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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헤어지지 않는 이유

  • 권지안은 안에서 걸어 나왔다.
  • 주태영은 어린 애인과 한창 통화를 하는 중이었고 얼굴을 찡그리며 웃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 권지안의 비서 지수가 아침밥을 들고 들어왔다.
  • 오늘 아침 메뉴는 만두였다.
  •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주태영의 얼굴은 만두에 잡힌 주름마냥 잔뜩 주름이 가있었다.
  • 권지안은 컴퓨터 앞에 마주앉아 제 업무를 보고 있으면서 반 시간 가까이 어린 애인과 통화를 하는 주태영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다 보니 머리가 지끈 했다.
  • “착하지. 내가 차 한 대 뽑아 줄게. 포르쉐 911 풀옵션으로다가.”
  • 권지안은 뜬금없이 어제저녁의 남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끌고 다니는 차도 포르쉐 911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녀는 업무 중에 정신이 딴 데 팔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 주태영은 전화를 끊은 뒤 다이아몬드가 한껏 반짝이는 손가락을 구부려 책상을 두드렸다.
  • “권 변호사님, 제가 지난번에 얘기했잖아요. 회사도 내 거, 저택도 내 거, 저택 뒤에 있는 땅도 내 것이어야 한다고요. 등처가 주제에 우리 주 가의 재산을 얼마나 나눠 가지려고 그런대?”
  • 권지안은 파일을 펼치며 답했다.
  • “사모님이 남편분과 결혼하실 때 주 가에서는 빚더미에 앉은 신세였잖아요. 남편분이 사모님과 함께 아글타글 애를 쓴 덕에 지금의 재부를 얻게 된 거고요. 그런데 한 푼도 못 나눠준다고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 윤지석은 옆에서 헛기침을 하며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 주태영은 동태눈을 부릅떴다.
  •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건져간 게 얼마인데? 내가 안 준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회사 지분은 우리 주 가 거니까 꿈도 꾸지 말라는 거죠. 그 인간 명의로 된 집 두 채랑 차 두 대는 줄 수 있어요.”
  •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아서 주는 정도로 저토록 생색을 내다니.
  • 권지안은 그녀에게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프린트기에서 방금 전 프린트한 자료를 건넬 뿐이었다.
  • “확인 한 번 하시죠. 이건 사모님이 고소하신 부분입니다. 문제없으면 사인하시고 소송 진행하는 걸로 하죠.”
  • 주태영을 겨우 보내고 나서 권지안은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 만두는 진작에 식어 있었고 당면은 이미 불어서 한데 뭉쳐져 있었다. 그리고 고기도 식어서 미끄덩한 식감이었기에 그녀는 한 입을 먹은 뒤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 윤지석은 그녀의 책상 앞에 마주 앉아 그녀에게 사상교육을 해주고 있었다.
  • “권지안, 네가 프로페셔널하다는 건 알겠어. 근데 이성적이지를 못해. 주 사모님은 우리 고객님이잖아. 굳이 너의 개인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주입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우린 그냥 의뢰인의 요구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상황 하에서 소원만 이뤄주면 되잖아.”
  • “여긴 로펌이야.”
  • 권지안은 접시를 옆으로 밀어내며 얘기했다.
  • “시퍼런 대낮에 꿈이나 꾸러 오는 곳 아니라고.”
  • “그러니까 우리같이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 거잖아. 우리한테 비싼 비용을 쏟았으니까 우린 그냥 승소하는 것만 책임지면 돼. 양쪽에 다 좋은 게 그거니까.”
  • 윤지석은 너무나도 시끄럽게 굴었다. 권지안은 방금 전 주태영의 목소리에 충분히 머리가 윙한 상태였다.
  • “두 사람이 혼전 계약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럼 재산은 똑같이 분할해야 하는 거지. 지금 상대방에게 일전 한 푼 안 주겠다고 온갖 주작을 벌이려고 하는데 그게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거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
  •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방식 맞아.”
  • 윤지석은 진지하게 답했다.
  • “우리가 그 주작을 도울 필요는 없어. 그냥 합리화된 건의만 주면 돼. 권지안, 네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 윤지석의 삼부작이었다. 우선은 사상교육을 하고 나서 질책과 비난을 쏟은 뒤에는 처방과 마취제를 한데 섞어서 주입하곤 했다.
  • 윤지석의 수법에 대해서 권지안은 꿰뚫고도 남을 정도였다.
  • 권지안은 지수에게 에스프레소를 부탁했다. 윤지석은 오늘 특별히 한가하기라도 한 건지 계속해서 그녀의 사무실에 남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그는 반쯤 의자에 기댄 자세로 있었고 권지안의 각도에서 보면 마침 그의 목이 오색찬란한 것으로 보였다.
  • 지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권지안이 그에게 묻고 있었다.
  • “윤지석, 계속 나랑 헤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내가 돈줄이라서 그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