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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물에 뛰어든 여자

  • 배현경이 람보르기니를 어찌나 빨리 몰던지 눈 깜짝할 새에 그들은 거리에서 사라졌다. 조수석에 앉은 민지훈은 왠지 쓸쓸한 표정이었다. 윤소희를 직접 보고 공격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도 했으나, 예전 일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 그의 마음 깊은 곳은 불편함이 있었다.
  • 실패로 끝난 사랑은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더는 사랑에 기대치 않고 단념하게 된 한 번의 수업과도 같았다.
  • “민 사장님, 방금 제 연기 어땠나요?”
  • 배현경이 웃으며 묻자 민지훈도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 “아주 좋았죠. 고마웠어요.”
  • “이젠 제 고용주이시니 말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사장님 걱정 덜어드리는 건 당연한 건데 고맙다니요.”
  • 배현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민지훈은 한결 편안 해진 기분이었다. 심지어 눈을 감고 그녀의 목소리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 “그분은 전 여자친구신 가요?”
  • “그렇죠. 과거형이죠!”
  • 민지훈이 두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 “제가 보기에도 그랬어요! 민 사장님 같은 대단한 분께 그런 여자가 어울릴 턱이 있겠어요? 여자친구 필요하시면 제 주변에 많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 아기 같은 스타일, 청순, 귀여운 스타일 다 있어요. 아무나 고르셔도 방금 그 여자보다는 백배는 나을 거에요!”
  • 배현경은 웃으며 말하면서도 민지훈의 기색을 살폈다.
  • “다 싫으시면 저는 어때요? 사장님보다 나이는 조금 많지만 저는 사람 챙길 줄 알거든요!”
  • 처음 민지훈을 볼 때 그녀는 이런 가세를 가진 사람이 무얼 좋아할 줄 몰라 매우 긴장했었다. 그러나 식당에서 민지훈이 아직 순수한 사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녀도 긴장을 떨쳐버렸다. 민지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어색하게 말했다.
  • “됐어요, 한동안은 조용히 지내고 싶어요!”
  • 배현경이 장난스럽게 살짝 민지훈을 흘겨보자 민지훈이 멈칫하더니 크게 웃었다. 그러자 그녀도 민지훈을 따라 크게 웃었다.
  • 이내 차를 한 카페 앞에 세우고 민지훈과 배현경이 차에서 내려 카페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은 후에 그녀는 들고 있던 서류를 민지훈에게 건네었다. 그는 서류를 받고 훑어 보고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해 그대로 자신의 이름을 적고 서명했다.
  •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떠들다 보니 해질녘이 되어서야 카페를 나섰다. 민지훈은 그녀가 데려다 주는 것을 거절하고 혼자 거리를 따라 강성대 쪽으로 걸어갔다.
  • 이 일 년 간 그는 먹고사는 일에 바빠 강성 근처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사실 강성의 풍경은 아주 아름다웠다. 특히 지금처럼 등불이 막 켜질 때쯤엔 사람을 취하게 하는 황홀함이 있다.
  •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이 분위기에 빠져들었겠지만, 민지훈은 취해 사는 삶을 애써 벗어난 사람이었다. 일 년간의 방황 후에야 자신의 신분을 회복했으니,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 가다 서다 하며 많은 풍경을 보니 민지훈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이때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이 민지훈의 귀를 사로잡았다.
  • 먼발치의 호숫가에서 사람들이 둘러 모여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수면에 사람의 형체가 거품을 내뿜고 있는 모습이 무섭게 보였다.
  • ‘누가 뛰어들었나?’
  • 민지훈도 놀라서 급히 뛰어갔다. 주위에선 비명 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호수 안에는 확실히 사람이 있었다. 멀리서도 사람이 빠진 것이 확실히 보였다. 민지훈은 생각할 새도 없이 옷을 벗어 던지고 물 위로 몸을 날렸다.
  • 사람들도 순간 놀랐다가 이내 헤엄쳐 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응원했다. 민지훈의 어릴 적에 전문 수영 강사에게 수영을 배웠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났다. 물속에서는 특히 냉정함을 유지하였다. 두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수영하는 모습이 마치 헤엄치는 물고기 같기도 했다.
  • 그가 빠르게 물살을 갈라 물에 뛰어든 사람에게 다다르자, 그는 허우적거리고 있는 여자의 등 뒤로 가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 “건드리지 마, 죽게 해줘.”
  • 민지훈은 말을 할 힘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발을 열심히 움직여 속도를 냈다. 보기에는 빨리 진행되는 듯했으나 민지훈은 사지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물 속에서 탈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뭍에 다다른 민지훈은 호숫가에 있던 돌을 잡고 여자를 있는 힘껏 끌어당겨 뭍으로 올리고서는 옆에 앉아 거칠게 숨을 쉬었다.
  • “건드리지 마, 죽게 내버려두란 말이야!”
  • “죽는다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는 것도 두렵지 않는다면 뭐가 더 두려우세요? 살아가면서 뭐가 죽음보다 두렵겠어요?”
  • 민지훈은 여자의 손목을 잡고 외쳤다.
  • “어서 일어나세요!”
  • “왜 저를 구하셨어요...?”
  • 여자는 온몸이 축축 젖은 채로 하염없이 울며 말했다. 민지훈은 그런 여자의 얼굴을 보다가 무언가 발견한 듯 순간 멈칫했다.
  • “뭐야...? 너였어?”
  • “민지훈?”
  • 김유영도 놀라 잠시 멈칫했다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민지훈은 당황했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물에 뛰어들기 전에 벗어 둔 옷을 집어 들고 김유영을 끌고 멀리 뛰기 시작했다.
  • “잠시만요. 멈춰주시겠어요? 저희는 강성 일보 기자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겠어요?”
  •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성함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민지훈은 짜증 난다는 듯이 옷으로 자신과 김유영의 얼굴을 가린 채 빠르게 군중 밖으로 달아났다. 계속 호숫가를 따라가다 보니 아주 멀리 까지 오게 되었다.
  • 김유영은 달리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아 눈이 이미 많이 부어 있었다. 민지훈은 더는 누가 쫓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김유영을 보고 말했다.
  • “대체 왜 그랬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어?”
  • 김유영은 땅 위에 쪼그려 앉아서 고개를 떨군 채 계속 울고 있었다. 민지훈은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한숨만 쉴 뿐이었다. 김유영은 그와 같은 반 학생이다. 반에서는 공부도 잘해서 계속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서 예쁘진 않지만, 성격은 친절하고 좋았다.
  • 민지훈은 평소에 그녀와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몇 번 해본 대화도 학급회의 때 했던 대화뿐이었다. 나중에 소문으로 그녀의 가정환경이 매우 좋지 않아서 매년 생계비 지원을 받는다고 들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김유영은 열등감이 있고, 배짱도 없어 평소에 목소리도 아주 작았다.
  • ‘이런 여자가 물에 뛰어들었다고?’
  • “무슨 일인데 그래?”
  • 민지훈이 호숫가에 앉아 힘이 빠진 모습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김유영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민지훈은 그녀를 보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정말 슬픈 건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었으니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 “말 좀 해봐. 무슨 일인데 그러는데?”
  • 김유영은 놀라서 흠칫하더니 몸을 떨기 시작했다. 민지훈은 더 거칠게 말했다.
  • “말 안 할 거면 혼자 여기 있든가. 여기 나쁜 사람들 많이 다녀. 운 나쁘면 변태들 만나서 너한테...”
  • 김유영은 무서워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 “말 안 하면 나간다...”
  • 민지훈은 말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 “나... ... 실은 그게... ...”
  • 김유영은 말을 꺼내더니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