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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안현미

  • 진명은 알바를 그만두었다.
  • 앞으로 해 질 무렵 배달하고 저녁에 술집에서 문지기를 서지 않아도 되었다.
  • 그는 대충 끼니를 때우려고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돌아갔다.
  • 진명은 카카오페이로 결제할 때 그가 참가한 배드민턴 동아리 단톡방의 문자를 받았다.
  • “모든 이들, 진 레스토랑 집합. 누군가가 크게 쏜단다.”
  • 진 레스토랑은 HS 이공대 교내에 있는 독립적인 레스토랑이다. 가격이 비싸기에 학교 선생님들이 외부 인사를 접대하거나 학생들이 생활을 개선하고 싶을 때 가는 곳이다.
  • 단톡방에는 열 사람이 있었고 모두 회장님이 만세라고 대답했다.
  • 오직 진명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 “회장님, 저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서 못 가요.”
  • 이런 모임에 그가 가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 그가 가난하기에 배드민턴 동아리에서 츄리닝도 없고 배트도 없었다. 그는 공을 줍고 장소를 정리하며 생수를 사 오는 일을 전담하는 사람이었다.
  • 지위가 낮아서 동아리에서 회식할 때마다 그는 물을 붓는 종과 같았지만,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그 돈을 아껴 이봄에게 립스틱을 사주기 위해 억울해도 계속 참고 참석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진명은 부자가 되었기에 더는 자신을 그런 곳에서 종처럼 당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 단톡방에 장천천의 화가 가득 담은 문자가 떠올랐다.
  • “진명, 너 무슨 뜻이야? 내가 너 당장 오라고 해도 오지 않을 거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와서 시중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공짜로 먹고 노는 것으로 부족하니? 5분 안으로 바로 도착해! 아니면 죽을 줄 알아!”
  • 진명은 어이없어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 하지만 몇 걸음 걸지 않은 진명은 장천천과 배드민턴의 다른 여학생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진명은 자신이 가던 길이 진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과 같은 길인 것을 알아차렸다.
  • 장천천은 진명을 보더니 말했다.
  • “어머, 빨리 왔네? 그것도 식당 알바할 때 입은 옷을 입은 채로? 어머 더러워. 냄새까지 나잖아.”
  • 오후 내내 수업을 들은 진명은 옷을 갈아입을 기회가 없었기에 어쩔 수가 없어서 말했다.
  • “너 문자 보고 바로 달려왔지.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어디 있어?”
  • 장천천은 듣더니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 “그래, 말을 잘 듣네. 나 장천천이 언제 동아리 회원들을 섭섭하게 한 적 있나? 너 매번 우리랑 같이 먹고 놀면서 돈 한 푼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잖아. 그래, 나의 가방을 잘 들고 있어. 이거 루이 비통 가방이야. 더럽히지 마!”
  • 말이 끝나기 바쁘게 장천천 옆에 서 있던 여학생들도 자신의 가방을 진명한테 건네주었다.
  • 진명은 본의 아니게 받아들었고 앞으로 다시는 장천천의 가방을 들어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 순간 은은한 향기가 났다. 배드민턴 동아리에서 유일하게 진명과 관계가 좋은 여학생인 안현미가 뒤에서 미소를 번지면서 진명을 보고 있었다.
  • 안현미는 상 학원 2학년생이고 청순하고 이쁘게 생겨 인증받는 얼짱이었다.
  • 티비에서 나오는 여자 스타들보다도 더 이쁜 그녀는 대시하려는 남학생이 다른 학교에도 수두룩하다고 소문이 났다.
  • 안현미는 수많은 남자를 홀리게 하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 “진명아. 너는 왜 매번 천천을 거절하지 않는 거야? 왜 매번 도와주는데?”
  • “습관 됐나 보지 뭐.”
  • 진명은 어쩔 수 없이 웃었다.
  • 예전에는 공짜로 얻어먹어서 거절할 면목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려져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장천천이 이미 멀리 가버렸다.
  • 안현미는 말했다.
  • “너 오늘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중요한 일이면 나한테 얘기해도 돼.”
  • 죽을 놈의 하균 선생님이 수학 문제를 엄청나게 많이 내주었기에 오늘 저녁 중요한 일이 당연히 숙제하는 것이었다.
  • 하지만 안현미를 본 진명은 갑자기 기분이 이상하게 좋아져 실연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 같아서 말했다.
