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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런 우연이

  • 상대방은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 “전 주 가 기사입니다. 조문은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 윤지석은 표정에 흔들림이 없이 권지안을 끌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주 가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울음소리가 난무했다. 널리 시야를 두면 온통 검은색의 떼를 지은 사람들 무리로 북적이고 있었다.
  • 윤지석은 사람들 속에서 찾아 헤매다 문득 권지안의 팔을 잡아당겼다.
  • “저분이 주민웅의 아버지 주진화야.”
  • 윤지석은 그에게로 다가가 양손을 뻗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이 질투해서 훌륭하신 분을 젊은 나이에 데려갔나 봅니다.”
  • 주진화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곧바로 윤지석과 악수를 나눴다.
  • “누구시죠?”
  • 윤지석은 바로 명함을 건넸다.
  • “김정 로펌 윤지석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 로펌 수석 변호사이자 저의 동업자이기도 합니다.”
  • 윤지석은 권지안을 주진화의 앞으로 끌어왔다. 주진화는 아들을 잃은 고통 속에서 그의 소개를 들을 기분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급급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 “조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 말을 끝낸 뒤 주진화 다른 조문객들을 맞이하러 갔고 윤지석은 권지안과 함께 빈소로 가서 조문했다.
  • 빈소에는 주민웅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확실히 젊었고 준수한 얼굴이기도 했다.
  • 권지안은 몇 번이고 사진을 쳐다보았고 왠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 빈소 양쪽에 있던 상주들이 향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권지안은 향을 꽂은 뒤 경례를 세 번 했다.
  • 옆에 있던 상주들도 따라서 경례를 했고 권지안의 옆에 있던 키 큰 남자가 몸을 일으켰을 때 권지안은 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 두 사람은 동시에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 왜냐하면 권지안이 몇 시간 전까지 봤던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의 교집합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런데 세상일은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시나 통제 범위 내에 있지 않았다.
  • 권지안은 아침에 그가 말해준 이름이 얼핏 떠오르게 되었다.
  • 주서온이라고 했었다.
  • 주 씨 성인 걸 보면 주 가의 사람인 듯했다.
  •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인지,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 “당신…”
  • 주서온의 입술 사이로 말이 뱉어지고 있었다.
  • 그런데 윤지석이 바로 옆에 있었기에 권지안이 바로 말을 가로챘다.
  • 이때 윤지석도 향을 올린 뒤 경례를 하고 나서 상주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 주서온과 악수를 할 때 그는 사교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 “둘째 도련님이시죠?”
  • 주서온은 그를 쳐다보며 손을 뺐다.
  • “누구시죠?”
  • 윤지석은 그에게 명함을 건네며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권지안의 명함을 건넨 것이었다.
  • 주서온은 명함을 건네받고 고개를 숙여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 권지안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만날 생각이 없던 사람을 이런 자리에서 마주쳤으니 말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집안에 이러한 일이 생겼으니.
  • 권지안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전한 뒤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윤지석이 기어코 그녀를 놔주지 않는 것이었다.
  • 권지안은 낮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 “뭘 더 어쩌라고?”
  • “오자마자 가려고? 오늘 밤새 빈소 지켜야 돼.”
  • “널 알지도 못하던데 왜.”
  • “처음에는 낯설어도 결국에는 친숙해질 거야.”
  • 윤지석은 그녀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 “상주들이랑 이야기 좀 나눠. 위로도 좀 건네고. 사모님이 안 보이는데 나는 사모님 찾으러 가야겠어.”
  • “함부로 나대지 마. 아들이 세상을 떠나서 한창 슬플 텐데.”
  • “그러니까 나 같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난로의 온기가 필요한 거야.”
  • 윤지석은 말을 끝낸 뒤 바로 자리를 떠버렸고 권지안만이 빈소에 남게 되었다.
  • 그는 윤지석과 함께 미쳐 날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워낙 로펌 업무가 한가득 쌓여있는 상태에서 굳이 이곳에 남아 민폐를 끼칠 필요도 없었다.
  •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굳이 벌벌 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 권지안은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 그렇게 마당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 등 뒤로 청량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권지안 씨?”
  •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권지안은 뒤돌아섰고 남자는 지붕 아래에 서있는 모습이었다. 검은색의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어제저녁, 그리고 아침에 봤던 모습과는 아예 딴사람처럼 보였다.
  •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그 얼굴이었고 눈은 여전히 그 눈이었다.
  • 그러니까 두 사람은 똑같은 사람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 권지안은 더 이상 모르는 척 굴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 “하이.”
  • 그는 계단을 따라 내려온 뒤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
  • 그의 눈시울은 붉어진 상태였고 울고 난 뒤인 듯했다.
  • 권지안은 한마디 보탰다.
  •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돼서 유감이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