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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기장 제복

  • 공항 밖
  • 안영과 송강은 먼저 차에 탔고 10분쯤 기다리니 박환희가 나타났다.
  • 그가 새벽 내내 비행기를 조종했으니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빈틈없이 완벽한 와이프로서 남편이 하루빨리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게 하려면 당연히 혼신의 힘을 다해 비위를 맞춰야 한다.
  • 안영은 그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물었다.
  • “이 정도 힘이 어때?”
  • 그의 큰 손이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
  • “잠깐만 안겨 있어.”
  • 박환희는 그녀를 품에 안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 차가 차고에 안전하게 들어섰을 때 안영은 박환희가 그녀의 품에 기대어 잠이 든 것을 발견했다.
  • 그의 자고 있는 모습마저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 특히 그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은 모든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 그의 기장 모자는 아무렇게나 자리에 내팽개쳐져 있었고 제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완벽에 가까웠다.
  • 송강은 박환희를 깨우려고 했지만 안영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는 조용히 차에서 내려 둘에게 그 공간을 내어주었다.
  • 그가 안영의 몸에 기대어 있어 어깨가 저렸지만 그녀는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 기장의 업무는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 특히 비행기가 이륙한 뒤에는 정신을 집중한 채 어떠한 사소한 착오도 범해서는 안된다.
  • 조그만 실수로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그녀는 성모 마리아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 남자가 가여워 보일까?
  • 안영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 곧 이혼하는데 남편에게 바치는 마지막 성의라고 할까?
  • 박 씨 그룹 대표 사무실
  • 박환희는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이혼 합의서를 보고 있었다.
  • 비행이 없을 때 그는 회사로 와서 사무를 처리하곤 했다.
  • 남행 항공은 박환희의 할머니의 친정의 사업이었고 박환희의 할머니는 원래 성이 양 씨였는데 양 씨 집안은 이 대에 이르러서는 집안을 이어갈 자손이 없었다.
  • 양 씨 가문에는 딸이 두 명 있었지만 무능한 인물들이었다.
  • 한 명은 그림을 배운다고 하고 한 명은 포토그래퍼를 한다고 했다.
  • 항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 결국 어쩔 수 없이 박환희의 할머니에게 부탁했고 박환희의 할머니의 죽기 전 가장 큰 소원은 친정의 사업을 물려받아 키워가는 것이었다.
  • 남행 항공의 실질적인 오너는 몇 년 전에 이미 박환희로 바뀌었다. 그는 할머니에게 양 씨 집안의 두 딸과 그녀들의 부유한 삶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였다. 또한 남행 항공의 안정적인 발전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 그는 당연히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남행 항공을 인수하고 몇 년 뒤 양 씨 집안의 두 딸이 후계자를 낳아 후계자 수업을 잘 받는다면 그는 자연스레 남행 항공을 양 씨 집안으로 돌려줄 것이다.
  • 항공사를 넘겨받으려면 당연히 이 업계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한다.
  • 그는 한결같이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으로서 일단 손을 대면 허투루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 같은 맥락으로 이혼하기로 결정했으면 절대 질질 끌지 않을 것이다.
  • 박환희는 사인펜을 잡은 손을 꽉 쥐고 본인의 이름을 적었다.
  • 그리고 송강을 불렀다.
  • “한 부는 안영에게 줘.”
  • “도련님, 진짜 사인하셨어요?”
  • 송강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는 도련님이 사모님과 이혼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 “왜? 내가 이혼하는데 네가 안 좋아해?”
  • 박환희는 눈썹을 치켜뜨며 송강을 쳐다봤다.
  • 송강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 “아닙니다. 지금 바로 안영 씨한테 가져다드리겠습니다.”
  • ‘휴, 이제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겠네.”
  • 강송 별장
  • 안영은 노트북을 다리에 올려놓고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바로 노트북을 덮었다.
  • 송강이 들어왔다.
  • “도련님이 사인했습니다.”
  • “잘 됐네요.”
  • 안영은 이혼 합의서를 받아들고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한 홀가분한 웃음을 지었다.
  • “송 팀장님, 환희 씨에게 오후 3시에 동사무소 앞에 오라고 전해주세요. 제가 기다릴 거라고 전해줘요.”
  • 말을 마치고 그녀는 이미 정리해 놓은 캐리어를 챙겨 별장을 나섰다.
  • 송강은 하는 수 없이 박환희에게 전화를 걸어 여실히 보고를 했다.
  • “이렇게 이혼하기만을 기다렸던 거야?”
  • 박환희의 가슴에 무엇인가 짓눌린 것처럼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