  • “너를 보니 갑자기 가고 싶어지네.”
  • 안현미는 얼굴이 빨갛게 변하더니 말했다.
  • “입만 살아서. 너 여자친구 있잖아? 그러면서 지금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 진명은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말했다.
  • “차였어. 나와 같은 고향 친구인 금수저하고 바람을 피워서 우리 헤어졌어.”
  • 그는 이봄과 2년 동안 사귀면서 진심을 바쳤는데 진심이 개한테 물려갔는지 배신을 당했고 그는 이봄을 생각하면 슬픔이 터져 나왔다.
  • 안현미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슬퍼하는 진명을 보고 위로를 해주려는 참에 장천천이 와서 인사를 했다.
  • “현미야. 너 왜 이제 오는 거야? 어머, 진명. 너 맨날 우리 현미를 따라다니지 마. 자신의 위치를 아직도 모르겠어? 됐어. 현미야. 가방은 진명한테 주고 우리는 가자.”
  • 장천천은 늦을까 봐 안현미를 끌고 걸어갔다.
  • 진명은 들어야 할 가방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 그는 머리를 저으면서 앞으로 배드민턴 동아리에 계속 참가해야 하는데 먼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냥 받아들였다.
  • 진 레스토랑의 VIP 룸 안에는 두 개의 큰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분위기가 엄청나게 뜨거웠다.
  • 장천천은 모든 사람의 자리 배치를 하고 나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동아리의 회원들이 그녀의 제스처를 보고 모두 조용해졌다. 장천천은 이것을 보고 자신이 사람 위에 있는 것 같아 몹시 흐뭇했다. 하지만 그는 안현미의 옆에 서빙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진명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눈에 거슬려서 미간이 구겨지면서 말했다.
  • “현미야, 내 옆에 와서 앉아.”
  • 안현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다 똑같아. 조금 있다가 오는 사람이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 아니야? 너의 옆자리를 남겨두어야지.”
  •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하게 될 사람은 확실히 장천천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 예쁜 안현미가 스스로 뒤로 물러서 주는 것이 단짝의 매너라고 생각했다.
  • 바로 이때 또 하나의 도련님이 나타났다.
  • 그는 문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그의 손에 있는 아우디의 차 키에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 도련님은 큰 소리로 말했다.
  • “다들 안녕. 난 전기공정학과의 조군이라고 해. 전에 배드민턴을 칠 때 장천천한테 졌거든. 남자면 약속한 대로 해야지 않겠어? 그래서 이렇게 한턱내게 된 거야. 오늘 마음껏 시키고 술도 마음껏 마셔 내가 쏠 테니까.”
  • “그래!”
  • 모든 사람은 환호하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 진 레스토랑은 맛있지만, 너무 비싸서 누가 한턱낸다면 당연히 고마운 일이었다.
  • 장천천은 갑자기 조군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
  • “어머, 조군아. 너 손에 그거 뭐야? 차 뽑은 거야? 아우디?”
  • 조군 흐뭇한 미소를 번지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 “그래. 엄청 새로운 아우디 A6, 원래 겸손하게 A4를 사려고 했는데 영업원이 A4는 한 달 기다려야 되는데 A6는 현물이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네. 하하하.”
  • 장천천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 “어머나, 그러면 끝나고 나서 나 데리고 드라이브를 해주라.”
  • 조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제안을 동의했다.
  • 조군이 이 차를 산 목적은 그냥 잘 난 척하고 싶을 뿐이었다.
  • 그는 오랫동안 장천천한테 작업을 걸었는데 장천천이 안목이 높은 탓에 조군은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 그는 일부러 배드민턴을 칠 때 장천천한테 져주고 한턱내겠다는 핑계를 만들어 자신의 새 차를 자랑하면서 장천천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려고 했다. 그러면 그녀를 바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조군은 앉자마자 코를 시큰거리더니 이상해서 말했다.
  • “뭐지? VIP 룸에서 왜 썩은 냄새가 나는 거야?”
  • 모든 사람은 진명을 바라보았다.
  • 진명은 점심부터 갈아입지 않은 옷 때문에 냄새가 진동했다.
  • 안현미를 빼고 모든 사람은 진명과 두 사람의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 듣기 좋게 그의 자리가 음식이 오르는 자리기에 멀리 떨어져 앉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를 멀리하기 위해서였다.
