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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학급 활동비까지 다 잃어버렸어

  • 민지훈은 그녀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짜증이 나서 멀리 걸어갔다.
  • “실은 돈을 다 잃어버렸어.”
  • 민지훈은 당황해서 의아하다는 듯이 김유영에게 물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 김유영은 자신의 두 다리를 끌어안으며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말했다.
  • “나도 잘 모르겠어. 학생회랑 학급 활동비를 다 잃어버렸어.”
  • 민지훈은 조금 놀라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김유영은 얼굴은 안 예뻤지만, 성적은 계속 좋았다. 그래서 학급 간부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학생회에 가입해 있었다. 민지훈도 이런 그녀가 학생회와 학급 활동비를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민지훈이 급히 핸드폰을 켜 메신저를 보니 학급 단톡방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 “김유영 돈 잃어버린 거 아니고 자기가 쓴 거 아니야?”
  • “쟤는 얼굴만 못생긴 게 아니라 마음도 못 생겼네!”
  • “가난해서 미쳐버린 거지. 학생회 활동비까지 다 써버릴 생각을 하다니 이런 애는 학생회에서 받지를 말았어야 해!”
  • 반 친구들의 메신저를 다 읽은 민지훈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졌다. 평소 김유영과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단톡방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실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 ‘활동비 정말 잃어버린 거 아니야?’
  • “다들 조용히 해봐. 얼마 안 되는 돈 가지고 이렇게까지 악담을 퍼부을 필요는 없잖아.”
  • 민지훈이 단톡방에 말을 남겼다.
  • “헐... 얼마 안 되는 돈? 민지훈이 하는 말 좀 봐봐.”
  • “지도 가난한 게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접시를 1년 동안 서빙 해도 잃어버린 활동비만큼도 못 버는 게.”
  • “하하하... 내가 뭘 본 거야? 민지훈이 지금 사 백만 원보고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한 거야?”
  • 학급 단톡방은 민지훈의 말에 더욱 활발히 살아났다. 민지훈의 낯빛이 차가워졌다. 단톡방을 보고서는 마음이 슬퍼졌다.
  • ‘모두 같은 반 친구들인데, 뭐가 그렇게 잘 나서 저렇게 맘대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걸까?’
  • “민지훈, 얼마 안 되는 돈이면 네가 대신 물어내든가?”
  • 민지훈은 반장인 유정훈이 쓴 말을 보고 역겨움을 느꼈다. 유정훈은 가정환경이 좋았다. 소문에 의하면 장성에서 사업을 몇 가지 한다고 했다. 평소에도 학교에서 자신의 가정환경을 자랑하곤 했다. 매번 학급 회의가 열릴 때마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가정 형편을 모를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 무엇보다도 이놈은 항상 콧대가 높아서 다른 사람을 자신의 밑으로 보고 업신여겼다. 마치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만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여자가 좋으면 네가 내든가! 그럼 우리도 널 달리 볼지도 모르지!”
  • “김유영같이 가난하면 한 번도 이렇게 많은 돈은 처음 봤을걸? 그러니까 써버리는 것도 정상이긴 해!”
  • 민지훈은 곱지 않은 눈빛으로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 “돈 하나도 안 썼어. 학생회랑 학급 활동비 모두 내가 가지고 있어. 김유영이 요새 힘들다고 나한테 맡겨 놨어.”
  • 메시지를 보낸 후 민지훈은 핸드폰을 내려 두고 김유영을 향해 말했다.
  • “괜찮아. 그래 봐야 활동비 조금인데 뭘? 잃어버렸으면 다시 채워 넣으면 되지!”
  • 김유영은 더 크게 울었다.
  • “나... 나는 이만한 돈이 없는걸... 사 백만 원을 내가 무슨 수로 갚아?”
  • “그래도 죽으면 안 되지!”
  • 민지훈이 따뜻하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 “돈으로 해결될 문제면 사실 별문제도 아닌 거야!”
  • 김유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돈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까 큰일이지!”
  • 민지훈은 순간 어찌 설득해야 할지 몰라 할 말을 잃었다.
  • “그럼 우선 이렇게 하자. 사 백만 원은 우선 내가 대신 내 줄게. 올해 장학금 받으면 그때 돌려줘!”
  • 김유영은 당황하여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민지훈은 그녀를 보고 웃다가 순간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얇은 피부 막이 떨어지는 것처럼 갑자기 여드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김유영 얼굴에 있던 여드름들이 다 가짜였다고?’
  • 여드름들이 떨어지자 그녀의 새하얗고 붉은 피부가 드러났다. 아기와도 같은 피부였다.
  • ‘일부러 못 생기게 꾸몄다고?’
  • “아...!”
  • 김유영도 자신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민지훈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우선 가자! 가면서 얘기하자. 너 성적 좋은 거 다 아니까 너한테 올해 장학금 받는 건 식은 죽 먹기지?”
  • “그... 근데 너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 김유영이 얼굴을 가린 채로 일어나서 작게 말했다.
  • “얼마 전에 지갑을 주웠어. 안에 돈이 엄청나게 많이 있어서 주인을 찾아주었는데 감사 표시 한다고 나한테 이천만 원이나 줬어!”
  • 민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 “물론 나한테 이천만 원이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꼭 장학금 받아서 갚아야 해!”
  • 민지훈은 조금 부끄러운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도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김유영에게 빌려주는 것은 괜찮았다. 다만 그녀에게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 이때 핸드폰 진동이 울려 민지훈은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선 그의 룸메이트인 효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훈, 너 미쳤어? 김유영이 돈을 도둑질 당한 거 애들이 다 아는데, 왜 돈이 너한테 있다고 그랬어? 뭐 하려는 거야?”
  • “괜찮아.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자.”
  • 민지훈은 별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 “우선 끊지 말아봐. 네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면 나도 말리지는 않을게. 그래도 하나 말해줄 게 있어. 방금 어떤 사람이 학교로 찾아오더니 네가 주운 지갑에 대해 묻고 싶다고 진우를 찾았었어.”
  • 효신은 급히 말했다. 지훈도 당황하여 물었다.
  • “지갑에 대해 알고 싶다고? 누가 진우를 찾았는데?”
  •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학교 경비실 사람인 것 같아. 너도 돌아와서 한 번 물어봐봐.”
  • 효신은 진우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 ‘무슨 일이지?’
  • “그리고 나는 진우가 우리를 배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 효신이 나지막이 말했다.
  • “우선 알겠어!”
  • 지훈은 대답을 하고 우선 전화를 끊었다. 지훈이 지갑을 주운 일은 더블유에서 밥을 먹을 때 룸메이트들에게 한 번 얘기한 것 빼고는 없다. 그런데 그날 밤에 소희에게 연락이 와 이 일에 대해 물었었다. 당시에는 지훈도 별생각이 없었다. 모두 형제와도 같은 친구들이니 지훈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그도 생각지 못했었다.
  • 학교 입구까지 걸어가서 지훈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 “이제 혼자 돌아갈 수 있겠어?”
  • 김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츠렸다.
  • “괜찮아. 내일 내가 우선 돈 갚아줄 테니까 우선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 민지훈은 위로의 말을 건네며 김유영을 쳐다보았다. 유영은 상심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지훈아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 “무슨 일인데?”
  • 지훈이 궁금하다는 듯 유영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