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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다 치워주세요!

  • 윤소희는 몸을 홱 돌리더니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이 상황이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씩씩대며 민지훈을 노려보았다.
  • “야, 민지훈, 네까짓게 뭔데?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치우라 마라야?”
  • 최영도까지 합세 해 펄쩍 뛰며 갖은 행패를 부렸지만 민지훈은 동네 멍멍이가 짖는 듯 그들을 아예 무시하고 그저 매니저를 지긋이 쳐다볼 뿐이었다.
  • 이내 알았다는듯이 굽신거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매니저가 말했다,
  • “예, 예, 민지훈 님, 10분 안에 깔끔하게 다 정리하겠습니다, 웨이터들 총 동원해서 정성껏 모실테니 부디 양해 바랍니다!”
  • 주먹 하나는 족히 들어갈 것처럼 입을 떡 벌린채 아무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린 윤소희.
  • “나 선샤인 주얼리 외동 아들이라고, 누가 감히 날 내 쫓아...”
  • “손님, 정중히 말씀드리지만 어서 자리를 비켜주시지요, 계속 버티시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 차분하고 온화한 말투지만 날카로운 비수가 서린 듯 냉철한 매니저의 목소리.
  • “잠깐!”
  • 그 순간 민지훈이 손을 번쩍 들더니 허스키한 보이스로 매니저에게 말을 건넸다.
  • “그리고 이 테이블이랑 의자, 저 사람들이 이미 앉았으니 난 손도 대기 싫어지네요...”
  • “예, 그럼요, 당장 폐기 처분하고 지금 바로 새것으로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 매니저는 몸을 사려가며 더더욱 공손하게 말했다.
  • “민지훈, 너 뭐하자는 거냐?”
  • 윤소희는 당장이라도 민지훈을 갈아마실 듯 눈을 부라리며 나무랐다.
  • 그러자 민지훈은 차가운 얼굴로 피식 웃더니 딱 잘라 말했다.
  • “네가 더러워서...”
  • “뭐...”
  •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정작 아무것도 못한 채 당하기만 해야 하는 윤소희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발만 동동 굴렀다.
  • 그 시각 분노를 억제 못하고 씩씩대는 최영도는 이를 악물고 경고하는 말투로 말했다.
  • “좋아, 민지훈, 대체 언제까지 잘난척 할 수 있나 내 지켜본다, 그 카드 어느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건지 모르겠지만 경찰 오면 곱게 조사 받을 준비나 하셔!”
  • 그러거나 말거나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민지훈, 그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살짝 웃어보이며 묵직한 한 마디를 던졌다.
  • “꺼져...”
  • “너 두고보자!”
  • 이미 멘탈이 쏙 빠져 너덜너덜해진 최영도는 윤소희의 손목을 잡고 도망치듯 레스토랑을 나섰다.
  • 그리고 더블유는 약속대로 10분 안에 모든 손님들을 내보내고 테이블과 의자 세트도 새것으로 교체했으며 몇 십명의 웨이터들이 민지훈의 룸 양 켠에 꿋꿋이 서서 항시 대기하도록 조치했다.
  • 박효신과 친구들은 고개를 돌려 민지훈을 쳐다보는데 하나같이 믿기지 않는 듯 놀란 표정이었다.
  • 예고없이 갑작스레 벌어진 일, 생각지도 못했던 전세 역전에 애들은 이게 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며 상황 파악을 하기 힘들어했다. 특히 박효신은 오늘 제대로 망신 당하고 여기서 쫓겨날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오히려 기고만장 끝판왕 최영도와 윤소희에게 빅 엿을 먹이는 쾌감까지 만끽했으니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지훈아, 너 언제 이렇게 멋있어진 거야?”
  • 지훈은 씩 웃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 “별 거 아니야, 어제 식당에서 알바할 때 어떤 손님이 흘리고 간 가방을 주었는데 마침 그 안에 이 집 VIP카드가 있더라고, 손님 분이 나한테 고맙다며 카드를 며칠 빌려주셨고 게다가 팁까지 200만원이나 챙겨주셨어...”
  • “대박, 나도 너네 식당 가서 알바나 할까봐...”
  • 룸메이트인 오태석이 기회를 놓칠세라 끼어들었다.
  • “그래, 그래, 거기 알바생 더 안 뽑는대?”
  • “알바생은 무슨, 나 하나면 충분하니까 생각도 하지마!”
  • 민지훈이 허허 웃음을 보이며 말하자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찬 박효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어, 그래...”
  • “야, 밥이나 먹어...”
  • 민지훈은 애들을 다독이며 피식 웃었다.
  •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애들은 냉큼 메뉴판을 집어들고 음식을 주문했다.
  • 저녁 식사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애들은 오래간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호강했다, 더블유 스페셜 메뉴로부터 시작해 갖가지 산해진미들을 마음껏 즐기며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뒤 230만 원이나 나온 밥 값을 보며 박효신은 입이 떡 벌어졌다.
  •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를 즐긴 친구들은 학교로 복귀했고 민지훈은 VVIP카드를 손에 쥔 채 마음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방금 전 윤소희를 대하던 본인의 태도, 생각할 수록 짜릿하고 쾌감이 느껴졌다. 비록 한 끼 밥 값으로 230만 원이나 소비했지만 2300만 원을 쓴 것보다 속이 더 후련했다.
  • 위잉 위잉...
