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안은 전화를 끊어버린 뒤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녀는 제 차를 찾아 시동을 걸어 주차장을 나섰다.
햇살이 눈부셨다.
그녀는 호텔 입구를 지나면서 무의식적으로 건물 위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오픈카였지만 어젯밤 그녀가 묵었던 방의 창문을 찾을 수 없었다.
어제저녁과 오늘, 그리고 미래 사이에는 그렇게 결계가 생길 것이었다. 영원히 닿을 수 없을 선이 생긴 것이었다.
그녀가 29살이 된 어제 스스로에게 준 생일선물은 인생에서 유일했던 단 한 번의 고삐 풀린 일탈이었다.
그것뿐이었다.
이제 그녀는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녀는 로펌에 도착했고 주태영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권지안은 복도에서부터 주태영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당신들이 선임비를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 줄 알기나 해? 어제 권 변호사가 나한테 뭐라 그랬는 줄 알아요? 나한테 일단은 그 인간이랑 이야기를 해보래. 내가 그 인간이랑 할 얘기가 뭐가 있어요? 내가 그 인간이랑 화해하려고 돈을 그렇게 많이 갖다 바친 건 줄 알아요?”
부자들은 맞춰주기 참 힘들었다. 비용만 지불했다 하면 그들을 노예로 삼고 부려먹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권지안은 사무실로 들어섰고 윤지석은 한창 자본주의 미소를 띤 채 주태영에게 아부를 떨며 달래주고 있었다.
그는 굽힐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돈만 벌면 다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권지안이 그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었다.
권지안이 온 것을 본 윤지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권 변, 사모님께서 한참을 기다리셨어.”
권지안은 주태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했다. 그리고 안쪽 방에 있는 옷장에서 옷 한 벌을 챙겨 화장실로 가서 갈아입었다.
윤지석은 그녀를 따라 들어갔지만 그녀가 문을 빠르게 닫아버리는 바람에 윤지석은 하마터면 코가 부딪힐 뻔했다.
“어제 집 안 들어갔어?”
그녀는 벗은 옷을 무심하게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방금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윤지석의 목에 남은 흔적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문을 열었다.
윤지석은 여전히 문 앞에 서있었다.
그녀는 셔츠 옷깃에 달린 리본을 묶으며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비켜 봐.”
“참, 저녁에 시간 되지? 엄마가 우리 밥 먹으러 오래.”
권지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알겠어.”
그녀는 거울을 보며 리본을 정리하고 있었고 윤지석은 그녀의 등 뒤에 서있었다.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의 그와 권지안은 선남선녀였다.
사람들은 다들 두 사람에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했다. 대학교 때에는 동기로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같은 전공이었던 두 사람은 같은 업계에 입성했고 지금은 함께 로펌을 열기까지 한 동업자였다.
윤지석은 상황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원활하고 교활한 사람이었기 운영에 연관된 부분을 책임졌다.
그리고 권지안은 업무능력이 강했다. 그녀는 변호사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패소한 적이 거의 없었다. 업계에서는 승리의 여신이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니 두 사람은 찰떡궁합이라 할 수 있었고 천하무적이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로펌은 날 따라 문전성시를 이뤘고 짧은 몇 년이라는 시간 만에 성주시 10대 로펌 중 랭킹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 때부터 합이 잘 맞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함께 같은 길을 가게 되었다.
이제는 윤지석이 밖에서 딴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줄 정도로 두 사람은 합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