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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가정교육

  • “그 돈을 전부 가족들한테 썼으니까 흥청망청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 “매형, 매형, 돈이 많으면 저한테 투자 좀 해줘요!”
  • 허준호는 잽싸게 이도진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도중에 유옥분의 발에 걷어 차이고 말았다.
  • “저리 가!”
  • 유옥분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이도진을 바라봤다.
  • “자네도 안심해. 설령 투자라고 해도 나중에 우리가 모두 다 갚을 테니까.”
  • 이도진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 그 시간 최 씨 집안 저택.
  • 소파에 앉아 있는 황매화의 표정은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두웠고 그녀의 섬뜩한 눈빛에서는 서슬 퍼런빛이 번뜩거리고 있었다.
  • “할머니, 유덕화는 우리한테 프로젝트를 넘겨줄 것 같지 않아요!”
  • “그 천박한 허지윤이 유덕화와 구린 관계인 게 틀림없어요!”
  • 최천수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 황매화는 고개를 돌리고 최해봉을 바라보며 물었다.
  • “넌 어떻게 생각하니?”
  • 황매화의 눈동자는 줄곧 최해봉을 주시하고 있었다.
  •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최해봉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할수록 속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황매화가 물었다.
  • “너한테 새로운 계획이 있는 거야?”
  • “어머니, 이틀 뒤에 있을 어머니 생신 때 제가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 “그리고 허명섭 가족도 연회에 초대하고요.”
  • 최천수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성급하게 말했다.
  • “아버지, 왜 그들을 초대하려고요?”
  • “설마 우리가 허 씨 집안에 고개를 숙이는 건가요?”
  • 황매화가 고개를 돌리고 일갈했다.
  • “헛소리!”
  • 최해봉은 느릿느릿 말했다.
  • “허명섭 회사는 코딱지만 한 회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공사를 온전히 해낼 수 없어요.”
  • “우리는 연회라는 명목하에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겁니다.”
  • “그리고 영주에 있는 우리의 인맥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는 거죠.”
  • “그들이 공사를 수주했다고 해도 뭘 어쩌겠습니까?”
  • “영주에서 그들처럼 조그만 회사를 상대하는 건 우리에게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요.”
  • “때가 되면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그 작은 회사를 인수해버리는 겁니다!”
  • “그렇게 되면 그 공사는 당연히 우리 것이 되니까요!”
  • 황매화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더니 박수까지 쳤다.
  • “좋아!”
  • “과연 내 아들이야!”
  • “이 일은 네 말대로 처리하자꾸나!”
  • 다음날 정오, 허명섭은 찜찜한 표정을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 유옥분이 그 모습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허명섭은 잠시 망설이다가 유옥분에게 털어놓았다.
  • “최 씨 집안의 노부인께서 내일모레 생신이신데 우리를 연회에 초대했어.”
  • 옆에 있던 허준호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 “그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
  • “아빠, 절대로 가면 안 돼!”
  • 허준호가 비분강개하며 말했다!
  • 단호한 태도였다!
  • 요지부동이었다!
  • 허명섭은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 그는 허지윤을 바라봤다.
  • 허지윤은 이제 막 몸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요 며칠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 그녀는 문서에서 눈을 떼고 버들잎처럼 생긴 아름다운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이도진에게 물었다.
  • “가야 될 것 같아?”
  • “가야지. 공짜 술과 음식이 있는데 왜 안 가?”
  • “어머님께선 늘 우리에게 근검절약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 한 끼 얻어먹는 것도 괜찮지.”
  • 허지윤, 허명섭 그리고 유옥분 세 사람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허준호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 “좋아! 매형이 가자면 가는 거야!”
  • ……
  • 눈 깜짝할 사이에 황매화의 생일이 되었다.
  • 최 씨 집안의 생일 파티였으므로 당연하게도 영주에 있는 수많은 부자들과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 허명섭 가족은 새로 구입한 벤츠를 몰고 최 씨 집안의 저택에 도착했다.
  • 그들의 등장은 단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허 씨 집안 식구들의 차림새는 지극히 평범했기 때문에 다른 부자들이나 사회 유명 인사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 최천수는 앞으로 다가가 허지윤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면서 묘하게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 “우와! 역시 돈 많은 남자 하나 건지더니 자동차도 이렇게 좋은 걸로 바꿨네.”
  • 허지윤은 최천수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서 이도진 옆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최천수는 원래 이도진 앞에서 허지윤에게 한바탕 야유를 퍼부어대려고 했지만 이도진의 눈빛에 그만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 또 맹수 같은 저 눈빛!
