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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짐승만도 못하다

  • 결국, 허지윤은 이도진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문이 열리고 여성 특유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 달콤하고 향기롭고 유유한 향에 이도진은 자기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 방은 크지 않았고 작은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책 꽂이 하나가 놓여있었다.
  • 이도진은 휑한 구석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 “난 여기서 잘게.”
  • “응?”
  • 허지윤은 멍해졌다.
  • “하, 하지만, 바닥에 자는 건 좀…”
  • 정말이지 착하고 얼빠진 여자였다. 허지윤의 방은 매우 좁아서 이 모퉁이를 제외하면 이도진은 침대에 잘 수밖에 없었다.
  •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이도진은 마음이 훈훈해졌다.
  • 불을 그고 이도진은 땅바닥에 누웠고 허지윤은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였다.
  • 자기 방에 갑자기 사람 하나가 더 생겨서 적응이 좀 되지 않았다.
  • “편히 자, 너한테 나쁜 짓 안 해.”
  • 이도진은 말을 하면서 몰래 주머니에서 박스를 꺼내 초콜릿 하나를 먹었다.
  • 허지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이도진도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 필경 이곳은 허지윤이 20여 년간 생활한 방이었고 병실과는 달랐다.
  • 이곳에서는 허지윤의 체향이 가득했고 냄새를 맡을수록 이도진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 결국 초콜릿을 먹으며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 그는 예전부터 지나갈 수 없는 고비를 만나면 초콜릿을 먹곤 했다.
  • 달달하고 부드러운 추억의 맛이었다.
  • 마치 그를 위해 들개를 쫓던 어린 소녀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 이때 침대에 누워 있는 허지윤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왜 웃어?”
  • 이도진이 물었다.
  • 허지운은 몸을 뒤척이며 대답했다.
  • “아니야.”
  • 그녀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유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이도진의 말이 작용을 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지윤은 이내 깊은 밤에 빠졌다.
  • 골드 리조트는 영주시의 고급 족욕 센터였다.
  • 최해봉과 최천수 부자는 의자에 편안히 누워있었다.
  •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 두 명의 여직원이 그들에게 발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 “아빠, 허지윤 이년 진짜 역겨워! 이번 프로젝트 따내면 반드시 해결해야 돼!”
  • 이 말을 하는 최천수는 발을 한번 흔들었고 족욕통 안의 물이 약간 튀어나왔다.
  • 따뜻한 물의 일부분이 여직원의 몸에 튕겨버렸다.
  • 그 희고 얇은 옷은 이내 반투명으로 물들었고 우뚝 솟은 두 산봉우리도 보일 듯 말 듯 하게 어렴풋이 비쳤다.
  • 최천수의 작은 꾀를 알아차린 최해봉은 입을 열었다.
  • “아들, 넌 아직 너무 어려. 허지윤 같은 뻔뻔한 여자를 상대하려면 넌 더 뻔뻔한 방법을 써야지!”
  • 그는 어른의 말투로 두 여직원의 앞에서 최천수에게 말했다.
  • “큰일을 이루려면 먼저 마음부터 가다듬어야 한다는 걸 명심해. 무슨 일이든 계획부터 세우고, 차근차근 순서대로 밀고 나가야 해, 이 점은 넌 나한테 많이 배워야 돼.”
  •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최천수는 흥분된 표정으로 최해봉을 바라보며 물었다.
  • “아빠, 블루오션 홍해만이 그렇게 대단해?”
  • “그렇지, 천일 그룹 못지않은 큰 회사지.”
  • 최해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 “홍 사장은 아빠 고등학교 동창이야, 고등학교 때는 절친한 사이였어. 넌 일을 가끔 너무 경솔하게 할 때가 있어.”
  • “마음잡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야지. 네가 지금 사귀는 그 친구들은 술자리나 여자 만날 때 빼고 무슨 소용이 있어? 진짜 문제가 생기면 하나같이 생쥐보다 더 빨리 도망갈걸?”
  • 최천수는 옆에서 겸허하게 경청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아빠 말이 맞아, 앞으로 아빠처럼 되려고 노력할게!”
  • “아빠, 홍 사장님이 나서주시면 유 사장도 체면을 세워주겠지?”
  • 최천수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웃음이 가득했다.
  • “허지윤 그년이 어떻게 유 사장을 꼬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내 친구 정도는 아니지, 진짜 이익 앞에서 여자는 그저 남자의 노리개일 뿐이야.”
  •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곧 내 친구가 좋은 소식을 갖고 올 거야.”
  • 말하면서 최해봉은 눈을 감고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 최천수는 이때 흑심을 품고 시선을 눈앞의 여직원에게 돌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룸의 문이 열렸다.
  • 이어서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 “오, 해만아, 드디어 왔어! 자자자, 어서 앉아!”
  • 홍해만은 아무 말 없이 최해봉 앞에 다가와 최천수가 씻고 있던 대야의 물을 최해봉에게 부어버렸다.
  • “쏴!”
  • 물보라가 사방으로 튕겼다.
  • 최해봉은 온몸에 세족수를 뒤집어썼다.
  • 홍해만은 “친한 친구” 최해봉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 “최해봉, 이 쓰레기 자식,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나까지 끌어들여?”
  • 최해봉은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 멍하니 오랜 친구를 쳐다보았다.
  • “왜, 왜?”
  • 분노한 홍해만은 손에 든 대야를 최해봉에게 내리쳤다.
  • 최해봉은 황급히 피하고 분노한 홍해만의 눈을 보며 더욱 억울해났다.
  • “이런 개자식! 어디서 억울한 척이야! 내가 그딴 일 때문에 유덕화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다고!”
  • “들어가서 몇 마디 말도 못 했는데 내 얼굴에 커피를 쏟았어, 내가 2년 동안 같이 해오던 프로젝트도 너 때문에 끝났다고!”
  • 홍해만은 최해봉을 손가락질하며 눈에서는 화가 뿜어져 나왔다.
  •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마!”
  • “다시 한번 나 찾아오면 그냥 확 뒤질 줄 알아!”
  • 말을 마친 홍해만은 몸을 돌려 노기등등해서 떠났다.
  • 최천수는 고개를 돌려 멍한 얼굴로 최해봉을 바라보았다.
  • “아빠, 아빠, 따라 나갈까?”
  • 최해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 “아빠, 우리…”
  • “닥쳐!”
  • 최천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해봉은 욕설을 퍼부었다.
  •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딴 일 하나 처리 못해서!”
  • 말을 마친 최해봉은 온몸의 발 씻은 물을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신고 서둘러 쫓아나갔다.
  • “홍 사장, 화내지 말고 기다려!”
  • 허지윤은 집에서 이틀을 쉬었고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급히 회사로 출근하려 했다.
  • 이도진은 문 앞에서 큰 몸집으로 문을 막고 있었다.
  • “지금 상태로 출근하는 건 무리야, 아니면…”
  • “아니면?”
  • “나랑 같이 출근한다면 모를까.”
  • “같이?”
  • 허지윤은 잠시 멍해졌다.
  • 이도진은 허지윤 앞에서만 한 가닥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데릴사위로서 앞으로 회사에서 근무해야지. 네 옆에 붙어 다니면서 식견도 넓히고.”
  • 허지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유옥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지윤이 몸으로 혼자 다니는 건 아직 무리야. 우리 이서방 있으면 나도 안심할 수 있지.”
  • 장모님의 승낙을 받은 이도진은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