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음에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민지훈은 교문 앞에 즐비하게 세워진 차들을 보았는데 핵심 위치 센터 자리의 롤스로이스를 선두로 앞 뒤로 적어도 십 여대의 차들이 줄을 서서 길을 내어주고 수비를 하고 있었다.
교문으로부터 나오는 민지훈을 보더니 앞 줄에 서 있던 보디가드 두 명이 얼른 달려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바로 그때 길거리 모퉁이에서 들어서는 BMW 스포츠 카 한대.
윤소희가 스포츠 카의 조수석에 앉아있었고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마침 입을 열려는 순간 멀리 길게 줄을 선 차들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이 왠지 민지훈이랑 닮아보였고 소희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저건 누구지?”
“왜 그래, 자기야?”
최영도가 히죽거리며 표정이 아리송해진 소희에게 물었다.
그러자 소희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 어쩐지 저 차에 탄 사람 민지훈 같아서요.”
“에이, 설마, 자기가 잘못 본 거겠지! 저 차들 차종이랑 새겨진 가족 마크들 좀 봐! 저 차들 중에 한 대라도 우리 스포츠 카 네 다섯대는 쉽게 사는데. 민지훈 그 거지 새끼가 저런 고급 차에 가 닿기나 하냐? 그 새낀 저런 차들 아마 구경도 못 해봤을걸?”
소희의 말에 최영도는 콧 방귀를 뀌며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걱정 마, 절대 민지훈일 리가 없다니까, 걔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렇긴 하지!”
영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소희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최영도는 한 술 더 떠가며 시뚝해서 말했다.
“자기야, 오늘 저녁은 내가 근사한 레스토랑 더블유를 예약했거든, 내 친구들도 몇 몇 불렀는데 죄다 부잣집 애들에 금수저들이야, 너 보면 아마 깜짝 놀랄걸!”
부잣집 애들에 금수저들이라고? 영도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소희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고 민지훈 따윈 이제 안 중에도 없었다.
그 시각 롤스로이스 차에 탄 민지훈은 옆에 앉은 김병규를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50대 지천명의 나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에이스 상업인재,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도 그의 실력은 인정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가 민 씨 가업 아시아 부문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극히 적은 편이다.
민 씨 집안에서도 김병규 같은 인물은 많지 않은 67명 정도가 있는데 저마다 세계적인 영역에서 인정받는 사업 거장들이며 세계 각지 대규모 사업을 운영중에 있다.
민지훈은 어릴 적부터 김병규와 각별한 사이였던지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따른다, 다만 일 년을 못 본 동안 김병규는 많이 늙었다.
“둘째 도련님...”
김병규가 호탕하게 웃으며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일 년만이죠? 저 안 보고 싶었습니까?”
“당연히 보고 싶었죠!”
민지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김병규는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지훈을 지긋이 바라본다.
“둘째 도련님, 여자친구랑 헤어진 일 회장님께서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도련님을 모셔오라고 특별히 당부하신 거고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김병규의 말에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 되는 민지훈은 어색한 웃음만 지었고 윤소희랑 헤어지던 장면만 생각하면 너무도 쪽팔렸고 가슴 한편은 한 겨울 매서운 눈보라가 휘날리듯 시리고 아팠다.
“아직은 아무 계획 없어요...”
그러자 김병규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살면서 꼭 한 번쯤은 안목이 짧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쓸데없는 썩은 장애물들이 앞 길을 막을때도 있지요, 다 인지상정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민지훈은 멋쩍게 웃더니 차 안의 냉장고에서 와인을 한 잔 따라마셨다.
프랑스 특산의 와인, 그것은 민 씨 집안에서 특별 수단과 채널을 통해 프랑스에 자체 농장을 구매했고 그 농장에서 직접 재배하고 담근 독보적인 풍미가 엿보이는 와인이다. 게다가 일 년에 200병만 생산하는 귀한 와인인지라 대외적 판매 없이 오직 민 씨 집안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와도 같은 것이다.
한 병에 2천 만원도 넘는 고급 와인, 한 모금 한 모금 고가의 사치품과도 같은 이 와인은 최신 휴대폰이나 명품백 따윈 날파리 취급하는 따라올 수 없는 퀄리티와 프리미엄을 자랑한다. 그런 와인을 담은 와인 잔을 손에 들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민지훈은 윤소희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고 생각할 수록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었다.
