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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내가 도울게

  • 하늘도 상황에 따른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올 때까지만 해도 햇빛이 쨍쨍하던 맑은 하늘에서는 갑자기 비가 내리고 있다.
  • 비는 속절없이 내렸다. 크고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 주서온은 그녀의 팔을 잡고 지붕 밑으로 끌고 갔다.
  • 그래도 약간은 비를 맞았고 그녀는 옷에 맺힌 물방울들을 털어냈다. 주서온은 휴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고 권지안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그에게 건넸다.
  • 주서온이 말했다.
  • “그쪽 거예요.”
  • 그녀는 머쓱하게 웃었다.
  • “아.”
  • 얼굴을 닦고 난 뒤에도 주서온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권지안이 입을 열었다.
  • “가서 일 봐요. 나는 상관하지 말고.”
  • “화장 번졌어요.”
  • 그는 권지안의 볼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 “제 방으로 가서 세수라도 할래요?”
  • “괜찮아요.”
  • “거울 봐봐요.”
  • 권지안은 거울을 꺼내 들었고 귀신같은 얼굴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방수 마스카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 현재 상태로 밖으로 나갔다간 누구 하나 놀라서 기절하게 될지도 모른다.
  •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맙다는 말을 했고 주서온은 그녀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그의 집은 대저택이었고 4층까지 있었다. 미로 같았던 구조에 권지안은 지도를 그려야 할 것만 같았다. 안 그럼 이따 나가는 길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주서온의 방은 꼭대기 층의 제일 안쪽에 있었다. 방 여러 개와 시설들이 갖춰진 곳이었고 면적이 아주 넓었다.
  • 인테리어는 딱 봐도 남자 방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 했고 작은 거실에는 엄청나게 큰 게임기가 놓여 있었다.
  • 그는 권지안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 “안에 있는 거 편하게 써요. 옷도 젖었는데 샤워하는 게 어때요?”
  • 조문을 온 사람이 남의 방에서 샤워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행동이 아닌 듯했다.
  • “괜찮아요.”
  • 주서온은 그녀를 위해 화장실 문을 닫아주며 말했다.
  • “천천히 해요. 전 나가 있을게요.”
  • 권지안은 세수를 하고 나서 화장을 다시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서온의 기초화장품을 쓰게 된 그녀는 향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그녀는 샤워를 하지 않고 세수만 한 뒤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문을 나서려다 보니 옷이 젖은 게 신경 쓰이기는 했다.
  • 폴리에스테르 섬유가 피부에 달라붙어 불편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 그녀는 옷을 벗어 마른 수건으로 옷이 마를 수 있도록 짤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지퍼에 손이 닿지 않았다.
  • 옷을 입을 때엔 지수가 뒤에서 지퍼를 올려줬었다.
  • 디자이너가 어떤 의도로 옷을 디자인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옆에 사람이 없으면 옷을 벗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 그녀가 포기하려던 찰나 갑자기 문이 열렸고 주서온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 권지안은 지퍼를 열기 위해 몸을 한껏 비튼 채로 허우적대고 있는 상태였다. 주서온은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다 바로 문을 닫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 “도와줄까요?”
  • “괜찮아요.”
  • 그녀가 바로 답했다.
  • “우리 누나 옷 챙겨왔어요. 새 옷이에요.”
  • 그는 권지안에게 옷을 건넸다.
  • 두터운 그의 호의를 저버릴 수 없었던 그녀는 옷을 건네받았다.
  • 주서온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지퍼를 내려주었다.
  • 어제저녁 그녀는 너무나도 적극적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요염했다.
  • 지금은 그 장면이 불현듯 낯 뜨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 그녀는 혹시 다중인격인 게 아닐까?
  • 지퍼를 내리니 그녀의 매끈한 등이 드러났다.
  • ‘여기까지 해주는 거겠지? 설마 내가 옷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지는 않겠지?’
  • 다행히도 주서온에게 악취미는 없었다. 그리고 권지안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가 얼굴에 약간의 홍조를 띠고 있기도 했다.
  • 흠, 자주 홍당무가 되는 연하남이었다.
  • 사실 그녀에게 꽤나 큰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긴 했다.
  • 왜냐하면 그녀 옆에 있는 윤지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낯짝도 따라서 두꺼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는 아마 평생 얼굴이 빨개지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 취기가 오르는 거면 모를까.
  • 주서온은 밖으로 걸어 나갔고 권지안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었다.
  • 길게 드리워진 앞머리가 그의 예쁜 눈을 가리고 있었고 그의 오뚝한 콧대 위로 팔랑이고 있었다.
  • 잘생긴 얼굴과 우월한 집안, 뛰어난 조건을 지닌 사람이었다.
  • 권지안은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떠날 채비를 했다. 그렇게 입구에 다다랐을 때 주서온이 문득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입을 열었다.
  • “어제 그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