야는 나를 제일 좋아한단 말이에요, 전 백야가 나한테 이렇게 매정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신 비서는 윤백야의 가장 가까운 조수로, 윤백야를 만나고 싶으면 반드시 신이화에게 잘 보여야 한다.
  • “하연수 씨, 그런 생각은 제발 좀 접으시고요. 윤 대표님께서는 정말 그렇게 매정하세요.”
  • 그 말을 마친 신이화는 몸을 일으키고는 하연수를 향해 사무적인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 그리고 문을 열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 “만약 하연수 씨께서 운상에서 좀 더 휴식을 취하다 떠나고 싶으시다면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여기서 나가서 왼쪽으로 도시면 탕비실이 있는데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들이 많답니다.”
  • 명백한 카운터였다.
  • 그리고,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그대로 신이화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 다행히도, 그저 몇 방울의 커피만이 튀었고 컵은 진작에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 “네가 뭐라고 감히. 네까짓 건 그냥 개새끼일 뿐이야. 네가 뭔데 백야가 날 좋아한다 만다 난리야!”
  • “잘 아실 겁니다. 대표님께서 전 애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방식을 말이죠.”
  • “퉤! 내가 보기엔 네가 꾸민 짓 같은데? 네가 뭔데! 난 윤백야를 만나야겠어.”
  • 하연수는 순식간에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난동을 부리며 뛰쳐나가려고 했고 가드가 제때에 도착해 그녀를 끌고 나갔다.
  • 결국, ‘평화로운 이별’은 또다시 이렇게 큰 사건이 되어버렸다.
  • 하연수가 끌려나간 뒤 신이화는 사람들에게 접견실을 정리하라고 지시하고 나서야 천천히 걸음을 옮겨 탕비실로 향했다.
  • 근처에 있던 회사 내의 사람들이 모여 탕비실에서 열렬히 토론 중이었다.
  • “저기, 신 비서님 일 정말 너무 도전적이지 않아요?”
  • “우리 대표님도 좀 너무해요, 삼 일동안 여자를 여섯이나 갈아치우다니, 인내심이 없어.”
  • “인내심이 없긴, 다들 그러잖아요. 굴러온 여자들, 박힌 돌 신 비서라고… 누가 뭐래도 신 비서님이야 말로 대표님의 진짜 사랑인 거죠.”
  • 한 직원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 “신 비서님도 매번 이렇게 대표님 대신 여자를 처리해 주면서도 아직 그만두지 않은 걸 보면 참 대단해요.”
  • 그 옆, 커피를 들고 있던 여자가 다가와 끼어들었다.
  • “내가 보기엔 제일 대단한 건 대표님 아내분이죠. 대표님께서 밖에서 이렇게 많은 여자들을 만나는데도 이혼도 안 하다니. 그거야말로 진정한 인내심이죠.”
  • 그 말을 하던 여자가 대뜸 신이화에게 커피를 건네며 잔뜩 궁금하다는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 “신 비서님, 대표님 아내분 본 적 있어요? 예뻐요?”
  • “봤죠, 매일 보는데요. 예뻐요.”
  • 신이화는 커피를 마시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 잔뜩 궁금해하던 여자는 저도 모르게 눈을 희번뜩했다.
  • “비록 비서님이 대표님의 비서 실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개인 비서도 아닌데, 그렇게 비밀스러운 사모님을 어떻게 매일 봐요?”
  • 신이화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모두를 향해 웃고는 커피를 한 입에 다 털어 넣고는 천천히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못 믿겠어요? 못 믿겠으면 말이요. 전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 봐야 해서.”
  • 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정말로…매일 보는걸?
  • 매일마다 거울은 봐야 하니 당연히 매일 자신을 보는걸.
  • 대표 전용 층으로 돌아간 신이화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 얼른 옷에 묻은 커피 자국을 지우려고 했다.
  • 그저, 손이 막 수도꼭지에 닿으려는데 따뜻한 손 하나가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 그는 뒤에서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천천히 그녀의 귓가에 숨을 내쉬며 물었다.
  • “해결했어?”
  • 신이화는 윤백야의 품에서 나와 물을 틀고는 손에 물을 묻힌 뒤 커피 자국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 “다음부터는 좀 성격이 온순한 사람을 고르면 안 될까? 몇백만 원짜리 옷을 고작 한 번밖에 못 입었는데, 아까워 죽겠어.”
  • “이따가 두 벌 사서 사무실로 보내놓으라고 할게.”
  • 윤백야가 다시 다가와 신이화를 어루만졌다.
  • 신이화는 이내 뒤로 조금 물러서며 거리를 두었다.
  • “집으로 보내, 대표가 비서에게 선물을 주는 걸 당신에게 푹 빠진 여자들이 알면 날 죽이려고 들까 봐 무서우니까.”
  • 윤백야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 두 눈에 웃음기를 가득 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물었다.
  • “그럼 나한테 시집올 땐, 왜 안 무서워했는데?”
  • 신이화도 윤백야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며 화사하게 웃었다.
  • “돈의 유혹이 너무 강해서, 무서울 겨를이 없었지.”
  • 말을 하는 도중 신이화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람이었다. 이제 회의를 할 시간이 되었다.
  • 그녀는 옷을 정리하고는 늘 하던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돌아와 윤백야에게 당부했다.
  • “삼십 분 후, 3층 회의실에서 유럽 사업본부의 발표회가 있을 겁니다. 먼저 가서 준비하도록 하죠.”
  • 말을 마치고는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 윤백야는 문밖으로 걸어나가는 여자의 가늘고 긴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
  • 방금 전까지 그들이 얼마나 뜨거웠든 간에 저 여자는 늘 그다음 순간, 곧장 거기서 빠져나와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할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