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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 김지수가 입술을 억지로 깨물고 못 들은 척했다.
  •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나 진짜—”
  •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네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왼손 약지의 반지 자국을 더듬었어.”
  • 박도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날카로운 관찰력이 숨겨져 있었다.
  • “진짜로 기억을 잃었다면, 네가 약혼반지를 끼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하지.”
  • 김지수는 입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못 했다.
  •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올라 목까지 울렸다.
  • 그가 왜 내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 혹시… 병원에서 기억상실 흉내 낸 그 순간부터 이미 들킨 걸까?
  • “그리고,” 박도훈의 목소리가 다시 떨어졌다.
  • 확신으로 단단히 잠긴 어조였다.
  •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 귀 뒤 옅은 흉터를 스쳤다.
  • “열여섯 때 승마하다가 다친 자국이야. 정말 기억이 없다면, 의사가 굳이 머리카락으로 가리지 않았겠지.”
  • 김지수의 다리는 풀리고,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 그가 이걸 어떻게 알지?
  • 집안 모임에서 겨우 인사만 나눈 사이인데, 거의 남이나 다름없잖아.
  • 분명히 예전에도 그는 나와 아무 접점이 없었다.
  • “왜… 왜 바로 들추지 않았어요?”
  • 김지수가 간신히 목소리를 되찾았다. 더는 숨길 생각을 접었다.
  • 박도훈의 입꼬리가 위험하게 올라갔다.
  • 깊은 눈동자 속, 그녀가 읽을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 “네가 뭘 하려는지, 끝까지 보고 싶어서지.”
  •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오자, 김지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 등이 차가운 통유리창에 단단히 닿을 때까지.
  •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 창밖은 밤빛과 불빛으로 눈부셨지만, 그 빛조차 지금의 혼란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 박도훈의 손가락이 천천히 그녀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 검지가 고운 피부를 스치고, 그의 숨결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 “그리고, 박태민 그 멍청이는 애초에 너한테 어울리지도 않아.”
  • 그가 갑자기 무릎을 그녀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 김지수는 어쩔 수 없이 턱을 들어 올려 그를 올려다봤다.
  •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는 끝까지 좁혀졌다.
  • 그의 차갑고 맑은 시더우드 향과 백단향이 그녀를 완전히 감쌌다.
  • 다음 순간, 그의 입술이 다시 내려왔다.
  • 이번에는 병원에서처럼 불시에 휘몰아치는 약탈이 아니었다.
  • 더 느리고, 더 의도적이었다.
  • 먼저 입술 끝을 살짝 부드럽게 문질렀다.
  • 마치 조심스러운 탐색처럼.
  • 김지수가 저항하지 않자, 그는 천천히 키스를 깊게 만들었다.
  • 키스는 거부를 허락하지 않았다.
  • 그의 혀끝이 입술 라인을 따라 천천히 그리며, 그녀의 이성을 한 점씩 갉아먹었다.
  • 김지수는 밀쳐야 했다.
  • 복수 계획의 마지막 선을 지켜야 했다.
  • 침착하고, 선을 넘지 말아야 했다.
  • 하지만 그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뜨거운 열이 아랫배로 번쩍 올라왔다.
  • 힘이 한순간에 풀렸다.
  • 그는 한 손으로 뒤통수를 받쳐 차가운 통유리에 부딪히지 않게 했고,
  • 다른 손으로 허리를 감아 바싹 끌어안았다.
  • 마치 그녀를 뼛속까지 파고들어 자기 일부로 만들려는 듯했다.
  • 박태민은 이렇게 입 맞춘 적이 없었다—아니, 거의 입도 맞추지 않았다.
  • 그가 말했듯, 둘은 5년을 만났지만 그녀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 “복수하는 기분, 통쾌하지?”
  • 박도훈이 그녀 귓가에 속삭였다.
  • 따뜻한 숨이 귓바퀴를 스치자, 전기가 번지는 듯 간질거림이 올라왔다.
  • 그의 눈동자엔 잠깐 깊은 정이 스쳤지만, 목소리엔 달콤한 유혹만 가득했다.
  • “그놈한테 똑똑히 알려주자. 그의 약혼녀가 지금 형 침대에서 신음하고 있다고…”
  • 김지수는 부끄러워해야 했다.
  • 발버둥 치며 뿌리쳐야 했다.
  • 하지만 어둡고 깊은 쾌감이 한순간 그녀를 뒤덮었다.
  • 그 안으로 곧장 빠져들고 싶을 만큼.
  • 더 무서운 건, 그의 키스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다정함이었다.
  • 박태민에게선 단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온기.
