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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소문 속에 사는 여자

  • 그녀는 소문 속에 사는 여자였다.
  • 이혼을 앞두고 있으니 그녀의 모습은 더더욱 알려질 필요가 없었다.
  • 그녀도 그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 박환희는 안영의 여유로운 모습에 잠시 실망한 듯해 보였다.
  • 그들은 결혼할 때 혼전 계약서를 체결하였고 그들의 결혼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박환희는 잘 알고 있었다.
  • 안영은 그의 아내가 되어서도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박환희는 그녀에게 명품 백과 명품 옷, 그리고 주얼리들을 사주었으며 돈과 관련된 거라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 그녀는 그에게 맞춰 할아버지 앞에서 애정표현을 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 그는 병원 입구에서 안영을 처음 만났었다. 그녀는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을 때 빗속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 “나와 결혼해 줄 사람 어디 없나요?”
  • 지나가던 행인들 모두가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 그는 안영이 왜 그러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 다만 그도 결혼할 여자가 필요했고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 그들은 결혼한 지 벌써 4년이 되었고 지난주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4년간의 쇼를 끝내고 결혼 생활이 막을 내렸다.
  • 할아버지의 죽음이 그에게 매우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에 일주일 늦게 장례를 치렀다. 그는 지금도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웃으시는 모습이 눈에 선했고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
  • 4년 동안 두 사람은 일반 부부와 다를 바 없이 지냈다. 그는 매우 바빠 보통 주말에만 강송 별장에서 지냈다.
  •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해 그를 기다렸고 그가 왔다 가더라도 불평하지 않았다.
  • 박환희가 출발하기 전 그녀는 발꿈치를 들고 그의 볼에 살짝 키스해 주며 말했다.
  • “여보, 잘 다녀와.”
  • 박환희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말했다.
  • “조금 있다가 빈소에 도착하면 얌전하게 있어.”
  • “응, 알았어.”
  • 안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배웅했다.
  • 그들은 당장 이혼할 것 같기는커녕 아주 다정한 부부 같아 보였다.
  • 남자가 검은색 벤틀리에 올라탄 것을 보고 안영은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
  • 얌전하고 부드러운 표정은 금세 싸늘하게 변했고 청초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차갑게 돌변했다.
  • 상냥하고 호의 적이었던 그녀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표정이었다.
  •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다.
  • 그녀는 무표정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집을 나섰다.
  • 언제부터인가 하늘에서는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남산 묘지의 초록빛 잔디는 부드러웠고 남산 전체가 비의 장막으로 뒤덮여 흐릿하고 희미했다.
  •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는 이 곳에 할아버지의 묘지를 선택했다.
  • 장례식은 매우 간소하게 치러졌으며 장례식장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박 씨 집안의 친척과 친구 및 사업 파트너뿐이었다.
  • 하얀 백합꽃은 빗물에 씻겨 더 하얗게 보였고 한 다발, 두 다발… 눈을 들어 바라보니 묘비 주변은 온통 하얀 백합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 안영은 차에서 내려 검은 우산을 쓰고 인파 속을 향해 걸어갔다.
  • 그녀의 눈에는 매끈한 몸매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박환희의 모습이 보였다.
  • 용모가 준수한 그의 얼굴은 슬픔에 잠겨 있었고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으며 사람들의 맨 앞줄에 조용히 서 있었다.
  • 할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그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정이 매우 깊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 안영은 다가가 허리를 굽혀 추모하였고 묘비에 있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손에 들고 있던 백합을 묘비 앞에 살며시 놓았다.
  • 그렇게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났다.
  • 그녀는 이런 장소, 이런 분위기가 너무 싫었고 누군가 그녀 곁을 떠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 할아버지는 생전에 그녀를 친손녀처럼 예뻐해 주셨고 잘 대해 주셨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에는 유감스러움과 슬픔이 배어 있었다.
  • 그녀는 비를 맞으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묘비에 무릎을 꿇고 연속 세 번 절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