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야, 너 멀리 갔어? 빨리 돌아와. 조군이 진짜 병신이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 아빠한테 잡혀갔어. 아빠 돈을 훔쳐서 아우디를 뽑았더라고. 지금 잡혀갔어. 여기 테이블에 92년 라피트 3병이나 따놓았어. 모두 1800만 원이라는데 나는 집에 하고 돈 달라고 얘기를 못 하겠어.”
진명은 음성 메시지를 들으면서 일이 참 극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조군이 가고 나면 결산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한 장천천이 해야 했다.
그녀의 집안도 괜찮은 편이지만 갑자기 1800만 원을 한 번에 내놓으라는 것은 부모님께 맞아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사람들 한 끼를 1800만 원 먹었다는 것도 너무 오버였다. 조군을 호구로 보고 미친 듯이 주문한 것 같았다.
안현미와 진명은 할 수 없이 돌아갔다. VIP 룸에는 몇몇 경호원이 동아리의 학생들을 둘러서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비싼 와인을 따놓고 결산할 돈이 없으면 룸에서 나가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자세였다.
두 개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들은 아직 따뜻했지만 다들 얌전히 앉아 있기만 했다.
장천천은 안현미가 돌아온 것을 보고 달려가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
“현미야, 드디어 왔네! 나 먼저 1800만 원 빌려줘. 나중에 내가 천천히 갚을게.”
안현미는 자신의 단짝을 안고 위로해주었다.
“됐어, 괜찮아. 내가 가서 결산하고 다 같이 먹자.”
안현미는 레스토랑의 매니저를 따라 카운터에 갔다.
그녀는 카드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옆에 서 있던 진명은 안현미가 돈이 많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1800만 원을 쉽게 긁을 정도로 돈이 많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캐시어가 한참 결산을 하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 카드가 정지되었습니다.”
안현미는 미간이 구겨지더니 가방에서 또 다른 블랙카드 두 장을 꺼내었다.
직원은 결산하더니 또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두 개의 카드도 정지되었습니다.”
안현미는 당황해서 핸드폰을 꺼내 옆에 가서 조용히 통화했다.
결산할 줄 알고 기다렸던 여자 매니저는 답답해서 욕하기 시작했다.
“지금 대학생들은 참 말도 안 돼. 돈 없으면서 비싼 와인까지 따놓으면서 부자 흉내를 내? 결국에는 다 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거 아니야. 부모가 무슨 죄야.”
옆에 서 있던 여자 서빙도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반찬은 비싸지 않은데 92년 라피트 3병을 따놓았잖아요. 조금 더 기다렸다가 따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바로 따라고 소리를 치더니 지금 후회막급이겠지! 돈 없으면서 왜 있는 척을 한 대? 창피하게.”
여자 매니저는 옆에 있는 진명을 보고 말했다.
“어머? 신입이야? 일하지 않고 무슨 구경을 하고 있어. 얼른 2호 룸에 가서 정리해. VIP 손님이 곧 오게 될 거야.”
진명은 자신이 옷이 진짜 오해받기 쉬운 것을 알고 어이가 없었다.
안현미의 집안도 좋지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전화하는 모습이 점점 더 조급해졌다. 진명은 그런 안현미를 보고 결산이 어려울 것을 눈치채 바로 자신의 은행 카드를 꺼내면서 말했다.
“죄송한데요. 저 여기 직원이 아니에요. 저의 카드로 긁으세요.”
여자 매니저는 바로 화를 내면서 말했다.
“저기. 지금 장난해? 부잣집 도련님이나 아가씨나 다 돈이 없어서 결산을 못 하는데 너처럼 서빙 옷차림을 한 사람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장난을 쳐?”
진명은 귀찮아서 말했다.
“결산하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여자 매니저도 부자들을 많이 본 사람이라 서빙 옷차림을 한 진명을 보더니 하찮게 웃으면서 말했다.
