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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내가 혹시…

  • 권지안은 벙찐 모습이었다. 그녀는 문 손잡이를 잡은 채로 돌아서서 그를 쳐다보았고 일순간 미처 반응을 하지 못했다.
  • 그는 더욱이 빨개진 얼굴을 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 “잠깐만요.”
  • 그는 침실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에 품에 뭔가를 안고 나왔다. 권지안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호텔 침구로 보였다.
  • 그는 천천히 그것을 펼쳤고 그녀는 새하얀 침대커버 중앙을 물들인 일말의 붉은색을 보게 되었다.
  •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 제발 땅바닥에 틈이 생겨서 그녀를 숨을 수 있게 해줬으면 싶었다.
  • 그녀는 아마 얼굴이 빨개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한없이 난처했다.
  • 주서온의 얼굴은 익어버린 것처럼 빨갰다. 그는 권지안의 눈을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뜬 채 제 발끝을 쳐다보며 말했다.
  • “내가, 내가 이걸 돈 주고 사 왔어요. 책임질게요.”
  • 권지안은 또 한 번 흠칫했다. 그리고 바로 그의 말에 담긴 뜻을 캐치하게 되었다.
  • 그는 그녀가…
  • 하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 그녀가 윤지석과 4, 5년을 만나오면서 아직도 처녀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꽤나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 대학교 때 그녀는 사랑을 나누는 일에 대해서 배척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 그녀의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콘돔을 사용한 상태에서 사랑을 나눴음에도 임신을 하게 되었고 중절수술을 하면서 큰 출혈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 그리고 그녀의 위층 침대에서 자다가 한밤중에 피를 흘렸고 권지안이 얼굴로 그 피를 맞게 되었던 것이었다.
  • 그 일은 그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고 한창 혈기왕성했던 윤지석은 매일 참아내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 나중에는 졸업을 맞으면서 사법고시에 창업까지 병행하느라 그런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 그리고 어쩌면 윤지석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그 뒤로 더 이상 그녀에게 강요하는 일이 없었기도 했다.
  •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만나는 동안 순결했다는 건 당사자마저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 이 일은 참…
  • “책임질 필요 없어요.”
  • 권지안은 그의 손에 들린 침대 커버를 가져가려 했지만 그녀는 조문을 하러 온 입장이라는 것이 떠올르게 되었다.
  • 이 상황에서 침대 커버를 품에 안고 나간다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 “그냥 버려요. 주서온 씨라 그랬죠? 어제저녁 일은 그냥 없던 일로 쳐요. 커버에 남은 것도 신경 쓰지 말고요.”
  • 주서온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의 눈은 여전히 빨갰다.
  • 블루 그레이 색의 유리구슬은 윤슬처럼 찰랑이는 물결 속에 담겨 유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이 녀석은 참으로 예쁘게 생겼다.
  • 권지안이 한 번은 더 해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예뻤다.
  • “아니요.”
  • 남자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 “우리 형 장례가 끝나면 찾아갈게요.”
  • 그는 권지안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그에게서 풋풋한 청춘의 숨결을 느끼게 되었다.
  • 애티 나는 향기가 나고 있었다.
  • 약간은 어지러울 정도로 홀렸다.
  • 권지안 본인도 영문을 알 수 없게 주서온에게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까치발을 하며 그의 목을 감쌌다.
  •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침대 커버를 바닥에 떨궜다.
  • 권지안은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콧등에 제 콧등을 맞대고 그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댔다.
  • 그녀는 심지어 주서온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서 쿵, 쿵, 쿵 하며 격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 남자의 손은 살포시 그녀의 등허리 위에 올려졌고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권지안까지도 떨게 되었다.
  •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그녀의 눈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 그녀가 눈을 비비기 위해 움직이기도 전에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 부드러웠고 민트 맛 가글의 청량함이 느껴졌다.
  • 그는 권지안을 문으로 밀고 가서 벽치기를 했다. 그러다 손잡이가 그녀의 등허리를 찌르게 되었다.
  • 그녀는 나지막하게 신음 소리를 냈고 남자는 곧바로 동작에 힘을 풀었다. 그는 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제 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 청춘의 호르몬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었다.
  • 이성이라는 물건은 호르몬 앞에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이 맥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 그의 키스는 휘몰아치고 있으면서도 애티가 흘렀고 서투르면서도 풋풋했다.
  • 주서온은 쑥스럽게 웃었다.
  •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들고 있었고 입꼬리 옆에 예쁘게 파인 보조개가 드러났다.
  • “미안해요.”
  • 그가 뱉은 구절의 끝음에 약간의 떨림이 수반되었다.
  • “내가 아프게 만든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