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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거부하는 남자

평범함을 거부하는 남자

벅차오름

Last update: 2021-11-04

제1화 여신절, 나의 여신님이 바람났다!

  • 동녘 하늘을 살포시 덮은 구름 사이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유독 매력적인 어느 늦은 오후, 한국외대 앞에 홀로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포착된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오고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듯한 민지훈이다.
  • 어린 소녀의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듯한 빨간 장미 한 다발을 품에 안은 민지훈은 그 시각 학교 앞 신기한 풍경을 이루었고 오고 가는 학생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았다, 다만 후줄근한 츄리닝에 남루한 옷 차림의 민지훈을 학생들은 로맨티스트를 향한 부러운 시선이 아닌 색 안경을 쓴 편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 제 아무리 멋지고 예쁜 꽃다발을 들었다고 한 들 그들이 보는 민지훈은 여자들을 심쿵하게 만드는 “꽃을 든 남자”가 아닌 그저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가난뱅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 그러거나 말거나 민지훈은 학생들의 색다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틈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익숙한 그 모습만 애타게 찾고 있었다.
  • 손 꼽아 기다리던 여신절을 맞이 해 이번 달 알바비를 전부 올인하다시피 민지훈의 기준에서는 거금을 들여 순금 펜던트를 구입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그녀의 환한 미소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그녀를 웃게할 수만 있다면 민지훈은 무엇이든 할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다.
  • 그러나 점차 줄어드는 인파에도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슬슬 조바심이 난 민지훈의 미간은 심하게 찌푸려졌다. 불안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꺼내들었지만 애초에 오늘의 이벤트를 준비한 목적과 취지는 서프라이즈였기에 그는 이내 생각을 접고 휴대폰을 접었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스스로 고뇌에 빠져 있을 때 캠퍼스 안에서 울려 퍼지는 은구슬 굴러가듯 챙챙한 웃음소리가 지훈의 고막을 자극한다.
  • “아앙, 오빠, 하지 마세요, 보는 눈도 많은데 왜 이러세요!”
  • 왠지 익숙한 그 목소리에 내심 기뻐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민지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떡 벌어진 채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 저 멀리 캠퍼스에서부터 나란히 걸어나오는 한 쌍의 남녀, 왜소하다 못해 긴 참대 막대기 같은 체격의 깡 마른 남자, 푹 꺼진 양 볼과 눈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왠지 거슬린다. 반면 그 옆에 있는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 뽀샤시한 피부에 남심을 자극하는 긴 생머리, 새하얀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그녀는 갓 피어난 새하얀 꽃망울처럼 청순 가련미가 뿜뿜, 너무도 사랑스럽다.
  • 껌딱지처럼 서로에게 찰싹 달라붙은 두 사람, 남자는 어깨동무를 한 손으로 여자의 목을 슬쩍 감고 있었고 매너 꽝인 나쁜 손은 여자의 옷 깃 속을 깊숙이 파고 드는게 딱 봐도 의도가 불순했고 입이 귀 밑까지 째진 채 느끼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낄낄댄다.
  •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민지훈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속이 뒤집어져 마음속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오직 그녀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랑했는데 그런 그녀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다니, 게다가 사람들 다 보는 캠퍼스에서 저렇게 대놓고 과감한 스킨십을?
  • “민지훈? 네가 여긴 웬일이야?”
  • 전혀 생각지 못했던 민지훈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화들짝 놀란 윤소희는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제서야 부랴부랴 옷 깃속에 들어있던 남자의 손을 빼냈다.
  • “민지훈? 소희야, 코딱지만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한다던 가난뱅이 네 전 남친이 이 자식이야?”
  • 아니꼬운 시선으로 민지훈을 아래 위로 쭉 훓어보며 혀를 끌끌 차는 최영도, 혼자만 잘난 척 콧대는 하늘을 찌를 듯 잔뜩 높이 올린 채 민지훈을 신나게 비웃는다.
  • 최영도의 말에 민지훈은 순간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어리둥절 해졌다, 전 남친이라니? 내가 왜, 언제 소희의 전 남친이 된 거지?
  • “소희야, 이 사람 누구야? 네가 왜 이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건데?”
  • 윤소희는 상상 밖으로 담담했고 방금 전 당황한 기색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채 오히려 차분한 눈 빛으로 민지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 아무렇지 않은 듯 너무도 당당한 윤소희를 보며 민지훈은 마음속에 큰 돌덩이가 꽉 박혀있는 듯 갑갑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펄쩍 뛰며 아니라고 발뺌을 해야 할 윤소희가 왜 이렇게 무덤덤한 걸까? 그녀가 그럴 수록 상황은 더욱 민지훈한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 “민지훈, 너 오늘 알바가야 한다며? 그런데 왜 우리 학교에 온 거냐고? 이젠 하다 하다 거짓말까지 해?”
  • 될 대로 되라는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운 윤소희는 무척이나 냉랭한 목소리로 오히려 민지훈을 쏘아붙였다.
