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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그녀는 귀요미에서 차도녀로 변했다

  • 애초에 그녀와 결혼을 한 이유는 할아버지가 다그치셔서였다. 지금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이제 이혼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없었다.
  • 이혼하면 했지, 질질 끌 필요가 있어?
  • 그는 송강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말했다.
  • “내일 3시까지 기다릴 필요 없다 그래. 가서 전해, 지금 당장 가도 된다고.”
  • 안영이 별장 문 앞까지 왔을 때 송강이 뒤에서 쫓아왔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세웠다.
  • “안영 씨.”
  • “왜요?”
  • 설마 박환희가 이혼하기 싫다고 한 건가?
  • “도련님이 지금 당장 가자고 하십니다. 저한테 동사무소까지 모시라고 했습니다.”
  • “정말 잘 됐네요. 부탁드릴게요, 송 팀장님.”
  • 동사무소.
  • 점심시간이라 이혼 절차를 밟으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동사무소 홀이 유난히 텅 빈 것 같았다.
  •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안영과 박환희는 이혼 절차를 밟고 나왔다.
  • 안영은 바깥의 하늘이 더 파래 보였고 공기도 더 맑은 것만 같았다.
  • 드디어 이혼했다.
  • 4년의 결혼생활이 끝을 맺었다.
  • “어디 갈 거야? 내가 바래다줄게.”
  • 박환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영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 “됐어.”
  • 그녀는 도로 맞은편을 향해 손을 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서있던 벤틀리가 그들을 향해 왔고 차 문이 열리며 운전석에는 박환희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강 대표님?”
  • 박환희의 표정은 싸늘해졌고 안영과 강경원이 왜 아는 사이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세 의약의 대표 강경원이 아직 솔로라는 소문이 생각나서 그는 순식간에 기분이 불쾌해졌다.
  • “박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요 몇 년 동안 안영을 잘 보살펴 줘서 감사드립니다.”
  • 강경원은 보기 좋게 웃으며 안영의 캐리어를 들어 차에 실었다.
  • 박환희는 얼굴을 찌푸리고 안영이 조수석에 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가 이렇게 다급하게 이혼을 기다리고 있더라니 알고 보니 벌써 남자를 찾은 거였어?
  • 강경원이 나보다 잘 생겼어? 나보다 돈 많아? 이 여자가... 이런, 내가 왜 강경원이랑 비교를 하고 있는 거야? 전혀 내 상대가 안 되는 사람인데.
  •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마음이 씁쓸해졌다.
  • “박 대표님, 영원히 안녕.”
  • 안영은 그를 향해 손을 저었고 그녀의 미소는 유난히 빛났다.
  • 그녀는 이제 그에게 여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 후 4년 내내 그녀는 온순하고 발랄했지만 지금처럼 화사하게 웃었던 적은 없었다.
  • 그 모습에 박환희는 멍 해졌다.
  • 마음이 허전한 게 생명의 일부가 그의 곁을 떠난 것만 같았다.
  • 벤틀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송강은 조심스럽게 그의 곁에 다가왔다.
  • “도련님, 이제 가요.”
  • 박환희의 준수한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타 쾅 하고 차 문을 닫았다.
  • 안영은 경운 별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남산 묘지로 향했다.
  • 그녀는 박환희의 할아버지 묘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박환희의 할아버지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자상한 모습이었고 마치 늘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 “할아버지, 죄송해요. 저 박환희랑 이혼했어요.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다면 저를 탓하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뵈러 올게요.”
  • 그녀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 한 남자가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늘씬하고 긴 다리에, 검은색 옷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녀를 지그시 주시하고 있었다.
  •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만난 것이었다.
  •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맞았다.
  • 하지만 이미 이혼을 했으니 그녀는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할 의무가 없었다.
  • 그녀가 몸을 일으켜 그의 곁을 지나치는 순간 그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 “여기 왜 왔어?”
  • “할아버지 뵈러 온 거야.”
  • 그녀는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의 온화했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서먹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발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강렬한 포스를 풍기고 있어 그와 비슷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 박환희는 눈앞의 안영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평소와 달랐고, 달라도 너무 달랐다.
  • “박 대표, 이 손 놓으시지?”
  • 안영은 빨간 입술을 움직여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을 뱉었다.
  • 박환희는 손을 놓았고 그녀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매 한 걸음은 마치 그의 마음을 짓밟는 것 같아 그는 마음이 쓰라렸다.
  • 그제서야 그는 그녀가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라 그의 전처이며 서로에게 가장 친숙한 낯선 사람임을 깨달았다.
  • 박환희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 차에 올라타자마자 송강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 “도련님, 왕시아가 촬영 도중에 와이어가 끊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다고 합니다. 지금 서울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 박환희는 시동을 걸고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통화를 이어갔다.
  •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조심하지 않고?”
  • “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박 씨 엔터테인먼트의 고위층은 섣불리 매체에 알리지 못하겠다면서 도련님에게 여쭤보라고 하셨습니다.”
  • “내가 지금 서울 병원으로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 박환희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 서울 병원
  • 송강은 조급하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환희의 차를 보자 그는 바로 다가와서 보고했다.
  • “왕시아는 응급실에서 지금 수술실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 “일단 올라가 보자.”
  • 박환희는 엘리베이터로 가려고 했으나 송강이 말렸다.
  • “지금 병원은 기자들로 꽉 찼습니다. 도련님은 비상계단으로 올라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기자들이 도련님을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스캔들 기사를 쓸게 뻔했다.
  • 왜 박 씨 그룹의 대표가 친히 왕시아 병문안을 오는 것일까? 등등의 기사 말이다.
  • 박환희는 걸음을 멈칫하더니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 수술실은 5층에 있었다.
  • 그는 비상계단에서 나오자마자 복도 끝의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 앞장을 선 사람은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여자였다. 긴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 올려 매끈한 목선을 드러냈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진료 차트를 확인하는 모습은 멋져 보였다.
  • 그녀의 뒤에는 수십 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따랐고 하나같이 공손한 표정이었다.
  • 그녀의 청아한 얼굴을 확인한 후, 하늘이 무너져도 변함이 없을 것 같던 박환희의 준수한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 “안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