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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뇌 수술

  • 다음날 아침 일찍.
  • 이도진은 허지윤을 차에 태우고 먼저 부두 공사장으로 향했다.
  • 가는 도중에 허지윤은 자꾸만 고개를 돌려 이도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 그녀가 하도 여러 번 쳐다보자 이도진은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혹시 내 입에 밥풀 묻어 있는 건 아니겠지?”
  • 허지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그럼 왜 자꾸 쳐다보는 건데?”
  • 이도진을 알게 될수록 허지윤은 이도진이 양파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그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 게다가 이도진은 어느 틈엔가 그녀의 가족들까지 변화시켰다.
  • “오늘 아침 식사는 특히 풍성했다는 거 알고 있었어?”
  • “김치찌개, 장조림, 계란말이, 그리고 갓 구운 조기까지.”
  • “난 지난 두세 달 동안 이렇게 훌륭한 아침 식사를 먹어본 적이 없었어.”
  • 이도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 “그게 다 우리 어머니께서 날 예뻐하셔서 그런 거지!”
  • “내 엄마야, 당신 엄마가 아니고.”
  • 허지윤은 조금 질투 섞인 말투로 그에게 대꾸했다.
  • 이도진이 집에 온 지 겨우 얼마나 됐다고 그녀의 엄마는 벌써부터 이렇게까지 그에게 잘 대해주다니 그럼 나중엔 정말 어쩌려고 그러나 싶었기 때문이다.
  • “똑같지, 똑같아. 옛말에 사위도 자식이랬잖아.”
  • 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허지윤은 곧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 “내가 말했었잖아. 내 마음속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 “그 사람 이름이 뭔데?”
  • 이도진이 곧장 되물었다.
  • 허지윤은 습관적으로 대답했다.
  • “그의 이름은……”
  •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얼른 이도진에게 눈을 흘겼다.
  • “진짜 얄미워!”
  • 만약 다른 이름이었다면 허지윤은 틀림없이 대답을 했을 것이다.
  • 하지만 하필이면 두 사람의 이름이 얄궂게도 완전히 똑같다!
  • 그리고 허지윤은 왠지 모르게 이도진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만 예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그 당시의 그도 오갈 데 없는 어린 거지였고 그 시절의 그 또한 지금처럼 그녀를 보살펴주고 지켜줬었다.
  • 그들 두 사람은 성씨도 같고 이름도 똑같은데 설마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
  • 허지윤은 정말로 당혹스러웠다.
  • 그 순간 허지윤은 이도진이 뭔가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매우 의아해하며 물었다.
  • “뭐 먹고 있어?”
  • 이도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 “초콜릿.”
  • 허지윤은 초콜릿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곧장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그녀의 하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 “나도 하나만 줘.”
  • 그런데 이도진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 “안돼.”
  • 허지윤은 멍해졌다.
  • 1억이나 되는 차는 아무렇지도 않게 샀으면서 겨우 초콜릿 한 개 가지고 이렇게 쩨쩨하게 구는 거야?
  • 허지윤은 그녀의 매혹적인 입술을 뽀로통하게 내밀었다.
  • “짠돌이, 밴댕이 소갈딱지!”
  • 이도진은 결코 짠돌이가 아니었다.
  • 문제는 초콜릿이 틴 케이스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가 꺼내는 순간 탄로 난 다는 것이었다!
  • 허지윤은 이도진에게 물었다.
  • “어제 경호원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전부다 눈 깜짝할 새에 당신한테 맞고 쓰러졌잖아.”
  • “어째서 당신이 마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무림고수처럼 느껴지는 거지?”
  • 이도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 “내가 예전에 어떤 늙은 거지한테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거든.”
  • “그는 내 골격이 굉장히 튼튼해서 앞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대단한 영웅이 될 거라고 했어.”
  • “그 후 나에게 무공 비법이 적힌 책을 여러 권 주었는데……”
  • “그만해.”
  • 허지윤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 “그런 드라마 스토리라면 그만둬.”
  • “계속 이야기하다간 자기가 와호장룡이라고 하겠네.”
  • 이도진이 대꾸했다.
  • “그렇게까지 과장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슷하긴 하지.”
  • 이도진은 두 손을 내밀었다.
  • “그들은 모두 내 두 손을 ‘신의 손’이라고 말했거든.”
  • 허지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 그녀는 이도진의 입에서 진실된 말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공사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허지윤은 곧바로 차에서 내린 뒤 인부들을 이끌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 이도진은 현장을 떠나기 전에 허지윤을 향해 소리쳤다.