  • “묻잖아, 이 남자 누구야? 두 사람 대체 무슨 사이냐고?”
  • 분노가 치밀은 민지훈이 언성을 높여가며 취조하듯 윤소희를 다그쳤다.
  • 소희의 얼굴은 급 어두워졌고 옆에 있던 남자가 민지훈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를 아래 위로 흘겨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 “내가 누구냐고? 딱 보면 몰라? 나랑 소희 이미 깊을대로 깊은 사이인데, 눈치도 없는 놈이 눈까지 멀어서 어쩌냐?”
  • 배신감에 분노가 극치에 도달한 민지훈, 이글거리는 눈빛은 당장이라도 모든 걸 다 집어삼킬듯한 기세로 활활 타올랐고 날카롭고 사나운 눈초리는 윤소희를 노려보고 있다.
  • 그러자 윤소희는 이내 정색하며 민지훈에게 말했다.
  • “민지훈, 너도 봤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나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나랑 영도 선배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야, 그러니까 괜히 우리의 사랑에 훼방 놓을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해!”
  • “서로 뭘 해? 사랑? 그럼 난 뭔데?”
  • 민지훈은 화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이를 빠득빠득 갈며 물었다.
  • “네가 뭐냐고?”
  • 최영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민지훈의 남루한 옷차림을 흘겨보더니 민지훈 앞에 바짝 다가붙어 낄낄거렸다.
  • “그지 깽깽이? 하하하...”
  •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채 얼굴이 하얗게 상기 된 민지훈, 그는 최영도를 확 밀어내고 윤소희의 팔목을 거세게 잡아끌며 언성을 높였다.
  • “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봐.”
  • 그런 민지훈의 손을 홱 뿌리쳤고 매몰차게 거절하는 윤소희, 증오의 눈초리로 민지훈을 쏘아보며 윤소희가 말했다.
  • “더러운 손 치워, 내 몸에 손 대지 말란 말이야.”
  • 충격을 심하게 받은 민지훈이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쳤고 품속에 안고 있던 장미 꽃다발은 와장창 무너진 지훈의 마음처럼 차디찬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 “민지훈, 우리 헤어지자, 넌 내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없잖아!”
  • 윤소희는 일말의 감정도 없는 냉랭한 목소리로 민지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 “헤어지자고?”
  • 그 말에 민지훈의 얼굴 색이 확 변했다.
  • “그래!”
  • 상처받은 민지훈의 기분은 안 중에도 없는 윤소희, 보는 이의 살 갗도 서늘하게 만들것 같은 차디찬 말투와 표정,
  • “넌 내가 원하는 삶을 줄 수도 없거니와 날 행복하게 해 줄 능력도 없잖아, 그런데 내가 왜 그런 너랑 계속 사귀어야 하는데? 내 친구들은 생일이면 최신 휴대폰에 명품백을 선물 받는데 넌 나한테 뭘 해줬어? 손수 접은 학 천마리? 야! 지금이 쌍 팔년도도 아니고 촌스럽게 그딴 걸 선물이라고 주냐? 창피하지도 않아?”
  • 윤소희의 말에 민지훈은 흠칫 놀랐다, 그렇다, 소희의 생일날 그는 확실히 학 천 마리를 직접 접어서 선물했었다, 그래도 한땀한땀 정성을 담아 접은 성의가 갸륵한 의미있는 선물인데, 거의 반 년을 쉬지 않고 꼬박 접은 건데 윤소희한테 그건 그저 촌스럽고 값어치 없는 무용지물이었다니.
  • “너 돈 있어? 빽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 그런 널 뭘 믿고 사귀냐? 네 옆에서 허리가 휘어지게 고생만 하라고? 아니면 너랑 같이 그 코딱지만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나 하게?”
  • 한 겨울 눈보라가 휘몰아치듯 차갑기 그지없는 윤소희의 말은 뾰족한 비수가 되어 여린 민지훈의 심장을 사정없이 후려갈기고 있다.
  • “민지훈, 애초에 너랑 사귄것도 애들이 너네 집 부자라고 해서 그래서 사겼던 거야, 그런데 정작 사귀고 보니까 너네 집 부자도 아니던데? 오히려 넌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잖아, 매달 50만원 화장품 값도 못 내주는 네가 무슨 염치로 나랑 사겨?”
  • 민지훈은 이를 꽉 깨물었고 이 상황이 너무도 허탈하고 허무했다.
  • 결국 돈 때문이었구나!
  • 자신과 사귀게 되면 앞으로 고생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배신을 했다?
  • 윤소희를 너무도 사랑하고 믿었던지라 이런 결말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민지훈, 내겐 하나뿐이었던 찐 사랑 그녀가 사실은 돈만 밝히는 속물이었다니, 윤소희와 사귀려고 구 씨 집안과의 결혼 약속도 거절했던 민지훈인데, 그 일로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오다보니 돈 한푼 없는 신세가 되었고, 그래서 학교 앞 작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애초에 이 모든 게 다 윤소희를 사랑해서 발생한 일들인데...
  •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다 포기할 만큼 윤소희만 사랑했고 언젠가 기회를 잡아 가족들이 윤소희를 받아주도록 아버지를 설득하려던 참이었는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윤소희는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 “왜? 꼴에 억울하냐?”
  • 최영도는 민지훈을 벌레 보듯하며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시비조로 말했다.
  • “야,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네놈이 지금 어떤 꼴인지 거울 좀 비추어보지그래? 쥐뿔도 없는 주제에 감히 누굴 넘봐? 경고하는데 윤소희는 지금 내 여자야, 그러니까 재수없게 기웃대지 말고 꺼져!”
  • 최영도의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에 민지훈은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꽉 깨물었고 고개를 돌려 윤소희를 보며 냉철한 목소리로 물었다.
  • “소희야, 마지막으로 물을게, 너 정말 돈 때문에 나랑 헤어지려는 거야? 또 돈 때문에 이 남자한테 간 거고? 너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 “후회? 내가 그딴 걸 왜 하는데?”
  • 이젠 윤소희의 얼굴에서도 민지훈을 향한 아니꼬운 시선과 조롱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다.
  • “영도 선배는 나랑 사귀려고 휴대폰에, 고급 화장품까지 한 달에 몇 백만원도 넘게 선물 공세를 해주셨어, 넌 그런 거 절대 못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