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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책임질 거예요

  • 누군가 갑자기 문을 두드렸고 문에 붙어있던 두 사람은 동시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 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서온아, 너 방에 있는 거지? 아빠가 부르셔.”
  • “알겠어.”
  • 그는 재빨리 답했다.
  • “금방 갈게.”
  • “그래, 밑에서 기다릴게.”
  •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두 사람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주서온은 아직 그녀를 놓지 않은 상태였고 두 사람은 옷매무새가 다소 흐트러진 상태였다.
  • 권지안은 그의 품에서 벗어났고 갑갑해 하며 이마를 짚었다.
  •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어린 연하남 앞에서 억제하는 법을 까먹다니.
  • 상을 치루는 사람 앞에서 뭐 하는 짓인가 싶었던 것이었다.
  • 그녀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고개도 들지 않고 주서온에게 얘기했다.
  • “먼저 나갈게요.”
  • 문을 열던 찰나 그가 권지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가늘고 긴 새하얀 손가락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 그 모습에 그녀는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그녀는 마치 메말라 죽어가던 수선화의 뿌리에 갑자기 수분이 채워진 것처럼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 그녀는 뿌리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꿀꺽꿀꺽…
  • “지안 씨, 명함 받았으니까 이따 연락처 추가할게요.”
  • 거절하기 어려울 듯한 얘기였다.
  • 그녀는 한마디 응한 뒤 문을 열고 나갔다.
  •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다 고개를 돌려보았고 주서온은 여전히 문 앞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 권지안은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도 그의 목에 남은 흔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 그녀는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조문객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붐비고 있었다. 그 덕에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 그녀는 별채에서 겨우 윤지석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는 얼굴 가득 비통함이 드리워진 사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모님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주서온과 많이 닮아있었다.
  • 윤지석은 정말로 제 능력을 발휘해서 주 가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사모님은 눈시울이 붉어졌을 뿐이었지만 윤지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물론 상주 앞에서 안약을 넣었을 리는 없을 것이었다.
  • 그는 제대로 순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윤지석은 정말이지 배우감이었다.
  • 권지안은 입구에 한참을 서있었고 윤지석은 그녀를 발견하고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손을 흔들어 그쪽으로 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그녀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고 윤지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주 가 사모님에게 소개를 해주었다.
  • “사모님, 이쪽은 제 여자친구예요. 저희 로펌 수석 변호사죠. 업무능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 권지안은 그가 곧바로 영업하려 들까 봐 재빨리 쉬지 않는 그의 입을 닫아버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주 가 사모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사모님.”
  • 그녀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윤지석을 데려갈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 그는 이곳에 남아 빈소를 지켜야 한다고 하기까지 했다.
  • 권지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일 있어서 먼저 갈게.”
  • “무슨 일? 아까…”
  • “급한 일이야.”
  • 권지안은 주 가 사모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떴다.
  • 그녀는 황급히 주 가를 떠났다. 밖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고 비도 그쳤다.
  • 공기는 훨씬 맑아졌고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민트향의 가글 냄새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연하남에게 중독이라도 된 건가?
  • 그녀는 지금처럼 이렇게 이성적이지 못했던 적은 없었던 듯했다.
  • 통상적으로 그녀는 어떤 상황에 있든 제 감정을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그녀는 장례식장으로 올 때 윤지석의 차를 타고 왔기에 지금은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주 가는 산 중턱에 있었고 프라이빗한 위치였기에 택시가 올라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길을 따라 걸어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 이때, 주서온이 카톡을 보내왔다.
  • 그녀는 친구 추가를 할지 말지 망설였다.
  • 그녀의 결단력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였기에 평소 머뭇거리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 그녀는 족히 산 아래 도로변까지 내려오는 동안 내내 망설였다. 그리고 그때 택시 한 대가 멀리서 오고 있었고 그녀는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 그녀가 손을 흔들자마자 택시가 멈춰 섰다.
  • 주서온은 곧바로 카톡을 하나 더 보내왔고 음성 메시지였다.
  • 그녀는 택시에 앉아 음성 메시지를 클릭했고 주서온의 풋풋한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 “지안 씨, 제가 책임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