  • “내가 한 말은 모두 진짜야.”
  • 허지윤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난 안 믿어.”
  • 그 후 이도진은 허명섭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 허명섭이 CT 검사를 받고 있을 때였다.
  • 이도진은 복도 모퉁이 어딘가에서 간간이 전해지는 어떤 남자의 구조요청 소리를 들었다.
  •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 “쿵!”
  • “제발 부탁드립니다!”
  • “쿵!”
  • “제발 부탁드립니다!”
  • “쿵!”
  • 이도진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걸어갔고 그곳에 가보니 어떤 남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간호사에게 계속해서 절을 하고 있었다!
  • 이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앞으로 다가갔다.
  • 그 남자는 체격이 건장하고 힘이 센 사람이었다.
  • 매우 탄탄한 기본 체력이 있어서 한눈에 봐도 그가 무술을 익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그토록 건장한 사내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꿇어앉아 애원하고 있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자 이도진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 “무슨 일입니까?”
  • 간호사는 이도진의 목소리를 듣더니 조금 흥분한 모습이었다.
  • 그녀는 사립병원 전체를 통틀어 이도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 병원장은 간호사들이 허지윤을 제대로 돌보게 하기 위해 이도진이 사장이라는 사실을 소 그룹에게만 공개했었다.
  • 그녀는 바로 그 소 그룹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이다.
  • “사……음, 흠흠! 이 선생님.”
  • “이 분의 어머님께서는 뇌에 물이 아주 많이 차 있습니다.”
  • “그리고 뚜렷하지 않은 음영이 관찰되고 있고요.”
  • “이 분의 어머님께서는 현재 매우 위중한 상태이신데요.”
  • “하지만 최 씨 집안의 노부인께서 갑자기 쓰러지시는 바람에 우리 병원에 입원을 하셨거든요.”
  • “그래서 병원의 뇌과 전문의 세 분이 모두 그쪽으로 불려가셨어요.”
  • 간호사가 이도진과 이야기하는 사이 건장한 남자는 고개를 들어 올려 이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 “당신은 의사선생님입니까? 제발 저의 어머니 좀 살려주십시오!”
  • 이도진은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고 그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다.
  •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가 꼭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 그건 바로, 효자였다!
  • 이도진은 즉시 간호사에게 말했다.
  • “수술실을 비워놓으세요!”
  • “네!”
  • 간호사는 몸을 돌려 뛰어가면서 핸드폰으로 그녀가 속한 비밀그룹에 황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 “사장님께서 또 수술을 하시려고 합니다. 얼른 준비하세요!!”
  • 3분 뒤, 수술실 안.
  • 준비작업은 모두 이미 끝나 있었고 양 교수도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왔다.
  • 그는 이 선생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 중년 여인의 머리카락은 깨끗이 면도되어 있었고, 환자의 두피 또한 이미 철저하게 소독을 마친 뒤 멸균거즈로 덮여 있었다.
  • 한쪽에 있던 간호사가 환자에게 침윤마취를 했고 이도진은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 “메스.”
  • 간호사가 막 수술 메스를 건네주고 다시 그다음 반응을 하기도 전에 이도진은 이미 환자의 두피를 절개했다.
  • 놀랍도록 빠르다!
  • 한쪽에 있던 양 교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 순간 양 교수는 눈앞에 있는 저 이 선생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명의라는 사실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
  • 어쩐지 병원장이 저 사람을 그렇게 받들더라니!
  • 지금 그는 자기 뺨을 세게 후려치고 싶을 정도였다!
  • “포셉.”
  • 간호사는 전적으로 이도진의 지시에 따르며 수술 도구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 이도진의 두 손은 마치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환자의 두피를 완전히 벗기고 지혈까지 마쳤다.
  • 그 후 이도진은 메스로 골막을 분리했고 곧이어 골막을 절개한 후 뒤집었다.
  • “공압 드릴”
  • 이도진은 개두 수술을 위한 전동드릴을 건네받고 환자의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 “밀링 커터.”
  • 간호사는 재빨리 고속 커터를 이도진의 손에 건넸다.
  • 이도진은 커터를 받아 들면서 단지 손놀림만 몇 번 가볍게 하고 난 뒤 곧바로 골판을 절개했다.
  • 한쪽에 있던 양 교수마저 두 손을 꽉 쥔 채 그 동작을 지켜봤고 지금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흥분된 상태였다!
  • 정말로 굉장하다!
  • 이건 그야말로 예술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