  • 교문에 들어서기 바쁘게 민지훈의 휴대폰 진동소리가 울렸고 전화를 받은 민지훈은 본의 아니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막을 자극하는 챙챙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아닌 임지영.
  • “민지훈, 너 뭐하는 놈이야? 네 멋대로 안 온다면 다야? 대체 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 둬! 일 하려는 애들 줄 섰으니까!”
  • 임지영이 다짜고짜 욕을 들이 퍼붓자 민지훈은 난감하다는 듯 게면쩍게 대꾸했다.
  • “당연히 일 하지! 그렇지만 나 오늘 휴가냈는데? 임지영 님 설마 모르셨습니까?”
  •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모르는 임지영은 더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마구 쏘아붙였다.
  • “누가 휴가 허락했는데? 지금 당장 튀어와, 안 오면 앞으로 다신 여기 얼씬도 하지 말고, 참 어이가 없다, 우리 엄마 아빠는 대체 너 같은 놈을 뭘 믿고 매달 월급 50만원 씩 꼬박꼬박 챙겨주냐 말이야, 너 그 돈 받아서 부자 될 것 같냐? 착각하지 마...”
  • 임지영, 그녀는 민지훈이 알바하는 작은 식당 집 딸이다. 평소에 하도 오냐오냐하게 키운 탓인지 천방지축 안하무인, 자기 꼴리는 대로 세상 참 편하게 사는 그녀, 게다가 그나마 있던 싸가지까지 밥 말아드신 탓에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한텐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그녀의 특기이다. 신분 높은 사람 앞에서만 소녀 감성 뿜뿜, 예의바르고 수줍은 숙녀로 급 변신하는 것은 그녀의 안 비밀.
  • 입만 열면 걸레를 물었는지 온갖 욕설을 다 들이 붓는 임지영의 모습을 민지훈은 그동안 참 많이 봐왔었던 터라 내심 화를 가라앉히며 꾹 참고 있던 참이다.
  • “내가 돈이 많은지 없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굳이 네가 안 가르쳐줘도 되거든!”
  •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임지영과 달리 민지훈은 너무도 차분하게, 하지만 차갑게 쏘아붙였다.
  • “야...”
  • 민지훈의 태도에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임지영은 한 술 더 떠서 발끈했다.
  • “민지훈, 네가 진짜 뭐라도 된 것 같지? 경고하는데 너 오늘 저녁에 안 오면 앞으로 다신 올 생각 하지마!”
  • 전화를 끊은 민지훈은 무척이나 화가 났다.
  • “지훈아, 누구야?”
  • 옆에 있던 박효신이 묻자 민지훈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 “임지영!”
  • 그러자 박효신은 놀란 표정을 가리지 못하며 다그쳐 물었다.
  • “혹시 그 외국어과 얼짱 임지영?”
  • 민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임지영이 성격은 참 지랄 맞지만 얼굴은 웬만한 아이돌 뺨 칠 만큼 예뻐서 한국 대학교에서도 미모 원탑으로 알아주는 얼짱이다. 언젠가 할 짓 없는 애들이 모여 쑥덕거리더니 임지영을 한국 대학교 외국어과 얼짱으로 임명했고 그것은 그녀에 대한 사모이자 존경이었다.
  • “너 이제는 임지영과도 엮인 거냐?”
  • 박효신은 놀라움 반 부러움 반 섞인 얼굴로 민지훈을 놀리듯 말했다.
  • “오올, 민지훈 대박인데? 한국 외대 여자랑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이젠 임지영까지? 너 여자복 터졌구나!”
  • 그 말에 민지훈은 표정 관리를 못했고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사실 임지영과 엮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임지영네 식당에서 알바나 하는 입장인데. 그렇다고 그걸 일일이 박효신한테 다 해명할 의무는 없으니 차라리 모른 척 말을 안하는게 약이다.
  • 기숙사로 돌아온 민지훈은 침대에 누워 양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 천정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 방금 전 발생한 일, 마치 긴 꿈을 꾼듯 아이러니하면서도 너무 웃긴 상황이었으니까.
  • 까놓고 말해서 모든게 돈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그 놈의 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난장판이 되진 않았을텐데! 그나마 다행인건 이로 인해 사람들의 가식 뒤에 숨겨진 민낯을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더 밑바닥까지 안 갈수 있었던게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 한 때 사랑했던 윤소희, 그저 인생에 스쳐지나가는 웃음거리로 보면 된다, 앞으론 그 어떤 식으로도 그녀와 엮일 일이 없으니까.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민지훈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고 이제 잠이나 한 잠 푹 자려고 몸을 옆으로 돌리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 듣보잡에 싸구려 휴대폰은 이미 벨소리 기능을 잃은지 오랬다, 진작에 새 것으로 바꿔야 했지만 그동안 윤소희에게 매달 용돈을 챙겨주려다보니 정작 자신은 휴대폰을 바꿀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 이 타이밍에 어울리지 않게 울리는 휴대폰을 보자 민지훈은 흠칫했다.
  • 윤소희에게서 온 문자, 그걸 보는 민지훈의 얼굴 빛은 급 어두워졌다.
  • “민지훈, 나 다 알았어, 너 그 VVIP카드 주어온 거라며? 언젠간 주인한테 돌려줘야 하잖아! 세상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결국 남의 카드를 가져다가 내 앞에서 유세 떤 거였어? 네가 하는짓이 다 그렇지 뭐, 너라는 인간 정말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