  • “저 사람은 누구야?”
  • 조군은 이상해서 물었다.
  • “서빙인가? 너희 동아리에 서빙하는 사람도 있어? 이렇게 저질이야?”
  • 장천천은 얼굴이 빨갛게 변하더니 진명의 옷 냄새가 이렇게까지 진동할 줄 몰라 엄청나게 창피했다.
  • 만약 조군이 그녀의 지인이 모두 이런 거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을 얕보게 될 것이고 나중에 조군과 사귀더라도 약점이 되어 얕잡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화가 치솟아 소리쳤다.
  • “진명. 너 뭐야! 썩은 냄새 풍기면서 여기에 와서 얻어먹으려고 한 거야? 당장 가서 씻고 오지 못해?”
  • 시작할 때 오지 않겠다는 진명을 억지로 오게 한 사람이 장천천이였다. 진명더러 가방을 들게 하고 자신이 고상하다는 것을 뽐내더니 지금 또 진명을 나가라고 소리를 치는 장천천을 보고 있던 진명은 어이가 없어 말없이 일어나서 떠났다.
  • 진명은 룸에서 나오고 욕하기 시작했다.
  • “재수 없어. 아깝게 배달음식도 버렸잖아. 4000원인데.”
  • “진명아... 기다려....”
  • 진명은 그를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 안현미가 가방을 들고 따라 나온 거였다.
  • 진명은 놀라서 물었다.
  • “현미야, 너 왜 먹지 않고 나왔어?”
  • 안현미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
  • “기분이 나빠서 나왔어. 무슨 이유가 있겠어?”
  • 진명은 자신이 끌려갔다가 또 쫓겨나는 것이 대신 화가 나서 나온 안현미를 보고 말했다.
  • “그럴 필요 없는데.”
  • 진명은 이런 것이 일상이기에 습관이 되었다.
  • 안현미는 이 얘기를 더 하기 싫어서 걸으면서 말했다.
  • “이 얘기는 그만하자. 진명아, 너 진짜 차였어? 너 여자친구에게 아이폰을 사주려고 하루에 알바 세 개를 뛴다고 들었어. 너 그렇게 지극정성인데 걔는 어떻게 너한테 그래?”
  • 진명은 마음이 쓸쓸해지더니 말했다.
  • “나랑 같이 있으면 뭐해. 고생만 하잖아. 지극정성이 무슨 쓸모가 있어. 내가 사랑했던 여자이니까 원망하지 않아. 그냥 나 자신이 한심할 뿐이지. 왜 돈을 빨리 벌지 못했을까? 내가 돈을 좀 더 많이 벌었더라면 조금이라도 걔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 안현미는 진명의 옆모습을 보면서 그의 말에 감동하였다. 이렇게 순정적인 남자가 자신이 배신을 당하면서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 그녀는 진명의 어깨를 두드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말했다.
  • “기운 내. 내일의 태양은 또다시 뜨게 될 거야. 나는 네가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 알바하는 모습이 엄청나게 멋있어. 지금 모두 가난을 웃어도 창녀는 웃지 않는다고 하지만 너 지금 이 순수한 마음을 계속 지켜야 해. 앞으로 꼭 성공할 거야.”
  • 진명은 안현미한테서 위안을 받았더니 기분이 좋아져 한숨을 내면서 말했다.
  • “그래, 현미가 위로해주었는데 보답할 줄도 알아야지. 배고프지?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DY 레스토랑에 가자. 그곳이 미슐랭 별 세 개를 가진 레스토랑이어서 맛이 죽여줘.”
  • 안현미는 혼을 내는 모습을 하고 말했다.
  • “나한테 이렇게 돈을 써도 돼? 금방 차이고 나한테 바로 작업을 거는 거야? 역시 남자는 믿을 것이 하나 없다더니.”
  • 진명은 그녀가 화가 난 줄 알고 다급히 설명했다.
  •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좋은 레스토랑이 너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래. 너를 데리고 분식집에 갈 수는 없잖아. 너의 옷도 비싼데 분식집에 가면 격이 떨어지잖아.”
  • 안현미는 진명이 다급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 “됐어. 농담한 거야. 어디든 다 좋아. 싸고 깨끗한 곳이면... 어?”
  • 그녀가 말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 그녀는 아이폰 신상을 꺼내고 문자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 “어머, 장천천이 큰일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