“아저씨, 정말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까요?”
“글세, 돈이 있다고 모든 게 다 가능하진 않겠지만, 돈은 많은 불가능한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김병규의 진지한 답변에 민지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둘째 도련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 여자 도련님이랑 함께 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련님이 왜 같잖은 일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합니까? 회장님께서는 이제 도련님의 가족 권한과 신분을 ㄴ정하셨습니다, 여기 도련님 지갑이요...”
김병규는 서랍에서 민지훈의 지갑을 꺼내서 전달했다.
민지훈은 지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려 씨익 웃었다.
“저 더블유 갈 거니까 레스토랑 앞에서 내려줘요, 당분간 찾아뵙겠습니다...”
“예! 둘째 도련님,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지난 번에 구 씨 가문의 혼사를 거절하셨는데 그 집 아가씨께서 한국에 오신 듯 합니다, 최근에 한국외대에 가실거라는...”
김병규의 말에 민지훈은 멈칫했다, 구 씨 집안 아가씨가 한국에 오다니! 민지훈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차가 더블유 레스토랑 앞에 세워지자 이내 차에서 내렸다.
구 씨 집안 아가씨가 직접 올 줄은 민지훈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애초에 그 아가씨랑 친분이 있거나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더블유 레스토랑 간판을 올려다보며 민지훈은 긴 한숨을 내 쉰 뒤 냉큼 들어가 예약석에 앉아 효신이랑 애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은행으로 갔다.
은행에 들어선 민지훈은 손에 쥔 카드를 보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었다.
김병규의 말 처럼 민지훈의 가족 권한이 열렸다, 윤소희와 헤어진 뒤로 가족들은 그의 카드 한도를 회복했고 카드에 들어있는 몇 백억원은 민지훈의 용돈으로 딱 맞는 금액이었다.
더블유 레스토랑에 돌아 온 민지훈은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위 층에서 들려오는 말 다툼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어쩐지 익숙한 다툼소리, 박효신의 목소리었다!
민지훈은 깜짝 놀라 곧바로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마침 화가 잔뜩 난 박효신이 애들과 같이 누군가를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분명 우리가 예약한 자리인데 그 쪽이 뭔데 뺏으려고 해? 누구 맘대로?”
“네 자리라고? 여기가? 이 봐, 이 자리는 우리가 먼저 예약한 거라고, 쥐 뿔도 없는 거지새끼들이 무슨 레스토랑 놀음이야? 당장 꺼져!”
민지훈의 얼굴은 급 어두워졌고 소리나는 쪽으로 향해 걸어가 본 순간 마음속의 분노가 절정에 도달했다.
최영도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어쩜 여기서 저 자식을 또 만난단 말이지!
헤어진 지 불과 하루도 안 지난 윤소희는 최영도의 품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고 최영도는 일행 몇 명과 함께 박효신과 한창 치열한 자리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게다가 윤소희는 박효신을 동네 바보를 보듯 얄미운 눈초리로 흘겨보고 있었다.
윤소희의 한 껏 높아진 콧대와 안하무인 싹수없는 행동에 민지훈은 실망감이 배로 커졌다.
“헛소리도 사람 봐 가면서 해, 네가 예약했다고? 그걸 누가 믿냐?”
아니꼬운 눈 빛으로 박효신을 벌레 취급하는 윤소희,
“꺼져,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거지 새끼들이, 주제를 알고 나 대! 너희들 꼬락서니를 봐,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긴 하니? 이 테이블 우리가 예약한 거니까 당장 꺼져!”
최영도는 입에 걸레를 물었는지 온갖 쌍소리를 해대며 박효신을 밀쳐냈다.
최영도의 무모한 행동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박효신은 화가 솟구친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영도는 동네 양아치인 양 거들먹거리며 박효신의 태도엔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들과 함께 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이 테이블 우리가 이미 예약했으니까 그만 가 주시죠...”
이 때 참다 못해 나 선 민지훈.
최영도는 민지훈을 보더니 네 놈이 왜 거기서 나오냐는 표정으로 어이상실에 당황한 기색이 섞인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쥐 뿔도 없는 알바쟁이 민지훈이! 네가 예약한 자리라고? 멍멍이 소리를 아주 정성스럽게도 하시네?”
최영도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이 상황이 웃기다는 듯 너도 나도 깔깔 대며 비웃음 가득한 눈초리로 민지훈을 아니꼽게 흘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