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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소용없어, 예정한은 날 미워해

  • 3년 전, 정율은 그를 화재에서 구하려다 심한 화상을 입었다.
  • 이체 피부 이식의 성공률이 극히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정한은 잔인하게 그녀를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 그녀의 다리에는 아직도 그때의 흉터가 남아 있다.
  • 그녀는 그때 정율이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예정한은 한밤중에 그녀의 방에 침입하여 그녀를 죽도록 괴롭히고 마지막에 그녀의 흉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 ‘윤슬, 네 흉터 정말 역겨워.’
  • 3년 후, 정율은 간 이식을 받아야 했다. 분명히 그가 원한다면 어디서든 그녀에게 적합한 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그는 하필 그녀의 간을 원했다.
  • 예정한을 알게 된 이후로 그녀는 자신과 함께 영원히 비바람을 헤쳐나갈 사람은 그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 하지만 결국 그녀가 겪은 수모는 모두 예정한이 준 것이었다.
  • 됐어, 상관없다. 어쨌든 그녀는 이젠 신경 쓰지 않으니까.
  • 윤슬은 서류를 서류봉투에 천천히 넣어 옆자리에 놓았다.
  • “사인 안 해.”
  • 그의 눈매가 차가워졌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뼈에 사무칠 정도로 서늘했다.
  • “안 한다고?”
  • 윤슬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서류봉투에 달려있는 하얀 끈만 내려다보았다.
  • “안 해. 난 걔를 위해 간을 기증할 이유가 없어.”
  • “허, 염치없네. 걔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네 탓인데, 네가……”
  • “도련님.”
  • 윤슬은 예정한의 말을 끊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 윤슬이 그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 지난번에는 그녀의 열여덟 번째 생일날 아침, 예정한이 그녀의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였다.
  •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더니 애교를 떨며 물었다.
  • “도련님, 나 다 컸는데 나랑 결혼할래요?”
  • 분명히 똑같은 세 글자인데.
  • 하지만 이번에는 그토록 차갑게 느껴졌다.
  • “난 도련님이 능력있는 사람인 걸 알아요.”
  •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의 간 위치를 가볍게 두드렸다.
  • “내 간은 바로 여기에 있으니, 원한다면 강제로 잘라내도 돼. 마취도 필요 없어. 나 윤슬은 절대 찍소리도 내지 않을 거니까.”
  • 예정한은 몸을 약간 앞으로 숙여 윤슬의 턱을 움켜쥐었다.
  • 그는 차갑게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 “2년이 지났는데도 넌 여전히 착하지 않아.”
  • 착하지 않아?
  • 예정한이 틀렸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착해졌는데, 얼마나.
  • 때려도 반격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잖아.
  • 그렇다고 그녀가 눈앞의 악마와 타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만약 그녀가 강제로 수술대에 누워서 죽는다면, 하늘이 그녀를 풀어준 셈 치자.
  • 예정한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내가 널 타협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거 알잖아.”
  • 윤슬의 목소리도 더욱 차가워졌다.
  • “그래? 그럼 잘 해봐, 난 그 쓰레기 같은 년을 절대 구하지 않을 거니까. 그냥 죽게 내버려 둘 거야.”
  • 예정한은 그녀의 턱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아직도 감히 이렇게 악랄하게 굴다니.”
  • 윤슬은 비웃듯 그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예정한은 그녀의 얼굴을 뿌리쳤다.
  • “좋아, 아주 좋아. 너 후회하지 마.”
  • 그는 차 옆에 걸려 있는 전화기를 들고, 분부했다.
  • “차 돌려, 클럽으로 간다.”
  • 클럽?
  • 윤슬은 마음이 좀 불안했다.
  • 예정한은 또 뭐 하려는 거지?
  • 차가 로열 클럽에 도착하자 예정한은 긴 다리를 뻗어 차에서 내렸다.
  • 그는 클럽에 들어갈 때 양 집사에게 분부했다.
  • “이 더러운 여자를 깨끗하게 씻겨서 룸으로 보내.”
  • “네.”
  • 예정한은 먼저 떠났다.
  • 양 집사는 차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윤슬을 바라보며,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윤슬 아가씨……”
  • 윤슬은 자신이 지금 예정한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 이길 수 없다.
  • 그렇다면……
  • 그녀는 일어서서 차에서 내렸다.
  • 양 집사는 사람을 보내 그녀를 씻긴 뒤 미니스커트로 갈아입혔다.
  • 윤슬은 예정한의 명령이 없었다면 양 집사가 절대 이런 옷으로 그녀를 모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양 집사는 그녀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 룸에는 사람이 많았고 남녀가 십여 명 정도 모여있었다.
  • 예정한은 소파 중간에 우아하게 앉아 와인잔을 손에 쥔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고 있었다.
  • 그녀의 팔과 다리에 있는, 그 눈에 거슬리는 흉터를 보게 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 그러나 곧 그는 그녀가 과거에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 그는 마음을 다잡고 시선을 위로 옮겼다.
  •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윤슬은 무척 가냘픈 모습이었고, 흉터를 제외하고 보면 머리를 짧게 깎았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 게다가 옷차림까지, 허, 정말 핏줄 터지게 하는군.
  • 윤슬이 들어오자 떠들썩하던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 누군가가 윤슬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 “야, 이거 황성 제일 미녀 윤슬 아니냐?”
  • “그러게, 감옥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 “저것 좀 봐, 팔다리에 흉터 엄청 많아. 징그러워.”
  • “둘째 도련님, 이건 무슨……”
  • 예정한은 담담하게 뭇사람의 말을 끊었다.
  • “오늘 밤, 누가 얘를 데려갈래?”
  • 그 말을 들은 윤슬은 멍해져서 눈을 들어 예정한을 바라봤다.
  • 이것은 그녀가 오늘 밤, 두 번째로 그를 본 것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 “둘째 도련님,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이런 절세미인을 왜 남겨두지 않으시고……”
  • 예정한은 혐오스러운 기색을 띠며 말했다.
  • “나 예정한은 아무 물건이나 건드리지 않아.”
  • 누군가가 즉각 맞장구를 쳤다.
  • “물론이죠. 우리 둘째 도련님은 일편단심 정율 아가씨만 사랑하시잖아요. 제가 듣기로는, 정율 아가씨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자 둘째 도련님께서 두말 없이 아들을 입양하셨다면서요.”
  • 예정한은 차가운 눈길로 윤슬을 흘겨보았다. 그는 윤슬이 용서를 빌기를 기다렸다.
  • 그는 윤슬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모욕은 절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하지만 그가 생각지도 못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