“연희야, 긁어 봐. 10만 원이라도 있나 보자고. 지금 대학생들은 참 웃겨. 하나같이 돈이 없으면서 부자 흉내를 내?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야지 지금 사회가 다 비틀어졌어....”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여자 매니저가 말도 다 하기 전에 포스기에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1800만 원이 결제되었다는 소리에 그녀는 넋이 나갔다.
여자 매니저, 서빙, 캐시어는 순간 진명을 보는 눈빛이 애매하게 변해버렸다.
서빙 옷차림을 한 이 젊은 대학생은 1800만 원을 긁고 대수롭지 않게 카드를 가져갔다. 그가 입을 삐쭉하면서 눈을 깜빡거리는 모습이 여직원들 눈에 순간 멋있어 보였다.
캐시어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진명한테 들이댔다.
“저기요. 카카오톡 추가해도 괜찮을까요?”
진명은 금방 실연을 당해 카카오톡 친구 추가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 거절했다.
“저, 저기, 아이고, 죄송해요.”
여자 매니저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바로 자신의 뺨을 치면서 사과했다.
“제가 알아보지 못하고 몹쓸 말만 했네요. 잘생긴 학생, 똑똑한 사람이 나 같은 천한 것을 자주 봐주세요.”
진명은 그녀를 흘려보면서 말했다.
“됐어요. 이제 저 여학생한테 포스기 데이터가 지연되어서 진작에 결제했다고 알려주세요.”
여자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진명은 장천천을 도와주고 싶지 않았지만, 안현미가 이까짓 돈 때문에 곤란해지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지금 모든 사람의 희망인 그녀는 반드시 여신처럼 빛나야 했다.
진명이 상홍희한테서 상속받은 많은 회사가 한 개 시즌만 7조 원을 벌 수 있는데 1800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장천천이 안현미한테 돈을 갚아주면 그녀가 1800만 원을 그냥 가지는 것도 진명은 싫지 않았다.
안현미는 전화를 끊고 돌아와서 하얗게 질린 얼굴에 걱정이 가득 찼다. 그녀는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난감해서 말했다.
“저기, 그....”
여자 매니저는 바로 허리를 접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이쁜 학생, 아까 기계가 고장 났어요. 이미 결제되었어요. 시름 놓고 먹어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진짜 죄송해요. 내가 너무 미안해서 모든 사람한테 디저트 하나씩 드릴게요.”
“네? 하지만....”
안현미는 자신의 은행 카드가 분명히 집에서 정지시켰는데 어떻게 결제가 되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똑바로 물어보려고 할 때 장천천 일당은 룸에서 나왔다.
장천천은 안현미를 안고 흥분해서 말했다.
“현미야, 나의 현미야. 네 덕분에 해결되었어. 역시 현미밖에 없어!”
“현미야 진짜 대단해~”
“그래. 진짜 돈 많아.”
“너 몰랐어? 현미가 슈퍼 재벌 2세야.”
“아무튼, 현미 덕분에 우리 살았어.”
사람들은 그녀를 VIP 룸으로 끌고 들어갔지만, 진명은 밖에 서 있었다.
진명은 자신이 들어갔다가 장천천이 또 썩은 냄새가 난다고 빨리 가서 씻고 오라는 말을 하면 화가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장천천을 욕할 수가 없어서 그는 그냥 가려고 했는데 장천천은 진명을 불렀다.
장천천은 머리를 돌려 진명을 보고 사람들 사이를 파헤치고 소리 질렀다.
“어머머, 진명 너 아직도 여기에 있었어? 그렇게 공짜로 먹고 싶은 거야? 참, 너 씻고 오라고 했지? 왜 아직도 이 꼬라지야?”
진명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회장님, 저 지금 가면 되잖아요.”
장천천은 오만하게 말했다.
“됐어. 그래도 동아리 회원이잖아. 내 말은 네가 가면 누가 가방을 들어? 오늘 현미 덕분에 좋은 것을 먹는 거야. 들어와서 현미의 시중을 들어. 알았어?”
