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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좋아해요

  • 그녀의 뜬금없는 답변에 주서온은 그녀를 잠시 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 이때 주 가 사모님이 들것에 기절한 채 실려 나오고 있었다. 울다 지쳐 기절한 것이었다.
  • 주서온은 빠르게 뛰어갔다.
  • 권지안은 옆으로 비켜서서 주 가 사모님이 차에 실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윤지석은 마치 앞잡이처럼 앞뒤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 주진화도 미리 나왔다.
  • 윤지석은 권지안을 끌고 가서 함께 장례식장을 나설 수 있도록 돕게 했다.
  • 윤지석은 조심스럽게 주진화를 차에 태우며 머리를 부딪힐까 봐 손바닥을 차량 위로 올리는 모습이었다.
  • 이때 권지안은 꽤나 예쁘장한 얼굴의 젊은 여자가 맨 마지막에 세워진 차 옆에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완장을 끼고 있기도 했다.
  • 낯선 얼굴이었다. 권지안은 방금 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던 듯했다.
  • 권지안은 시선이 불룩한 여자의 배에 닿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임산부는 이런 장소로 들어가면 불길하다는 썰이 있어 들어가지 않은 듯했다.
  • 그녀 역시 주 가의 사람인 듯했다. 만약 평범한 조문객이었다면 아마 힘들게 이곳까지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 여자는 빠르게 차에 올라탔고 차는 그들 앞으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 윤지석은 꼿꼿하게 서있었고 차가 한참이나 멀리 떠났음에도 계속해서 목례를 하고 있었다.
  • 권지안이 입을 열었다.
  • “이제 차가 안 보여.”
  • 윤지석은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며 한쪽 팔을 권지안의 어깨 위로 올렸다.
  •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이틀 동안 거의 눈도 못 붙였어.”
  • 권지안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 “누가 그러래?”
  • “너무 양심 없는 발언 아니냐? 내가 누굴 위해서 이러는 건데? 다 우리 로펌을 위해서 이러는 거잖아. 결국에는 우리 두 사람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
  • 그가 규탄을 하던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 권지안은 그의 표정만 보고도 민가희에게서 걸려온 전화일 것임을 알아챘다. 그는 권지안을 쳐다본 뒤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 영결식이 끝난 뒤 주민웅의 송장은 화장을 진행했고 주진화와 사모님은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 가의 딸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 주서온만이 이곳에 남아 주민웅의 납골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 그는 고개를 떨군 채 벤치에 앉아 있었고 하도 울어서 코끝마저 빨개져 있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꼬마 아이 같았다.
  • 권지안은 그에게로 다가가지 않고 벤치 몇 개를 사이에 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윤지석은 전화를 끊은 뒤 돌아서다 권지안이 주서온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은 것을 보고 그녀의 팔을 잡고 주서온 옆으로 데리고 갔다.
  • “둘째 도련님이랑 이야기 좀 나눠 드리지 그래. 위로도 좀 해드리고.”
  • 그는 권지안을 주서온의 옆에 데려다 놓은 뒤 주서온에게 말했다.
  • “둘째 도련님, 앉으세요. 큰 도련님 납골는 제가 지켜보고 있을게요.”
  • 주서온은 고개를 들어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 윤지석이 떠난 뒤 주서온은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물었다.
  • “저분 며칠 내내 도와주셨는데 혹시 누군지 알아요?”
  • “같은 로펌 사람이에요.”
  • 권지안은 이 정도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고 주서온은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 불현듯 그가 권지안의 손을 잡았다.
  • 그리고 이상할 것 없이 그녀는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 그녀가 손을 빼내려던 그때 마침 윤지석이 고개를 돌렸고 권지안은 동작을 멈췄다. 왜냐하면 윤지석의 각도에서는 두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 역시나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웃으며 권지안에게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그는 입모양으로 주서온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주라는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이 순간 권지안은 문득 궁금해지게 되었다. 만약 윤지석이 주서온이 그녀의 손을 잡은 모습을 본다면 어떤 반응일지 말이다.
  • 화를 낼 것일지 아니면 굽신거리며 주서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일지 궁금했다.
  • “둘째 도련님, 편하신 대로 하세요, 편하신 대로.”
  • 이익 앞에서 그녀는 윤지석이 제 마누라를 팔아먹을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 게다가 아직 마누라도 아니었다.
  • “지안 씨.”
  • 옆에 있던 주서온이 문득 입을 열었다.
  • 권지안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권지안을 쳐다보았다.
  •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예기했다.
  • “지안 씨, 좋아해요.”
  • 이토록 직설적인 고백은 오랜만에 받아보는 권지안이었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주서온이 말을 이어갔다.
  • “저희 형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야기해야 한다고요. 아무도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 권지안은 그를 쳐다보며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 갑작스러운 고백은 알게 된 지 3일도 채 지나지 않은 족히 그녀보다 5살은 어린 남자의 입에서 뱉어지고 있었다.
  •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말이다. 그녀는 방금 전 두근거리던 심장이 설렘 때문인지 헷갈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