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매니저를 한 번 쳐다본 뒤 호주머니에서 유유히 카드 한장을 꺼내들었다, 보라색 꽃무늬로 포인트를 더 한 카드를 테이블 위에 딱 올려 놓는 순간 이내 전세역전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방금 나가라는 말, 저한테 하신 거 확실합니까?”
민지훈이 꺼낸 카드를 보던 매니저는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랐고 입이 떡 벌어진 채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거듭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귀찮고 아니꼽게 쳐다보던 방금 전 상황과는 180도 달리진 매니저의 태도, 꿋꿋하게 서 있던 그가 이내 몸을 새우처럼 움츠리고 민지훈한테 굽신거린다.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귀하신 분을 못 알아뵙고 그만 결례를 범했습니다, 정중히 사과드리오니 부디 용서하십시오, 이 자리 이용하실 수 있도록 빠르게 조치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다른 사람들 다 내보내겠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급변한 매니저의 태도에 어리둥절해진 최영도와 민소희, 방금 전까지도 자신들 편을 들던 매니저가 손 바닥 뒤집듯 빠르게 태도를 바꾸다니, 그것도 민지훈한테 굽신거리면서 사과를 하다니!
표정을 싸악 바꾼 매니저가 최영도네 무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아래 층 일반석으로 가주시지요!”
당황한듯 살짝 벙 쪄있던 최영도는 이내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라고 했어? 지금 누구더러 아래 층으로 내려가라 마라야? 당신 밥 줄 끊기고 싶어?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래? 나 선샤인 주얼리 외동 아들이야, 내가 일 년동안 당신네 더블유에서 먹은 밥 값이 얼만줄 알아? 이 멤버십 카드에 얼마나 들어있는지 아냐고? 몇 백만원이야! 그걸 알고 지금 날 내 쫓으려는 거야? 당신 직장 잘리고 싶어서 환장했지?”
“그러니까...”
윤소희가 약간 차가워진 시선으로 민지훈을 흘겨보더니 매니저한테 따지고 들었다.
“민지훈이 저 딴 카드 한 장 꺼내들었다고 우릴 내 쫓아요? 누구 맘대로? 쟤 툭 털어봤자 먼지밖에 안 나오는 알바쟁이에 가난뱅이라고요, 저 딴 애 때문에 우리가 왜 물러나야 하는데요?”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어쩜 하는 짓거리마저 똑같은지, 민지훈은 마구 날뛰는 최영도와 윤소희를 보며 입술에 조소가 스쳤다.
그러나 다시금 어두워진 얼굴로 매니저가 말을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이 카드가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 같은데 이 카드로 말할 것 같으면 저희 더블유 레스토랑 본점에서만 발급하는 최고의 VVIP카드입니다, 매년 더블유 누적 소비금액이 2억은 넘어야 발급 가능한 귀빈 카드지요. 더블유 레스토랑이 전 세계 900개가 넘는데 이 카드를 제시하는 손님은 반드시 귀빈 모시듯 깍듯이 최상급 서비스로 모셔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손님께서 이 카드를 제시한 이상 저희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거지요...”
“2억이요? 그럴리 없어요, 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 상황이 꿈이기만 바라는 윤소희,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적지 않게 당황한 얼굴은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갔다.
“당신 미쳤어? 저 자식 꼴을 좀 봐, 이런데서 2억이나 소비를 할 놈으로 보여?”
황당한 건지 화가 난건지 최영도 역시 검으락 푸르락 마구 날뛰었다.
그 상황에 민지훈은 더더욱 차분한 얼굴로 자기들 혼자 잘난 척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영도와 소희를 보며 비웃었다, 그동안 세상 혼자 사는 사람들처럼 기고만장하더니 자신들보다 훨씬 고귀하고 잘난 누군가가 있을거라는 건 왜 생각을 못한 건지.
“죄송합니다만 그만 내려가 주시지요!”
매니저가 무거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싫어요, 난 꼭 여기서 먹어야겠어요, 이 테이블 내가 찜했다고요, 음식 오르면 사진 예쁘게 찍어서 SNS에 자랑하려고 내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데, 이제와서 나더러 아래층으로 가서 이 구린내 풍기는 거지새끼랑 같이 밥을 먹으라고요? 난 안가요...”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윤소희는 팔을 홱 뿌려쳤고 그 시각 매니저의 시선은 민지훈한테 멈췄다.
그래, 소희야, 얼마나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을까?
민지훈은 그런 소희가 안쓰럽다 못해 가엾게 느껴졌다.
“감히 누가 날 내쫓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나 여기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니까...”
윤소희는 화가 나 씩씩거리며 투털댔다.
그 모습이 너무 아니꼽게 여겨진 민지훈이 매니저에게 쏘아붙이듯 말을 했다.
“더블유에서 고객 관리를 이 따위로 합니까?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요? 지금부터 딱 2분 드릴테니까 쓸데없는 인간들 당장 내 눈 앞에서 치워줘요...”
그 말에 매니저는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공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내 윤소희를 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 계속 이렇게 억지 부리시면 저희는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영업 방해죄로 체포될 것이며 학교에도 다 알려질 거며 절대 가볍게 끝날 일이 아니지요...”
윤소희는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 민지훈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지훈은 끄떡없이 꿋꿋한 목소리로 짧고 굵은 한 마디를 던졌다.
“다 치우라고요...”
윤소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아래층으로 성큼성큼 발길을 옮기며 투덜댔다.
“까짓것 아래 층 가면 되지, 그래봤자 우리가 너보다 훨씬 더 비싼 거 먹을 거거든? 너 같은 거지새끼가 고급 레스토랑에 와 봤자 먹을 수 있는 건 싸구려 물 한 잔이 다겠지!”
그러자 민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웃으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아래층으로 간다니? 내 말 못 들었어? 다 치우라고 했잖아, 더블유 모든 사람들 다 여기서 나가라고, 여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