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했을 때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녀는 실내화로 갈아 신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사라져있었다. 소파 위에는 임가영이 얼마 전에 산 한정판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강아지들 산책을 데리고 나간 것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역시나 달랐다. 몇 천만 원에 달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현관문을 닫는 법이 없었다.
임 가는 넓은 뜰을 보유한 데다가 깊이 위치하고 있어 경계가 삼엄했고 그로 인해 임가영은 문을 닫는다는 게 무엇인지 아예 개념이 없었다.
권지안의 집은 임가영의 대저택에는 절대 비할 수 없었다.
아무리 시내 중심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단지는 금싸라기 땅이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넓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에는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야간에는 경비원들이 팀을 이루어 순찰을 돌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문을 닫은 뒤 옷을 갈아입고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려다 다시금 세탁기에서 꺼냈다.
주서온의 누나 옷이라면 명품 브랜드일 것이었으니 세탁소에 맡길 수밖에 없는 옷일 게 분명했다.
그녀는 세탁소에 전화를 걸어 픽업을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김에 본인 옷도 같이 맡겼다.
그녀는 명품 브랜드를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윤지석이 자주 그녀에게 사주곤 했다.
그녀를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윤지석은 그들에게 포장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품을 입을 수 있다면 소송을 많이 맡았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소송을 많이 맡았다는 건 승소률이 높아서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순환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윤지석은 제대로 판을 짜는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탁소 알바가 옷을 수거하러 왔고 임가영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던 그때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임가영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우성이었다.
“문은 왜 닫는 거야. 지문인식하기 귀찮은데.”
권지안은 그녀의 말에 개의치 않아 했다.
“그럼 앞으로 문을 부숴버리고 밤에 누가 날 들어간 다음에 강간하고 나서 죽여버리면 되겠다.”
임가영은 맨발로 뛰어가 코를 벌렁거리며 크게 들이마셨다.
“내 것도 끓였어?”
“그럼 이거 나 먼저 줘.”
“나한테 맡겨뒀어?”
“아니야?”
그녀는 똑똑히 얘기했다.
“내 거북이 죽게 만들었잖아.”
어찌나 뻔뻔한지.
그녀의 엄마한테 결벽증이 있어서 아무리 임 가가 넓은 면적이라고 하지만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임가영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길에서 바퀴벌레만 봐도 귀엽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그녀는 이상한 동물을 가지각색으로 키웠다. 그런데 키울 데가 없었던 그녀는 전부 권지안의 집에 맡겨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권지안은 완성된 라면을 들고 식탁 앞으로 갔다.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식탁 위에 있었고 임가영까지 그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누가 얘네들 식탁 위로 올리라고 허락했어? 당장 내려놔!”
“넌 참 사랑이 없는 아이구나.”
“그럼 라면 먹지 말던지.”
임가영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애지중지하는 제 보물들을 한 마리씩 밑으로 내렸다. 권지안은 그제야 라면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라면을 먹으며 권지안과 수다를 떨었다.
“오후에 주 가에 조문 다녀왔거든. 주 가에 대해서 알아? 넌 모르겠다. 윤지석은 무조건 알 거야.”
권지안은 마음이 철렁했지만 손은 멈추지 않고 라면 봉지를 뜯었다.
임가영은 수다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주 가 큰 아들이 세상을 떠났거든. 꽤 잘생겼어. 그때 우리 엄마가 나를 그 사람이랑 맺어주려고 하기도 했어. 근데 명줄이 그렇게 짧을 줄은 몰랐지.”
권지안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임가영 옆을 지나고 있었고 그녀는 권지안을 콕콕 찌르며 얘기했다.
“계란 후라이 하나만 해주라.”
권지안은 그녀를 째려보았다.
“내가 너희 집 가정부야?”
“나는 할 줄 모르니까 그러지. 제발 해주라 권지안. 네가 최고야.”
아가씨는 역시나 팔자가 좋았다. 애교만 부리면 가만히 앉아서 성과를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권지안은 다시금 주방으로 가서 후라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임가영이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주 가는 이제 아들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 그 집에서 딸을 여섯이나 낳을 때까지 아들이 없었거든.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사모님이랑 결혼을 하게 된 거야. 점쟁이가 먼 지역의 여자일수록 좋다고 했거든. 러시아 교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조상님 중에 외국인 혈통도 있다나 봐. 그러니까 충분히 먼 지역의 사람인 거지. 그리고 지금의 사모님이 본인 몫을 아주 잘 해낸 것도 있어. 연달아 아들 둘을 낳았거든. 근데 서른 살 밖에 안 된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권지안은 후라이를 그녀에게 건넸고 임가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입안 가득 라면을 넣은 탓에 웅얼거리며 말을 하고 있었다.
“주 가 작은 아들 주서온은 외국에 있다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것 같더라고. 엄청 생기발랄하게 생겼더라. 이 누나도 막 설렐 정도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