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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트러블 메이커

  • 한달음에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민지훈은 교문 앞에 즐비하게 세워진 차들을 보았는데 핵심 위치 센터 자리의 롤스로이스를 선두로 앞 뒤로 적어도 십 여대의 차들이 줄을 서서 길을 내어주고 수비를 하고 있었다.
  • 교문으로부터 나오는 민지훈을 보더니 앞 줄에 서 있던 보디가드 두 명이 얼른 달려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 바로 그때 길거리 모퉁이에서 들어서는 BMW 스포츠 카 한대.
  • 윤소희가 스포츠 카의 조수석에 앉아있었고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마침 입을 열려는 순간 멀리 길게 줄을 선 차들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이 왠지 민지훈이랑 닮아보였고 소희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 “저건 누구지?”
  • “왜 그래, 자기야?”
  • 최영도가 히죽거리며 표정이 아리송해진 소희에게 물었다.
  • 그러자 소희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 “아니, 어쩐지 저 차에 탄 사람 민지훈 같아서요.”
  • “에이, 설마, 자기가 잘못 본 거겠지! 저 차들 차종이랑 새겨진 가족 마크들 좀 봐! 저 차들 중에 한 대라도 우리 스포츠 카 네 다섯대는 쉽게 사는데. 민지훈 그 거지 새끼가 저런 고급 차에 가 닿기나 하냐? 그 새낀 저런 차들 아마 구경도 못 해봤을걸?”
  • 소희의 말에 최영도는 콧 방귀를 뀌며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 “걱정 마, 절대 민지훈일 리가 없다니까, 걔가 무슨 돈이 있다고!”
  • “그렇긴 하지!”
  • 영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소희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그러자 최영도는 한 술 더 떠가며 시뚝해서 말했다.
  • “자기야, 오늘 저녁은 내가 근사한 레스토랑 더블유를 예약했거든, 내 친구들도 몇 몇 불렀는데 죄다 부잣집 애들에 금수저들이야, 너 보면 아마 깜짝 놀랄걸!”
  • 부잣집 애들에 금수저들이라고? 영도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소희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고 민지훈 따윈 이제 안 중에도 없었다.
  • 그 시각 롤스로이스 차에 탄 민지훈은 옆에 앉은 김병규를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 50대 지천명의 나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에이스 상업인재,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도 그의 실력은 인정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가 민 씨 가업 아시아 부문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극히 적은 편이다.
  • 민 씨 집안에서도 김병규 같은 인물은 많지 않은 67명 정도가 있는데 저마다 세계적인 영역에서 인정받는 사업 거장들이며 세계 각지 대규모 사업을 운영중에 있다.
  • 민지훈은 어릴 적부터 김병규와 각별한 사이였던지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따른다, 다만 일 년을 못 본 동안 김병규는 많이 늙었다.
  • “둘째 도련님...”
  • 김병규가 호탕하게 웃으며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 “벌써 일 년만이죠? 저 안 보고 싶었습니까?”
  • “당연히 보고 싶었죠!”
  • 민지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 그러자 김병규는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지훈을 지긋이 바라본다.
  • “둘째 도련님, 여자친구랑 헤어진 일 회장님께서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도련님을 모셔오라고 특별히 당부하신 거고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김병규의 말에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 되는 민지훈은 어색한 웃음만 지었고 윤소희랑 헤어지던 장면만 생각하면 너무도 쪽팔렸고 가슴 한편은 한 겨울 매서운 눈보라가 휘날리듯 시리고 아팠다.
  • “아직은 아무 계획 없어요...”
  • 그러자 김병규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 “사람은 살면서 꼭 한 번쯤은 안목이 짧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쓸데없는 썩은 장애물들이 앞 길을 막을때도 있지요, 다 인지상정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 민지훈은 멋쩍게 웃더니 차 안의 냉장고에서 와인을 한 잔 따라마셨다.
  • 프랑스 특산의 와인, 그것은 민 씨 집안에서 특별 수단과 채널을 통해 프랑스에 자체 농장을 구매했고 그 농장에서 직접 재배하고 담근 독보적인 풍미가 엿보이는 와인이다. 게다가 일 년에 200병만 생산하는 귀한 와인인지라 대외적 판매 없이 오직 민 씨 집안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와도 같은 것이다.
  • 한 병에 2천 만원도 넘는 고급 와인, 한 모금 한 모금 고가의 사치품과도 같은 이 와인은 최신 휴대폰이나 명품백 따윈 날파리 취급하는 따라올 수 없는 퀄리티와 프리미엄을 자랑한다. 그런 와인을 담은 와인 잔을 손에 들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민지훈은 윤소희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고 생각할 수록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었다.