안현미의 시중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라 진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동아리의 사람들은 반찬이 차가워지기 전에 먹고 마시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다시 떠들썩했다.
진명도 안현미의 시중을 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녀 대신 술을 마시는 흑기사를 해주는 것이었다.
누가 술을 권하면 흑기사로서 술을 대신 마셔주어야 했다.
한 바퀴 돌더니 진명 혼자서 라피트 한 병을 다 마신 셈이다.
알코올이 그의 신경을 마취시켰다.
잠시라도 실연한 일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기에 진명은 마실수록 흥이 났다.
술을 계속 마시던 진명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술을 더 마시게 되었고 술을 많이 마시더니 취해버려 자버리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명은 머리를 만지면서 천천히 깨어났는데 누군가의 허벅지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포근하고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어? 뭐지? 나 취했나?”
진명은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내가 와인을 마시고 취했다고?”
갑자기 작은 손가락이 진명의 이마를 쳤다. 안현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멍청하잖아. 나한테 권하는 술은 네가 다 마셨잖아. 92년 라피트 와인 3병, 고 알코올 도수인 헤네시 XO 1병을 다 마셨으니 취하지 않겠어?”
진명은 놀라서 말했다.
“어? 장천천 그년들 술을 그렇게 많이 시켰어?”
안현미는 혀를 내밀면서 말했다.
“걔네 원래 조군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는데 네가 그 바가지를 쓸 줄 어떻게 알았겠어.”
이 말을 듣던 진명은 두 눈을 번쩍 들고 정신을 차렸다.
그는 머리를 들고 보더니 얇은 블라우스 속에 발육이 잘 된 두 가슴이 눈에 들어왔고 안현미의 떨어지는 검은색 긴 생머리가 보이더니 거꾸로 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안현미의 허벅지에 누워있었다. 왠지 허벅지가 포근하고 향기로웠다.
그는 바로 일어나 VIP 룸을 둘러보더니 룸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고 그와 안현미 두 사람만 남아있었다.
그는 이상해서 말했다.
“현미야, 너 왜 일찍 나를 깨우지 않았어? 우리 기숙사 애들 불러와도 되는데.”
안현미는 웃으면서 입을 실룩거리더니 말했다.
“확인할 것이 있어서 그래. 아까 1800만 원 네가 대신 결제한 거지? 나의 은행 카드는 정지되어서 긁지 못하거든. 그때 너랑 나밖에 없었는데 네가 결제한 거 맞지?”
진명은 안현미가 이렇게 집요한 줄 예상하지 못해서 승인했다.
“내가 한 거 맞아. 네가 게네의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 보기 싫었어. 넌 게네의 구세주처럼 있어야 했어.”
안현미는 자기 때문에 진명이 결산을 했다는 것을 알고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긴장한 가슴을 잡고 물었다.
“너, 너 많이 가난하잖아?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긁었어?”
진명은 아직 자신이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것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
“나의 전공을 잊었어? 나는 경제학을 배우는 사람이야. 금융 쪽도 많이 터치했었어. 나 요즘 주식 투기하고 있는데 HJ 테크놀로지 한 달 동안 주식이 올랐거든. 그래서 나 오늘 주식을 매도해서 2000만 원 벌었어.”
안현미는 말했다.
“네가 게네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데 걔네는 네가 도와준 것도 모르고.”
진명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괜찮아. 그냥 네가 곤란한 모습 보기 싫어서 그래.”
안현미는 기뻐서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가 한 것만큼 나는 다 기억해 줄게. 나중에 장천천이 돈을 갚으면 바로 너한테 갚을게.”
진명은 대수롭지 않게 웃기만 했다.
HS 이공대에서 인증받는 3대 얼짱 중의 한 사람인 안현미는 평소에 남학생들이 그녀와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 일 때문에 진명은 그녀의 허벅지에 누워 몇 시간 동안 잠을 잘 수가 있어서 그는 솔직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