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영은 어린 애인과 한창 통화를 하는 중이었고 얼굴을 찡그리며 웃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 권지안의 비서 지수가 아침밥을 들고 들어왔다.
오늘 아침 메뉴는 만두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주태영의 얼굴은 만두에 잡힌 주름마냥 잔뜩 주름이 가있었다.
권지안은 컴퓨터 앞에 마주앉아 제 업무를 보고 있으면서 반 시간 가까이 어린 애인과 통화를 하는 주태영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다 보니 머리가 지끈 했다.
“착하지. 내가 차 한 대 뽑아 줄게. 포르쉐 911 풀옵션으로다가.”
권지안은 뜬금없이 어제저녁의 남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끌고 다니는 차도 포르쉐 911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업무 중에 정신이 딴 데 팔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태영은 전화를 끊은 뒤 다이아몬드가 한껏 반짝이는 손가락을 구부려 책상을 두드렸다.
“권 변호사님, 제가 지난번에 얘기했잖아요. 회사도 내 거, 저택도 내 거, 저택 뒤에 있는 땅도 내 것이어야 한다고요. 등처가 주제에 우리 주 가의 재산을 얼마나 나눠 가지려고 그런대?”
권지안은 파일을 펼치며 답했다.
“사모님이 남편분과 결혼하실 때 주 가에서는 빚더미에 앉은 신세였잖아요. 남편분이 사모님과 함께 아글타글 애를 쓴 덕에 지금의 재부를 얻게 된 거고요. 그런데 한 푼도 못 나눠준다고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윤지석은 옆에서 헛기침을 하며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주태영은 동태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건져간 게 얼마인데? 내가 안 준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회사 지분은 우리 주 가 거니까 꿈도 꾸지 말라는 거죠. 그 인간 명의로 된 집 두 채랑 차 두 대는 줄 수 있어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아서 주는 정도로 저토록 생색을 내다니.
권지안은 그녀에게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프린트기에서 방금 전 프린트한 자료를 건넬 뿐이었다.
“확인 한 번 하시죠. 이건 사모님이 고소하신 부분입니다. 문제없으면 사인하시고 소송 진행하는 걸로 하죠.”
주태영을 겨우 보내고 나서 권지안은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만두는 진작에 식어 있었고 당면은 이미 불어서 한데 뭉쳐져 있었다. 그리고 고기도 식어서 미끄덩한 식감이었기에 그녀는 한 입을 먹은 뒤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윤지석은 그녀의 책상 앞에 마주 앉아 그녀에게 사상교육을 해주고 있었다.
“권지안, 네가 프로페셔널하다는 건 알겠어. 근데 이성적이지를 못해. 주 사모님은 우리 고객님이잖아. 굳이 너의 개인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주입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우린 그냥 의뢰인의 요구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상황 하에서 소원만 이뤄주면 되잖아.”
“여긴 로펌이야.”
권지안은 접시를 옆으로 밀어내며 얘기했다.
“시퍼런 대낮에 꿈이나 꾸러 오는 곳 아니라고.”
“그러니까 우리같이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 거잖아. 우리한테 비싼 비용을 쏟았으니까 우린 그냥 승소하는 것만 책임지면 돼. 양쪽에 다 좋은 게 그거니까.”
윤지석은 너무나도 시끄럽게 굴었다. 권지안은 방금 전 주태영의 목소리에 충분히 머리가 윙한 상태였다.
“두 사람이 혼전 계약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럼 재산은 똑같이 분할해야 하는 거지. 지금 상대방에게 일전 한 푼 안 주겠다고 온갖 주작을 벌이려고 하는데 그게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거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방식 맞아.”
윤지석은 진지하게 답했다.
“우리가 그 주작을 도울 필요는 없어. 그냥 합리화된 건의만 주면 돼. 권지안, 네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윤지석의 삼부작이었다. 우선은 사상교육을 하고 나서 질책과 비난을 쏟은 뒤에는 처방과 마취제를 한데 섞어서 주입하곤 했다.
윤지석의 수법에 대해서 권지안은 꿰뚫고도 남을 정도였다.
권지안은 지수에게 에스프레소를 부탁했다. 윤지석은 오늘 특별히 한가하기라도 한 건지 계속해서 그녀의 사무실에 남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반쯤 의자에 기댄 자세로 있었고 권지안의 각도에서 보면 마침 그의 목이 오색찬란한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