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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1800만 원

  • 진명은 놀라서 물었다.
  • “장천천이 무슨 일이 생겼어? 조군이 엄청나게 돈 많잖아? 결산 못 하는 거는 아니지?”
  • 안현미는 어이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 “그래. 결산 못 한다네.”
  • 그녀는 음성 메시지를 틀어놓더니 장천천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 “현미야, 너 멀리 갔어? 빨리 돌아와. 조군이 진짜 병신이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 아빠한테 잡혀갔어. 아빠 돈을 훔쳐서 아우디를 뽑았더라고. 지금 잡혀갔어. 여기 테이블에 92년 라피트 3병이나 따놓았어. 모두 1800만 원이라는데 나는 집에 하고 돈 달라고 얘기를 못 하겠어.”
  • 진명은 음성 메시지를 들으면서 일이 참 극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 조군이 가고 나면 결산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한 장천천이 해야 했다.
  • 그녀의 집안도 괜찮은 편이지만 갑자기 1800만 원을 한 번에 내놓으라는 것은 부모님께 맞아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 하지만 이 사람들 한 끼를 1800만 원 먹었다는 것도 너무 오버였다. 조군을 호구로 보고 미친 듯이 주문한 것 같았다.
  • 안현미와 진명은 할 수 없이 돌아갔다. VIP 룸에는 몇몇 경호원이 동아리의 학생들을 둘러서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비싼 와인을 따놓고 결산할 돈이 없으면 룸에서 나가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자세였다.
  • 두 개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들은 아직 따뜻했지만 다들 얌전히 앉아 있기만 했다.
  • 장천천은 안현미가 돌아온 것을 보고 달려가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
  • “현미야, 드디어 왔네! 나 먼저 1800만 원 빌려줘. 나중에 내가 천천히 갚을게.”
  • 안현미는 자신의 단짝을 안고 위로해주었다.
  • “됐어, 괜찮아. 내가 가서 결산하고 다 같이 먹자.”
  • 안현미는 레스토랑의 매니저를 따라 카운터에 갔다.
  • 그녀는 카드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옆에 서 있던 진명은 안현미가 돈이 많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1800만 원을 쉽게 긁을 정도로 돈이 많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 하지만, 캐시어가 한참 결산을 하더니 말했다.
  •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 카드가 정지되었습니다.”
  • 안현미는 미간이 구겨지더니 가방에서 또 다른 블랙카드 두 장을 꺼내었다.
  • 직원은 결산하더니 또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 “죄송합니다. 이 두 개의 카드도 정지되었습니다.”
  • 안현미는 당황해서 핸드폰을 꺼내 옆에 가서 조용히 통화했다.
  • 결산할 줄 알고 기다렸던 여자 매니저는 답답해서 욕하기 시작했다.
  • “지금 대학생들은 참 말도 안 돼. 돈 없으면서 비싼 와인까지 따놓으면서 부자 흉내를 내? 결국에는 다 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거 아니야. 부모가 무슨 죄야.”
  • 옆에 서 있던 여자 서빙도 말했다.
  • “그러게 말이에요. 반찬은 비싸지 않은데 92년 라피트 3병을 따놓았잖아요. 조금 더 기다렸다가 따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바로 따라고 소리를 치더니 지금 후회막급이겠지! 돈 없으면서 왜 있는 척을 한 대? 창피하게.”
  • 여자 매니저는 옆에 있는 진명을 보고 말했다.
  • “어머? 신입이야? 일하지 않고 무슨 구경을 하고 있어. 얼른 2호 룸에 가서 정리해. VIP 손님이 곧 오게 될 거야.”
  • 진명은 자신이 옷이 진짜 오해받기 쉬운 것을 알고 어이가 없었다.
  • 안현미의 집안도 좋지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전화하는 모습이 점점 더 조급해졌다. 진명은 그런 안현미를 보고 결산이 어려울 것을 눈치채 바로 자신의 은행 카드를 꺼내면서 말했다.
  • “죄송한데요. 저 여기 직원이 아니에요. 저의 카드로 긁으세요.”
  • 여자 매니저는 바로 화를 내면서 말했다.
  • “저기. 지금 장난해? 부잣집 도련님이나 아가씨나 다 돈이 없어서 결산을 못 하는데 너처럼 서빙 옷차림을 한 사람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장난을 쳐?”
  • 진명은 귀찮아서 말했다.
