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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영어 참 잘하는 박 기장님

  • 어쩐지 저 스튜어디스들이 그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매일 울상이더라니.
  • 그럼에도 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엄숙했다.
  • “표준 계기 출발 절차 설정.”
  • “완료했습니다.”
  • “유시계 비행 조건은?”
  • “구비했습니다.”
  • “가시도는?”
  • “대략 14.8 Km, 구름이 적고 운고 5700 인치입니다.”
  • 일련의 확인 과정이 끝나고 사무장 한결이 조종실로 와서 박환희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 “박 기장님, 전체 승객 탑승 완료했습니다. 여기 탑승객 리스트입니다.”
  • 한결은 박환희와 여러 번 비행을 함께 해 그가 일할 때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어 바로 탑승객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 많은 기장들이 탑승객 리스트까지 챙기지 않았지만 박환희는 늘 그것까지 신경 썼다. 반드시 더 많은 정보들을 엄밀히 확인해 만전을 기하는 성격이었다.
  • “모든 탑승객이 건강해 보였나요?”
  • 박환희는 리스트를 뒤적이다 안영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 통과 허가가 내려졌다.
  • 박환희는 비행기를 조종하여 이륙시켰다.
  • 그리고 이때 비즈니스석에서 안영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 비행기 정말 지루하네. 이 남자는 왜 굳이 그녀보고 비행에 따라오라는 건지. 그러나 그녀의 좌석과 멀지 않은 곳에 바로 조종실이 있었다.
  • 그러다 조종실에서 비행하고 있는 박환희에게로 생각이 뻗어나갔다. 이렇게 빠르고도 안정적으로 비행을 하고 있는 박환희라니, 너무 멋지잖아?
  • 새삼 멋있어 보였다.
  • 비행기는 이미 안정 비행이 시작되었고 수다를 떨 틈이 생겼다. 이 스튜어디스들은 박환희와 여러 번 비행을 했던 사람들이라 특별 보좌관인 송강을 진작에 알아보았다.
  • “있잖아요, 송 보좌관님 옆에는 여자친구 아닐까요?”
  • “되게 예쁘게 생겼던데요? 탑승할 때 보니까 송 보좌관님이 옆에서 되게 조심스럽게 따르면서 시중들던데요? 아까는 저한테 얇은 담요도 달라고 하더니 그 여자 다리에 덮어주더라고요.”
  • “송 보좌관이 그렇게 다정하게 대해준다고요? 부하가 이렇게 다정한데 우리 박기장님도 박 사모님한테 송 보좌관님처럼 저렇게 다정하실까요?”
  • “저야 모르죠, 조종실로 가서 물어보시던가요.”
  • “어우, 싫어요. 박 기장님은 너무 차가워서 좀 무서워요.”
  • 둘러서 있던 스튜어디스들이 일순 웃음을 터트렸다.
  • 이때 다가온 하도연이 눈앞의 스튜어디스들이 신나서 웃는 것을 발견하곤 물었다.
  • “무슨 일인데 웃어요?”
  • “아, 도연 씨. 도연 씨라면 박 기장님한테 가서 물어볼 수 있겠어요?”
  • 하도연 앞으로 스튜어디스 한 명이 다가섰다.
  • “무슨 말이요?”
  • “별거 아니에요. 그냥 장난 좀 친 거예요.”
  • 한결이 그 스튜어디스를 툭 치더니 슬쩍 눈치를 줬다.
  • 하도연이 박기장을 좋아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 그러자 그 스튜어디스는 뒤늦게 아차 했다.
  • “우리는 그저 송 보좌관님 여자친구 얘기하고 있었어요. 박 기장님께서 아나 모르나 물어보고 싶은데 영 용기도 안 났거든요.”
  • “그랬구나!”
  • 하도연은 슬쩍 웃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이때, 방송에서 기장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박환희의 그 낮게 깔려 마성을 가진 섹시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들려왔다.
  • 뒤이어 영어로 다시 한번 방송이 재개됐고 이건 안영이 처음으로 박환희가 하는 영어를 듣는 것이었다.
  • 유창한 발음과 흘러가는듯한 어조가 사뭇 완벽했다.
  • 안영은 머리를 창가에 기대 어둑해진 밖을 바라보며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일하는 박환희는 그녀로 하여금 마음이 흔들리게 만들었다.
  •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 불타오르던 시기를 떠올렸다. 그때도 이처럼 섹시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던 것이 떠오르며 그녀의 귓가가 붉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