  • 김지수는 그 영상 속, 자신의 차 안에서 추잡하게 얽힌 박태민과 강세리를 떠올렸다.
  • 그래. 그도 배신의 맛을 똑똑히 봐야지.
  • 강세리에게도 알려줘야 해.
  • 네가 애써 훔쳐 간 건 한낱 비열한 놈일 뿐이라고.
  • 김지수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 까치발을 들고, 매끈하게 이어진 그의 목젖에 입을 맞췄다.
  • 꿀꺽이는 움직임과 떨림이 또렷하게 전해졌다.
  • “우리… 안방으로 가요.”
  • 살짝 가쁜 숨이 섞인 목소리였다.
  • 그녀는 그의 셔츠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 이 한 줌을 쥐면, 복수의 배짱도, 설명 못 할 심장 두근거림도 같이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 박도훈의 목울대에서 낮은 울음 같은 소리가 흘렀다.
  • 그는 김지수를 번쩍 들어 안아 복도로 나섰다.
  • 복도를 지나며, 김지수의 등이 벽에 걸린 액자에 스쳤다.
  • 미세한 통증은 사나운 감정 속에 금세 잠겼다.
  • 지금의 충동이 이성적이냐고?
  • 이 일로 두 사람이 어디로 굴러가든 상관없었다.
  • 그녀는 알았다.
  • 이게 박태민과 강세리를 향한 가장 잔혹한 복수라는 걸—
  • 그가 했던 방식 그대로, 그들의 가면을 갈가리 찢어 주는 것이라는 걸.
  • 박도훈의 입맞춤은 불길 같았다.
  • 목덜미에서 쇄골까지, 줄줄이 불을 지른 듯 타올랐다.
  • 손끝은 영리했지만 절제도 있었다.
  •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며, 뜨거운 지문이 지나갈 때마다 피부가 화끈거렸다.
  • “확실해?”
  • 박도훈의 손이 문득 멈췄다.
  • 먹빛 눈동자가 그녀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었다.
  • 장난기 따윈 한 톨도 없었다.
  • 오직 진지함뿐이었다.
  • “지수야, 이건 하다 말자고 멈출 수 있는 게임이 아니거든.”
  • 김지수는 그의 깊은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 아직은 거의 낯선 이 남자를 똑바로 보며, 주저 없이 그의 벨트 버클에 손끝을 걸었다.
  • 떨림을 머금은 단단한 목소리.
  • “이렇게 확신한 적, 한 번도 없었어.”
  • 박도훈이 낮게 욕설을 반쯤 삼켰다.
  • 그녀 허리를 끌어쥔 손이 힘을 주며,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 순간, 하늘과 땅이 뒤집힌 듯했다.
  • 김지수의 등이 푹신한 거위 이불로 가라앉았다.
  • 그가 한쪽 무릎으로 매트리스를 짚었다.
  • 값비싼 이집트산 면 시트가 견디기 힘든 소리를 냈다.
  • 김지수의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방종 때문이었다.
  • 오늘부터, 그녀는 더 이상 얌전한 김지수가 아니었다.
  • 사랑과 우정에게 동시에 배신당한 불쌍한 애도 끝이었다.
  • “네가 지금 뭘 하는지 알아?”
  • 박도훈이 셔츠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 자개 단추가 튕겨 날아가 하나가 그녀 쇄골을 스치며 옅은 붉은 자국을 남겼다.
  • “날 궁지에 몰아서, 빈틈 타는 놈으로 만들고 있는 거야?”
  • 김지수가 무릎을 굽혀 그의 복부를 가볍게 밀었다.
  • 그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
  • 그녀 눈엔 마지막 맑은 정신과, 스스로도 속이는 고집이 비쳤다.
  • “내가 원한 건, 처음부터 복수뿐이었어.”
  • 그녀 손끝이 그의 단단한 복근 위를 스치자,
  • 박도훈의 검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 그는 번뜩 그녀 손목을 움켜쥐고, 높이 들어 머리 위로 고정했다.
  • 곧 자신의 넥타이로 단단히 묶었다.
  • “아니, 틀렸어.”
  • 그가 몸을 숙이자, 앞머리 검은 머리칼이 그녀 가슴선을 스쳤다.
  • “이게, 진짜 복수거든.”
  •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이가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
  • 빨아들이는 힘에 김지수 온몸이 팽팽하게 굳었다.
  • 숨이 막힐 듯했다.
  • 하지만 날카로운 이끝이 피부를 찢으려는 찰나,
  • 그의 움직임은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 조밀하게 핥으며, 뜨겁게, 길게 번져갔다.
  • 낯선 쾌감에 김지수의 등이 절로 활처럼 휘었다.
