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은 아직 주사액이 흘러나오고 있는 링거를 뽑고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달려들어 정율을 붙잡았다.
“너 미쳤어? 그 사람은 예정한의 어머니야.”
정율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 내 길을 막는 건 다 없애버릴 거야.”
윤슬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율이 그녀를 밀어내자 가뜩이나 허약한 윤슬은 비틀거리며 땅에 넘어졌고 너무 아파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정율은 문을 열고 떠났다.
힘겹게 일어나 문밖으로 쫓아나간 윤슬은 자신이 정율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자 옆을 지나가는 간호사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정율이 사람을…… 예정한의 어머니를 죽이려 해요. 정율을 막아주세요, 부탁이에요……”
간호사는 혐오스럽게 그녀를 밀어냈다.
“미쳤어요? 왜 나를 잡아당겨요? 진짜 싫어.”
다른 간호사가 다가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이 여자에게 뭘 화를 내고 있어. 이 여자는 정말 정신병자가 맞아. 정신병원에 1년 동안 입원한 적이 있으니까. 게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죽은 아이를 낳았대, 진짜 재수 없는 여자야. 가자, 가자, 가자.”
두 간호사는 잔뜩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윤슬을 쳐다보고는 함께 자리를 떠났다.
윤슬은 그녀들에게 화를 낼 틈도 없이 혼자 힘겹게 쫓아갔다.
그녀는 결코 정율이 목적을 달성하게 할 수 없었다.
만약 시어머니가 이대로 돌아가신다면, 그녀의 어머니도 헛된 죽음을 맞이한 거랑 다름이 없었다.
절대 안 돼.
윤슬은 비틀거리며 부지영의 병실에 도착했다.
병실에는 정율 혼자 시어머니 병상 옆에 앉아 있었다.
침대 위의 시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윤슬은 순간 마음이 조여왔다. 시어머니는 사실 깨어나지 않았는데 정율이 그녀를 속였던 것이다.
정율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예정한은 지금 자신을 전혀 믿지 못하니 이곳에 남으면 말려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윤슬은 돌아서서 병실을 나가려 했다.
그러나 정율은 오히려 탁자 위의 과도를 들고, 침착하게 말했다.
“네가 이 문을 나서기만 하면 너의 시어머니는 죽고 너는 시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될 거야.”
윤슬이 고개를 돌리자 정율이 부지영의 목덜미에 과도를 겨누고 입가에 악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정율, 함부로 행동하지 마. 이 사람은 예정한의 어머니야, 너는 예정한을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그래, 난 정한이를 사랑해, 그래서 내가 정한이를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는 거야.”
윤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손을 들었다.
“난 너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야. 난 예정한이랑 이혼할 거야.”
“이혼? 허, 모자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지옥이야.”
정율은 일어서서 칼을 들고 부지영의 몸을 찔렀다.
당황한 윤슬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들어 정율을 밀었다.
하지만 정율의 칼은 여전히 부지영의 왼쪽 하복부에 꽂히고 말았다.
피가 솟구치는 순간 윤슬은 정율의 팔을 낚아채 안간힘을 써서 그녀를 밀쳤다.
정율의 손에 쥐어진 칼도 윤슬에 의해 내팽개쳐졌고 정율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지영의 하복부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윤슬은 손을 뻗어 앞으로 나아가 부지영의 상처를 누르고 두려움에 떨며 바깥에 대고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빨리 여기 좀 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그녀가 당황하고 겁에 질린 모습을 보고, 정율은 땅바닥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윤슬, 이번에는 내가 반드시 너를 이길 거야, 내가 너보다 독하니까.”
정율은 그렇게 말하고 과도를 자신의 어깨에 힘껏 찔렀다.
일전에 예정한이 다친 위치와 똑같은 위치였다.
윤슬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마침내 정율의 목적을 깨달았다.
정율은 확실히 독했다. 정말 지독했다.
바로 그때 간호사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정율은 흥분하며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날 죽이려고 해요.”
간호사는 병실 안의 상황을 보고 겁에 질려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며 몸을 돌려 뛰쳐나갔다.
불과 몇 초 후 달려온 예정한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병실이 어수선한 것을 보고 예정한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정율은 예정한의 발끝으로 기어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정한아, 빨리 아주머니를 구해. 칼에 찔려서 다치셨어.”
어머니의 하복부에 난 상처를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윤슬을 본 그는 화가 치밀어 윤슬을 홱 밀쳤다.
윤슬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예정한을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나 아니야.”
경비원과 의료진은 먼저 자리를 뜬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병실로 왔다.
의료진은 부상을 입은 부지영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윤슬은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가 예정한의 팔을 잡았다.
“나를 믿어줘, 정말 내가 아니야. 이 세상에 나보다 시어머니가 깨어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어, 정율이야, 얘가……”
정율은 나지막이 울기 시작했다.
“슬아, 나는 네가 나에게 준 상처를 따지지 않고, 너의 모든 죄명을 대신 뒤집어쓸 수 있어. 하지만……넌 이렇게까지 악랄하게 굴면 안 됐어. 저분은 정한이의 어머니잖아. 너……설마 아주머니가 깨어나서 네 말이 들통날까 봐 그래? 그래서 아주머니를 죽이려고 한 거야? 만약 오늘 내가 없었다면, 너는 또 누구를 불러서 이 죄명을 대신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거야?”
예정한은 윤슬이 거의 질식할 때까지 윤슬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는 눈 밑이 새빨갛게 물든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윤슬! 우리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 가족의 목숨으로 갚게 될 줄 알아.”
그는 윤슬을 뿌리치고 경비원에게 그녀를 제압하라고 한 뒤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정율을 부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