  • 최천수는 목을 움츠린 뒤 싸늘하게 말했다.
  • “오늘 저 X자식도 올 줄은 몰랐네!”
  • “흥! 이 몸이 너희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잘 봐둬!”
  • 그때, 최천수는 일부러 자기 목소리를 한껏 높여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 “모두 모여보세요. 제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최천수는 허지윤과 허명섭 일행을 딱 꼬집어 지목했다.
  • “교연 기업이라고 모두 들어보셨나요?”
  •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못 들어보셨죠? 저도 예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 “하지만 며칠 전에 그들이 천일 그룹의 큰 프로젝트를 따냈지 뭡니까.”
  • 그 말이 나오자 모여있던 사람들 중 여러 명이 잇달아 감탄했다.
  • “착수금만 3백억이 든다는 그 부두 사업 프로젝트인가요?”
  • “대박, 엄청 거대한 프로젝트네요.”
  • “제가 듣기로는 그 부두가 향후에 더 확장돼서 항구가 될 거라고 하던데요.”
  • “그때가 되면 날마다 아주 돈을 쓸어 담겠네요!”
  • “매일 손에 쥐가 날 정도로 돈을 세겠죠!”
  • 최천수는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조그만 회사가 천일 그룹에서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따낼 수가 있었을까요?”
  • 무리 가운데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 “그야 말할 필요가 있나요, 틀림없이 뒷거래겠죠!”
  • 모두가 떠들썩하게 웃었다!
  • 최천수는 계속해서 말했다.
  • “모두들 입구에 세워져 있던 흰색 벤츠 세단을 보셨습니까? 이제 막 사서 아직 번호판조차 달려있지 않은 자동차 말입니다.”
  • 그때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물었다.
  • “그 돈은 어디서 난 거죠?”
  • “그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요? 틀림없이 남자한테 스폰 받은 거겠죠.”
  • “요즘엔 상간녀가 되는 게 사업 차리고 뼈빠지게 일하면서 돈 버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벌죠.”
  • 그 말이 나오자 모두들 왁자지껄하게 웃었고 커다란 웃음소리는 순식간에 거실 안의 음악소리까지 뒤덮어버릴 정도였다.
  • 온 장내에서 울려 퍼지는 비웃음 소리는 유난히 귀에 거슬렸고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허지윤의 마음을 아프게 찔러댔다.
  • 유옥분은 큰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항의했다.
  • “당신들이 무슨 근거로 내 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건가요?”
  • “천일 그룹의 프로젝트는 내 딸이 꼬박 반 년 넘게 노력해서 가까스로 수주한 거라고요.”
  • “어휴, 반년이나요. 반년이나 침대에서 노력을 쏟아 부운 거군요?”
  • 최천수는 대놓고 큰 소리로 웃었다.
  • “하하 하하!”
  • 오만 방자!
  • 득의양양!
  • 이곳은 최 씨 집안의 저택이므로 최천수는 더욱더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최천수가 끝을 모르고 즐거워하던 바로 그때 어느 틈엔가 최천수의 뒤로 가서 그의 어깨를 툭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 최천수가 뒤돌아보는 찰나.
  • “퍽!”
  •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 이 뺨 한방으로 최천수의 온몸이 제 자리에서 세 바퀴나 돌았다.
  •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 최천수는 최 씨 가문의 종손이다!
  • 황매화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인데 눈앞에 있는 저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감히 황매화가 보는 앞에서 최천수를 때린 것이다.
  • 이건 대체 얼마나 간덩이가 부었다는 거야!?
  • 황매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녀는 곧장 무리를 뚫고 다가왔다.
  • 최 씨 집안의 노부인은 죽일듯한 기세로 이도진을 섬뜩하게 쏘아보고 있었다.
  • “자네가 감히 내 손자를 때렸나?”
  • 최 씨 가문은 그렇게 여러 해 동안 허명섭 일가를 계속 억압해왔기 때문에 황매화도 허명섭 일가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었지만 이도진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눈앞에 있는 키가 몹시 크고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을 지닌 것 같아 보이는 그 남자는 황매화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 이도진은 고개를 돌려 무심하게 황매화를 바라봤다.
  • 그녀가 지금 내뱉는 목소리는 마치 아득히 멀고 먼 동굴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같았다.
  • 시리도록 차다!
  • 뼛속까지 파고든다!
  • “당신 집안은 가정교육이 부족하군. 부모들이 손을 대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나설 수밖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