  • 박도훈의 뜨거운 손바닥이 치맛자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 손끝이 부끄러울 만큼 예민한 지점을 정확히 찾아냈다.
  • “5년.”
  • 그의 엄지가 원을 그리며, 목소리는 쉬어 갈라졌다.
  • “하… 그 쓸데없는 놈이.”
  • 갑작스러운 눌러짐에, 김지수는 숨을 들이켜며 앓는 소리를 냈다.
  • 안방 통유리창엔 둘의 얽힌 실루엣이 선명히 비쳤다.
  • 박도훈이 그녀 뒤통수를 받치듯 들어 올렸다.
  • 가느다란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받치고,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게 했다.
  • 동시에 길고 매끈한 손가락이 아무 예고 없이 파고들었다.
  • “지수야, 똑바로 봐.”
  • 그가 귓전에 속삭였다.
  • 구부러진 손가락의 각도가, 김지수 시야를 새하얗게 태웠다.
  • “이게 네가 원래 있어야 할 모습이야.”
  • 통증과 쾌감이 척추에서 번개처럼 합쳐져 번쩍였다.
  • 김지수는 비명을 삼키려고 아래입술을 세게 물었다.
  • 손가락을 빼낼 때 번진 젖은 자국이, 달빛 아래서 진주처럼 반짝였다.
  • 다음 순간, 벨트 버클이 빠져나가는 금속 소리가 났다.
  • 총알이 장전될 때 같은 차갑고 팽팽한 긴장감.
  • 그가 문 앞에서 멈춘 채, 이마의 땀방울이 날카로운 턱선을 타고 흘렀다.
  • 방울이 톡, 그녀 아랫배 위 피부에 떨어졌다.
  • 그제야 그녀는 알아챘다—자신이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꽉 감고 있다는 것을.
  • 그 사실이 번개처럼 내려쳤다.
  • 방금 전 어떤 접촉보다 더한 수치심이 가슴을 후벼팠다.
  • “원한다고 말해.”
  • 박도훈 눈동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 같았다.
  • 그의 동공에, 그녀 흔들리는 모습이 비쳤다.
  • 김지수는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성큼 끌어당겼다.
  • 속눈썹이 닿을 만큼 가까워지자, 이를 악물고 세 글자를 밀어냈다.
  • “나, 널 미워해.”
  • 박도훈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 가슴에서 울린 진동이 맞닿은 곳을 타고 그녀 심장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 처음의 통증과 쾌감이 한꺼번에 터졌다.
  •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거의 폭력에 가까운 극한의 열기.
  • 부딪치는 힘에 침대 머리가 벽을 쿵쿵 울렸다.
  • 그녀 손톱이 그의 등을 깊게 파고들었다.
  • 차가운 피부 위로 선명한 붉은 흔적이 길게 남았다.
  • 그는 펼쳐진 책을 읽듯 그녀 몸을 읽었다.
  • 내리칠 때마다 가장 예민한 신경만 정확히 건드렸다.
  • “나 봐.”
  • 절정에 닿기 직전, 그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 쉬어 갈라진 목소리에 명령이 실렸다.
  • “기억해. 누가 널 이렇게 만드는지.”
  • 김지수가 눈을 번쩍 뜨자, 그의 끝 모를 눈동자가 시야를 꽉 채웠다.
  • 빠르게 밀고 당기는 리듬 속에서,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비명을 섞어 불렀다.
  • 온몸을 떨며 꼭대기에 닿았다.
  •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 박태민과 강세리가 뒤엉킨 장면이 번쩍 스쳤다.
  • 그래, 두 놈 다 뼈저린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 그리고 박도훈…
  • 김지수는 코앞의 남자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싸늘하게 웃었다.
  • 그는 그녀 손에 쥔 가장 날카롭고, 동시에 가장 위험한 무기였다.
  •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기울었다.
  • 통유리창을 스쳐 들어와,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 김지수는 눈에 띄게 큰 검은 실크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 옷자락은 허벅지 근처에서 겨우 멈췄고,
  • 헐거운 깃 사이로 드러난 피부 위엔 멍과 붉은 자국들이 어젯밤 얼마나 격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 그녀는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밟고, 바쪽으로 물을 뜨러 가려 했다.
  • 그때 문벨이 불쑥 울렸다. 고요가 한순간 깨졌다.
  • 김지수 발걸음이 멈췄다.
  • 현관으로 가서 도어뷰를 들여다봤다.
  • 문 밖엔 초조함으로 덮인 박태민 얼굴이 있었다.
  • 그녀는 자신이 입은 셔츠를 한번 내려다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 그리고 문을 열었다.
  • “지수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