  • “아저씨, 정말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까요?”
  • “글세, 돈이 있다고 모든 게 다 가능하진 않겠지만, 돈은 많은 불가능한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 김병규의 진지한 답변에 민지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요!”
  • “둘째 도련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 여자 도련님이랑 함께 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련님이 왜 같잖은 일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합니까? 회장님께서는 이제 도련님의 가족 권한과 신분을 ㄴ정하셨습니다, 여기 도련님 지갑이요...”
  • 김병규는 서랍에서 민지훈의 지갑을 꺼내서 전달했다.
  • 민지훈은 지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려 씨익 웃었다.
  • “저 더블유 갈 거니까 레스토랑 앞에서 내려줘요, 당분간 찾아뵙겠습니다...”
  • “예! 둘째 도련님,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지난 번에 구 씨 가문의 혼사를 거절하셨는데 그 집 아가씨께서 한국에 오신 듯 합니다, 최근에 한국외대에 가실거라는...”
  • 김병규의 말에 민지훈은 멈칫했다, 구 씨 집안 아가씨가 한국에 오다니! 민지훈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차가 더블유 레스토랑 앞에 세워지자 이내 차에서 내렸다.
  • 구 씨 집안 아가씨가 직접 올 줄은 민지훈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애초에 그 아가씨랑 친분이 있거나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더블유 레스토랑 간판을 올려다보며 민지훈은 긴 한숨을 내 쉰 뒤 냉큼 들어가 예약석에 앉아 효신이랑 애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은행으로 갔다.
  • 은행에 들어선 민지훈은 손에 쥔 카드를 보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었다.
  • 김병규의 말 처럼 민지훈의 가족 권한이 열렸다, 윤소희와 헤어진 뒤로 가족들은 그의 카드 한도를 회복했고 카드에 들어있는 몇 백억원은 민지훈의 용돈으로 딱 맞는 금액이었다.
  • 더블유 레스토랑에 돌아 온 민지훈은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위 층에서 들려오는 말 다툼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어쩐지 익숙한 다툼소리, 박효신의 목소리었다!
  • 민지훈은 깜짝 놀라 곧바로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마침 화가 잔뜩 난 박효신이 애들과 같이 누군가를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 “분명 우리가 예약한 자리인데 그 쪽이 뭔데 뺏으려고 해? 누구 맘대로?”
  • “네 자리라고? 여기가? 이 봐, 이 자리는 우리가 먼저 예약한 거라고, 쥐 뿔도 없는 거지새끼들이 무슨 레스토랑 놀음이야? 당장 꺼져!”
  • 민지훈의 얼굴은 급 어두워졌고 소리나는 쪽으로 향해 걸어가 본 순간 마음속의 분노가 절정에 도달했다.
  • 최영도다!
  •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어쩜 여기서 저 자식을 또 만난단 말이지!
  • 헤어진 지 불과 하루도 안 지난 윤소희는 최영도의 품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고 최영도는 일행 몇 명과 함께 박효신과 한창 치열한 자리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게다가 윤소희는 박효신을 동네 바보를 보듯 얄미운 눈초리로 흘겨보고 있었다.
  • 윤소희의 한 껏 높아진 콧대와 안하무인 싹수없는 행동에 민지훈은 실망감이 배로 커졌다.
  • “헛소리도 사람 봐 가면서 해, 네가 예약했다고? 그걸 누가 믿냐?”
  • 아니꼬운 눈 빛으로 박효신을 벌레 취급하는 윤소희,
  • “꺼져,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거지 새끼들이, 주제를 알고 나 대! 너희들 꼬락서니를 봐,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긴 하니? 이 테이블 우리가 예약한 거니까 당장 꺼져!”
  • 최영도는 입에 걸레를 물었는지 온갖 쌍소리를 해대며 박효신을 밀쳐냈다.
  • 최영도의 무모한 행동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박효신은 화가 솟구친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그러거나 말거나 최영도는 동네 양아치인 양 거들먹거리며 박효신의 태도엔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들과 함께 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 “이 테이블 우리가 이미 예약했으니까 그만 가 주시죠...”
  • 이 때 참다 못해 나 선 민지훈.
  • 최영도는 민지훈을 보더니 네 놈이 왜 거기서 나오냐는 표정으로 어이상실에 당황한 기색이 섞인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쥐 뿔도 없는 알바쟁이 민지훈이! 네가 예약한 자리라고? 멍멍이 소리를 아주 정성스럽게도 하시네?”
  • 최영도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이 상황이 웃기다는 듯 너도 나도 깔깔 대며 비웃음 가득한 눈초리로 민지훈을 아니꼽게 흘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