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훈은 조금 놀라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김유영은 얼굴은 안 예뻤지만, 성적은 계속 좋았다. 그래서 학급 간부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학생회에 가입해 있었다. 민지훈도 이런 그녀가 학생회와 학급 활동비를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민지훈이 급히 핸드폰을 켜 메신저를 보니 학급 단톡방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김유영 돈 잃어버린 거 아니고 자기가 쓴 거 아니야?”
“쟤는 얼굴만 못생긴 게 아니라 마음도 못 생겼네!”
“가난해서 미쳐버린 거지. 학생회 활동비까지 다 써버릴 생각을 하다니 이런 애는 학생회에서 받지를 말았어야 해!”
반 친구들의 메신저를 다 읽은 민지훈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졌다. 평소 김유영과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단톡방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실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활동비 정말 잃어버린 거 아니야?’
“다들 조용히 해봐. 얼마 안 되는 돈 가지고 이렇게까지 악담을 퍼부을 필요는 없잖아.”
민지훈이 단톡방에 말을 남겼다.
“헐... 얼마 안 되는 돈? 민지훈이 하는 말 좀 봐봐.”
“지도 가난한 게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접시를 1년 동안 서빙 해도 잃어버린 활동비만큼도 못 버는 게.”
“하하하... 내가 뭘 본 거야? 민지훈이 지금 사 백만 원보고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한 거야?”
학급 단톡방은 민지훈의 말에 더욱 활발히 살아났다. 민지훈의 낯빛이 차가워졌다. 단톡방을 보고서는 마음이 슬퍼졌다.
‘모두 같은 반 친구들인데, 뭐가 그렇게 잘 나서 저렇게 맘대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걸까?’
“민지훈, 얼마 안 되는 돈이면 네가 대신 물어내든가?”
민지훈은 반장인 유정훈이 쓴 말을 보고 역겨움을 느꼈다. 유정훈은 가정환경이 좋았다. 소문에 의하면 장성에서 사업을 몇 가지 한다고 했다. 평소에도 학교에서 자신의 가정환경을 자랑하곤 했다. 매번 학급 회의가 열릴 때마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가정 형편을 모를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무엇보다도 이놈은 항상 콧대가 높아서 다른 사람을 자신의 밑으로 보고 업신여겼다. 마치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만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여자가 좋으면 네가 내든가! 그럼 우리도 널 달리 볼지도 모르지!”
“김유영같이 가난하면 한 번도 이렇게 많은 돈은 처음 봤을걸? 그러니까 써버리는 것도 정상이긴 해!”
민지훈은 곱지 않은 눈빛으로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돈 하나도 안 썼어. 학생회랑 학급 활동비 모두 내가 가지고 있어. 김유영이 요새 힘들다고 나한테 맡겨 놨어.”
메시지를 보낸 후 민지훈은 핸드폰을 내려 두고 김유영을 향해 말했다.
“괜찮아. 그래 봐야 활동비 조금인데 뭘? 잃어버렸으면 다시 채워 넣으면 되지!”
김유영은 더 크게 울었다.
“나... 나는 이만한 돈이 없는걸... 사 백만 원을 내가 무슨 수로 갚아?”
“그래도 죽으면 안 되지!”
민지훈이 따뜻하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돈으로 해결될 문제면 사실 별문제도 아닌 거야!”
김유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돈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까 큰일이지!”
민지훈은 순간 어찌 설득해야 할지 몰라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우선 이렇게 하자. 사 백만 원은 우선 내가 대신 내 줄게. 올해 장학금 받으면 그때 돌려줘!”
김유영은 당황하여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민지훈은 그녀를 보고 웃다가 순간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얇은 피부 막이 떨어지는 것처럼 갑자기 여드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유영 얼굴에 있던 여드름들이 다 가짜였다고?’
여드름들이 떨어지자 그녀의 새하얗고 붉은 피부가 드러났다. 아기와도 같은 피부였다.
‘일부러 못 생기게 꾸몄다고?’
“아...!”
김유영도 자신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민지훈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가자! 가면서 얘기하자. 너 성적 좋은 거 다 아니까 너한테 올해 장학금 받는 건 식은 죽 먹기지?”
“그... 근데 너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김유영이 얼굴을 가린 채로 일어나서 작게 말했다.
“얼마 전에 지갑을 주웠어. 안에 돈이 엄청나게 많이 있어서 주인을 찾아주었는데 감사 표시 한다고 나한테 이천만 원이나 줬어!”
민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나한테 이천만 원이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꼭 장학금 받아서 갚아야 해!”
민지훈은 조금 부끄러운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도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김유영에게 빌려주는 것은 괜찮았다. 다만 그녀에게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때 핸드폰 진동이 울려 민지훈은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선 그의 룸메이트인 효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훈, 너 미쳤어? 김유영이 돈을 도둑질 당한 거 애들이 다 아는데, 왜 돈이 너한테 있다고 그랬어? 뭐 하려는 거야?”
“괜찮아.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자.”
민지훈은 별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끊지 말아봐. 네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면 나도 말리지는 않을게. 그래도 하나 말해줄 게 있어. 방금 어떤 사람이 학교로 찾아오더니 네가 주운 지갑에 대해 묻고 싶다고 진우를 찾았었어.”
효신은 급히 말했다. 지훈도 당황하여 물었다.
“지갑에 대해 알고 싶다고? 누가 진우를 찾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학교 경비실 사람인 것 같아. 너도 돌아와서 한 번 물어봐봐.”
효신은 진우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나는 진우가 우리를 배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효신이 나지막이 말했다.
“우선 알겠어!”
지훈은 대답을 하고 우선 전화를 끊었다. 지훈이 지갑을 주운 일은 더블유에서 밥을 먹을 때 룸메이트들에게 한 번 얘기한 것 빼고는 없다. 그런데 그날 밤에 소희에게 연락이 와 이 일에 대해 물었었다. 당시에는 지훈도 별생각이 없었다. 모두 형제와도 같은 친구들이니 지훈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그도 생각지 못했었다.
학교 입구까지 걸어가서 지훈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이제 혼자 돌아갈 수 있겠어?”
김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츠렸다.
“괜찮아. 내일 내가 우선 돈 갚아줄 테니까 우선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민지훈은 위로의 말을 건네며 김유영을 쳐다보았다. 유영은 상심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