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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왜 나를 때리는 거지?

  • 자리가 끝났을 때 시간은 이미 오후가 되어있었다.
  • 윤지석은 얼큰하게 취해 있었기에 권지안은 정신 줄을 잡고 있어야 했다.
  • 그럼에도 윤지석은 손님들을 배웅하겠다고 난리였고 권지안은 그런 윤지석을 차에 밀어 넣었다.
  • 주서온은 멀리서 그녀를 쳐다보며 그녀를 향해 전화기 모양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 차 안, 윤지석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완전히 권지안에게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거의 깔려 죽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 그는 입을 벌린 채 잠들어버렸고 술 냄새는 너무나도 역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 냄새가 구린 그를 보며 권지안은 저도 모르게 향기로운 주서온을 떠올리게 되었다.
  • 그는 정말로 풋풋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 윤지석은 대학교 때부터 이미 풋풋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졸업을 하고 난 뒤에는 미리 느끼해지기도 했다.
  • 권지안은 차에 타고 있는 동안 내내 마음이 들떠있었다.
  • 그렇게 윤지석의 집에 도착한 뒤 그녀는 기사에게 윤지석을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 그는 권지안의 집에서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었다.
  • 원래는 권지안과 같은 단지로 하려고 했으나 여자를 꼬시기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맞은편 단지로 집을 사는 것이었다.
  • 권지안은 힘들게 그의 신발을 벗겨준 뒤 침대까지 그를 옮겨갔다. 그러고 나서 베개를 머리 밑으로 넣어주었다.
  • 혹시라도 토를 하게 된다면 기도나 코가 막히는 일은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 그녀는 물 한 컵을 따라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둔 뒤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런데 윤지석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 “권지안…”
  • “왜?”
  •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눈을 감은 채 주정을 부렸다.
  • “나는, 다 우리 미래를 위한 일을 하는 거야. 너, 가소롭게 여기지 마…”
  • 인사불성으로 취한 상태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참으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 그녀는 민가희라거나 희연이라든지 아니면 벨라를 부를 줄 알았다.
  • 그녀는 윤지석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손가락을 떼내자마자 그가 다시 잡아버렸다.
  • 윤지석은 손을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권지안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 뽀뽀를 하기까지 했다.
  • 그러고 나서는 더욱이 박차를 가하기까지 했다. 그는 갑자기 권지안을 끌어당겨 품에 안더니 침대 위로 덮쳐버렸다.
  • 술 냄새를 잔뜩 풍기는 그의 입술은 그녀의 옷깃을 멋대로 누비고 있었고 손은 그녀의 몸을 함부로 휘젓고 있었다. 이어 마음대로 그녀의 옷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 윤지석이 이렇게 손을 대는 것은 오랜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늘은 술을 마셔서 그런지 취기를 빌려 관계를 맺으려는 듯했다.
  • 권지안은 애써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의 힘은 유난히 컸기에 몇 차례의 움직임 끝에 권지안의 옷은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 다급한 상황에서 권지안은 힘껏 그를 밀어냈고 심지어는 귀싸대기를 세게 날리기까지 했다.
  • 그녀는 한껏 세게 때린 탓에 때리고 나서 손바닥이 저릿해질 정도였다.
  • 윤지석은 귀싸대기 한 방에 술이 깨게 되었고 침대에 누워 넋이 나간 채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 “왜 때리는 거야?”
  • 권지안은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엉망으로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 물을 따라주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
  • 윤지석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나온 그녀는 길가에 서서 맞은편에 있는 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 아무리 그래도 윤지석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 남자친구가 뜨거운 시간을 바라는 것에 그녀는 귀싸대기를 날리는 것으로 답했다.
  • 그런데 그녀는 몇 시간 전에 어린 연하남과 호텔 소파 위를 뒹굴던 사람이었다.
  •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분명 생일선물로 남겨주려 했던 시간이었고 그저 하룻밤의 미친 짓으로 끝을 내려고 했었다.
  • 그런데 이제 상황은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듯했다.
  • 그녀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어떤 한 가지 일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특히 본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 권지안이 집에 도착하고 나서 윤지석이 전화로 또 한 번 물었다.
  • “왜 때린 거야?”
  • 권지안은 대답하는 것도 귀찮았다.
  • “술 깨고 나서 다시 얘기해!”
  • “권지안, 너 어쩜 그렇게 독해? 강냉이가 털리는 줄 알았어.”
  • 권지안은 제 손바닥이 부어버린 것을 보며 너무 힘을 실은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 그녀는 약간의 미안한 마음을 느꼈지만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 “누가 멋대로 굴래?”
  • “세상에, 우리 만난 지가 몇 년이야. 권지안, 너 언제 시간 날 때 나랑 심리 상담 받으러 가자. 너 혹시 순결에 강박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 “그 입 닥쳐!”
  • 권지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순결에 강박이라…
  • 단연 없는 것이었다.
  • 하지만 그녀 역시 어린 연하남에게 순결을 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 아마 윤지석이 알게 된다면 우울해 미쳐버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