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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보고 싶었어요

  • 권지안은 라면을 완성하고 나서 임가영의 맞은편에 앉아 같이 먹기 시작했다.
  • 그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권지안에게 건넸다.
  • “봐봐, 엄청난 비주얼이야. 유럽 쪽 미남들보다 더 잘생기지 않았어? 쩔지?”
  • 권지안은 힐끔 쳐다보았다. 쩌는 정도가 아닐 수가 없지.
  • 안 그럼 어제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 더 눈에 들어왔던 것만으로도 그의 용안을 잊지 못했을까.
  • 권지안은 핸드폰을 밀어내며 계속해서 라면을 먹었다. 임가영은 거의 화면 속으로 들어갈 지경이었다.
  • “나도 오늘 봤거든. 누나들이랑 울고 있더라. 배꽃을 적시는 이슬같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심장이 아주 남아나질 않았어.”
  • “너희 국어 선생님이 네 말을 들었으면 울다 쓰러지시겠다.”
  • “남자를 그렇게 형용하는 게 뭐 어때서? 네가 실물을 본 것도 아니잖아. 쩔어, 정말 쩔어.”
  • 권지안이 식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녀는 낯선 번호인 것을 보고 공적인 일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았고 스피커 모드로 해두기까지 했다.
  • 그런데 주서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 “권지안 씨?”
  • 그녀는 흠칫 놀라며 핸드폰을 가져오려 했으나 임가영이 한발 앞서 낚아채버리더니 높이 치켜들었다.
  • 스피커 너머의 주서온이 말했다.
  • “지안 씨, 지안 씨가 제 방에 차 키를 두고 가셔서요. 주소 하나만 불러주시면 가져다드릴게요.”
  • 권지안은 곧바로 가방을 뒤졌고 정말로 차 키가 들어있지 않았다.
  • 그녀는 기억을 돌이켜보았고 오후에 그의 방에서 클렌징 워터를 찾다가 꺼내 둔 것으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가방에 넣어두는 것을 까먹었던 것이었다.
  •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임가영이 먼저 목청 높여 얘기했다.
  • “그래요, 좋아요. 갖다주세요. 블레스티지 캐슬 16단지 A동 1606호에요.”
  • 임가영은 말을 끝낸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즐거워하며 핸드폰을 높이 들고 소파 위에서 방방 뛰어다녔다.
  • “너~너 솔직히 얘기해 봐. 이 사람 누구야? 목소리 들으니까 엄청 어린 것 같은데. 연하남이야? 너 이제 막 나가겠다 이거야? 하하하하…”
  • 권지안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 “너희 집에 돈이 많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 안 그럼 내가 진작에 너 때려죽였을 거야.”
  •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깐족거리다 식탁 앞으로 돌아갔다.
  • “말해, 누구야? 뭐 하는 사람인데? 두 사람 무슨 사이야? 너 윤지석 찼어? 진작에 찼어야 했어. 걔 점점 더 느끼해지더라. 넌 그냥 돈줄이고…”
  • “닥쳐.”
  • 권지안은 핸드폰을 낚아챘다.
  • 그녀는 임가영을 피해 숨어서 주서온에게 가져오지 말라는 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 그런데 그녀가 설거지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이 다시금 울렸다.
  • 그녀는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주서온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정말로 주서온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 주서온이 입을 열었다.
  • “지금 밑에 있어요. 바로 올라갈게요.”
  • “아니요.”
  • 권지안은 곧바로 제지했다.
  • “밑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 임가영은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클럽 갈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그래서 그녀는 권지안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지 못했다.
  • 권지안은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집을 나섰다.
  • 그녀는 A동 입구에서 주서온을 발견했고 그는 검은색의 셔츠에 검은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화단 앞의 보라색 등나무 앞에 서있었다.
  • 꽃이 만개한 나무 위 보라색의 포도송이 같은 꽃송이가 그의 정수리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 바람이 불어오고 꽃송이들은 방울처럼 한데 부딪혔고 종이 울리듯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 주서온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 권지안이 헛기침을 하자 그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 옆에 있던 가로등 불빛 아래 그는 다소 창백하고 부서질 듯한 연약한 얼굴이었다가 문득 화려한 꽃을 피우듯 만개하는 얼굴이 되었다.
  • 그는 권지안을 향해 쏟아지듯 다가갔고 하마터면 그녀를 넘어뜨릴 뻔했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권지안의 팔을 잡았다.
  • 하루에 세 번을 만난다는 건 엄청난 인연일 것이었다…
  • “괜한 걸음 하게 만들었네요.”
  • 권지안은 팔을 빼며 인사치레를 뱉었다.
  • “고마워요. 사실 다른 사람한테 갖다 달라고 해도 됐는데. 급한 것도 아니고요.”
  • 하지만 그는 권지안에게 차 키를 건네지 않았다.
  • 그녀는 계단 위에 서있었고 주서온은 계단 아래에 서있었다. 건물 안의 밝은 불빛이 극히 아름다운 그의 용안을 비추고 있었다.
  •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해 권지안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에 권지안은 꽁무니를 빼고 싶을 정도였다.
  • “차키요, 감사합니다.”
  • 그녀는 다시금 반복해서 얘기했다.
  • 주서온이 문득 얘기했다.
  • “급하지 않았다는 거 알겠는데 나는 급했어요.”
  • “뭐가 급했다는 거예요?”
  • 얼떨결에 질문을 뱉으면서 권지안은 이미 후회를 하고 있었다.
  • 주서온은 키를 잡고 있던 손으로 불쑥 권지안의 손을 잡았다.
  • “뭐가 급했냐면.”
  •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 “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