  • “결산하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 여자 매니저도 부자들을 많이 본 사람이라 서빙 옷차림을 한 진명을 보더니 하찮게 웃으면서 말했다.
  • “연희야, 긁어 봐. 10만 원이라도 있나 보자고. 지금 대학생들은 참 웃겨. 하나같이 돈이 없으면서 부자 흉내를 내?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야지 지금 사회가 다 비틀어졌어....”
  •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 여자 매니저가 말도 다 하기 전에 포스기에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 1800만 원이 결제되었다는 소리에 그녀는 넋이 나갔다.
  • 여자 매니저, 서빙, 캐시어는 순간 진명을 보는 눈빛이 애매하게 변해버렸다.
  • 서빙 옷차림을 한 이 젊은 대학생은 1800만 원을 긁고 대수롭지 않게 카드를 가져갔다. 그가 입을 삐쭉하면서 눈을 깜빡거리는 모습이 여직원들 눈에 순간 멋있어 보였다.
  • 캐시어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진명한테 들이댔다.
  • “저기요. 카카오톡 추가해도 괜찮을까요?”
  • 진명은 금방 실연을 당해 카카오톡 친구 추가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 거절했다.
  • “저, 저기, 아이고, 죄송해요.”
  • 여자 매니저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바로 자신의 뺨을 치면서 사과했다.
  • “제가 알아보지 못하고 몹쓸 말만 했네요. 잘생긴 학생, 똑똑한 사람이 나 같은 천한 것을 자주 봐주세요.”
  • 진명은 그녀를 흘려보면서 말했다.
  • “됐어요. 이제 저 여학생한테 포스기 데이터가 지연되어서 진작에 결제했다고 알려주세요.”
  • 여자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 진명은 장천천을 도와주고 싶지 않았지만, 안현미가 이까짓 돈 때문에 곤란해지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지금 모든 사람의 희망인 그녀는 반드시 여신처럼 빛나야 했다.
  • 진명이 상홍희한테서 상속받은 많은 회사가 한 개 시즌만 7조 원을 벌 수 있는데 1800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장천천이 안현미한테 돈을 갚아주면 그녀가 1800만 원을 그냥 가지는 것도 진명은 싫지 않았다.
  • 안현미는 전화를 끊고 돌아와서 하얗게 질린 얼굴에 걱정이 가득 찼다. 그녀는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난감해서 말했다.
  • “저기, 그....”
  • 여자 매니저는 바로 허리를 접으면서 말했다.
  • “아이고, 이쁜 학생, 아까 기계가 고장 났어요. 이미 결제되었어요. 시름 놓고 먹어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진짜 죄송해요. 내가 너무 미안해서 모든 사람한테 디저트 하나씩 드릴게요.”
  • “네? 하지만....”
  • 안현미는 자신의 은행 카드가 분명히 집에서 정지시켰는데 어떻게 결제가 되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똑바로 물어보려고 할 때 장천천 일당은 룸에서 나왔다.
  • 장천천은 안현미를 안고 흥분해서 말했다.
  • “현미야, 나의 현미야. 네 덕분에 해결되었어. 역시 현미밖에 없어!”
  • “현미야 진짜 대단해~”
  • “그래. 진짜 돈 많아.”
  • “너 몰랐어? 현미가 슈퍼 재벌 2세야.”
  • “아무튼, 현미 덕분에 우리 살았어.”
  • 사람들은 그녀를 VIP 룸으로 끌고 들어갔지만, 진명은 밖에 서 있었다.
  • 진명은 자신이 들어갔다가 장천천이 또 썩은 냄새가 난다고 빨리 가서 씻고 오라는 말을 하면 화가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장천천을 욕할 수가 없어서 그는 그냥 가려고 했는데 장천천은 진명을 불렀다.
  • 장천천은 머리를 돌려 진명을 보고 사람들 사이를 파헤치고 소리 질렀다.
  • “어머머, 진명 너 아직도 여기에 있었어? 그렇게 공짜로 먹고 싶은 거야? 참, 너 씻고 오라고 했지? 왜 아직도 이 꼬라지야?”
  • 진명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 “회장님, 저 지금 가면 되잖아요.”
  • 장천천은 오만하게 말했다.
  • “됐어. 그래도 동아리 회원이잖아. 내 말은 네가 가면 누가 가방을 들어? 오늘 현미 덕분에 좋은 것을 먹는 거야. 들어와서 현미의 시중을 들어. 알았어?”
