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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박 사모님의 달아오른 얼굴이 놀라워!

  • 주위에 있던 영국인들에게서 탄성이 들려왔다.
  • “이 기장의 영어는 내가 들어봤던 것 중에 제일 전문적이고 듣기 좋네.”
  • “완벽해.”
  • “한국어 할 때도 듣기 좋던데.”
  • 안영은 그들이 영어로 하는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
  • 송강은 자세를 바로 해 가슴을 내밀며 얼굴 가득 자랑스러움을 담아 말했다.
  • “사모님, 도련님께서 멋있다고 생각하되지 않으십니까?”
  • “내 남편이 정말 최고예요! 정말 멋져요! 최고예요!”
  • 안영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아낌없는 칭찬을 내줬다.
  •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송강을 통해 죄다 박환희의 귀에 들어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1시였다.
  •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안영은 재채기를 했다.
  • 담황색의 치마에 겉에는 카키색의 트렌치코트를 입어 너무 적게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새벽 공기는 확실히 차가웠다. 이따금 찬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지자 그녀는 약간 참을 수가 없었다.
  • 송강은 그녀의 옆에서 같이 박환희를 기다렸다.
  • 일이 끝나자 그제서야 그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 사무장과 몇 명의 스튜어디스 등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큰 보폭으로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모습이 공항에서 한 폭의 그림같이 그려졌다.
  • 특히나 박환희는 훤칠한 키에 긴 다리, 기장 제복을 입은 냉랭하고 금욕적인 분위기를 아낌없이 풍겨댔다.
  • 안영은 그런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 이혼할 것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그의 동료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다.
  • 그저 얌전히 송강의 곁에 붙어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 “박 기장님, 내일 밤에 뵐게요.”
  • “박 기장님, 안녕히 계세요.”
  • 한결과 스튜어디스들이 박환희에게 인사를 한 후 제 갈 길을 갔다.
  • “송 보좌관님도 참 대단해요, 출장에 여자친구도 데려오고.”
  • “근데 전 왠지 저 여자, 어쩌면 박 기장님의 아내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 “저 여자애 아무리 봐도 20살 같아 보이는데요? 우리 기장님은 26살인데 어떻게 저렇게 어린애를 만나요?”
  • “박 기장님 눈이 얼마나 높은데요, 저런 어린애가 눈에 들 리가.”
  • 그녀가 입을 열자 다른 스튜어디스들은 그 말을 이으려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후 그녀들은 화제를 돌려 얘기를 시작했다.
  • 차는 안정적으로 호텔을 향하고 있었다.
  • 박환희는 차에 타자마자 안영의 손을 잡아챘다.
  •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 “날이 좀 차서 그래.”
  • 안영은 자신의 머리를 박환희의 어깨에 기댔다.
  • 이혼하려는 것만 아니라면 이런 노부부 같은 관계도 영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 호텔에 도착해서 안영은 먼저 씻고는 침대에 드러누워 잠들었다.
  • 왠지 머리가 무거운 느낌이었다.
  • 박환희는 씻고 나오자 잠이 든 그녀를 보고는 그저 그녀의 옆으로 가 누웠다. 막 불을 끄려는데 자신의 옆에 누운 여자의 몸이 불 덩이 같은 것이 느껴졌다.
  • “안영?”
  • 여자의 두 눈이 꼭 감긴 것이 마치 혼절한 것 같았다.
  • 그는 커다란 손을 그녀의 이마에 대고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 “왜 이렇게 뜨겁지?”
  • 이상할 정도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그는 곧바로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 “의사를 좀 불러 주실 수 있나요? 웬만하면 여자로요.”
  • 약 십분 후, 구급상자를 든 의사가 도착했다.
  • 우선은 안영의 체온을 쟀다. 39도.
  • “아가씨께서 찬 바람맞아 감기에 걸리신 것 같은데, 선생님 혹시 그녀의 옷을 벗겨 주실 수 있나요?”
  • 금발에 파란 옷을 입은 여의사가 박환희를 쳐다보았다.
  • “제가 해열제를 주사해야 해서요.”
  • 박환희의 담담한 표정이 흔들리더니 곧 길쭉한 손을 내밀어 안영의 옷을 벗겨냈다.
  • 의사는 안영에게 주사를 놔주고 약까지 처방해 주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 깊은 밤, 박환희는 시도 때도 없이 품 안에 있는 여자의 체온을 체크했다. 왠지 이 열은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