  • 안현미의 시중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라 진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동아리의 사람들은 반찬이 차가워지기 전에 먹고 마시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다시 떠들썩했다.
  • 진명도 안현미의 시중을 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 그녀 대신 술을 마시는 흑기사를 해주는 것이었다.
  • 누가 술을 권하면 흑기사로서 술을 대신 마셔주어야 했다.
  • 한 바퀴 돌더니 진명 혼자서 라피트 한 병을 다 마신 셈이다.
  • 알코올이 그의 신경을 마취시켰다.
  • 잠시라도 실연한 일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기에 진명은 마실수록 흥이 났다.
  • 술을 계속 마시던 진명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술을 더 마시게 되었고 술을 많이 마시더니 취해버려 자버리고 말았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진명은 머리를 만지면서 천천히 깨어났는데 누군가의 허벅지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포근하고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 “어? 뭐지? 나 취했나?”
  • 진명은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 “내가 와인을 마시고 취했다고?”
  • 갑자기 작은 손가락이 진명의 이마를 쳤다. 안현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멍청하잖아. 나한테 권하는 술은 네가 다 마셨잖아. 92년 라피트 와인 3병, 고 알코올 도수인 헤네시 XO 1병을 다 마셨으니 취하지 않겠어?”
  • 진명은 놀라서 말했다.
  • “어? 장천천 그년들 술을 그렇게 많이 시켰어?”
  • 안현미는 혀를 내밀면서 말했다.
  • “걔네 원래 조군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는데 네가 그 바가지를 쓸 줄 어떻게 알았겠어.”
  • 이 말을 듣던 진명은 두 눈을 번쩍 들고 정신을 차렸다.
  • 그는 머리를 들고 보더니 얇은 블라우스 속에 발육이 잘 된 두 가슴이 눈에 들어왔고 안현미의 떨어지는 검은색 긴 생머리가 보이더니 거꾸로 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 그가 안현미의 허벅지에 누워있었다. 왠지 허벅지가 포근하고 향기로웠다.
  • 그는 바로 일어나 VIP 룸을 둘러보더니 룸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고 그와 안현미 두 사람만 남아있었다.
  • 그는 이상해서 말했다.
  • “현미야, 너 왜 일찍 나를 깨우지 않았어? 우리 기숙사 애들 불러와도 되는데.”
  • 안현미는 웃으면서 입을 실룩거리더니 말했다.
  • “확인할 것이 있어서 그래. 아까 1800만 원 네가 대신 결제한 거지? 나의 은행 카드는 정지되어서 긁지 못하거든. 그때 너랑 나밖에 없었는데 네가 결제한 거 맞지?”
  • 진명은 안현미가 이렇게 집요한 줄 예상하지 못해서 승인했다.
  • “내가 한 거 맞아. 네가 게네의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 보기 싫었어. 넌 게네의 구세주처럼 있어야 했어.”
  • 안현미는 자기 때문에 진명이 결산을 했다는 것을 알고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 그녀는 작은 손으로 긴장한 가슴을 잡고 물었다.
  • “너, 너 많이 가난하잖아?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긁었어?”
  • 진명은 아직 자신이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것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
  • “나의 전공을 잊었어? 나는 경제학을 배우는 사람이야. 금융 쪽도 많이 터치했었어. 나 요즘 주식 투기하고 있는데 HJ 테크놀로지 한 달 동안 주식이 올랐거든. 그래서 나 오늘 주식을 매도해서 2000만 원 벌었어.”
  • 안현미는 말했다.
  • “네가 게네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데 걔네는 네가 도와준 것도 모르고.”
  • 진명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 “나는 괜찮아. 그냥 네가 곤란한 모습 보기 싫어서 그래.”
  • 안현미는 기뻐서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 “걱정하지 마. 네가 한 것만큼 나는 다 기억해 줄게. 나중에 장천천이 돈을 갚으면 바로 너한테 갚을게.”
  • 진명은 대수롭지 않게 웃기만 했다.
  • HS 이공대에서 인증받는 3대 얼짱 중의 한 사람인 안현미는 평소에 남학생들이 그녀와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 일 때문에 진명은 그녀의 허벅지에 누워 몇 시간 동안 잠을 잘 수가 있어서 그는 솔직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