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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넌 왜 날 믿지 않는 거야

  • 윤슬은 아직 주사액이 흘러나오고 있는 링거를 뽑고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달려들어 정율을 붙잡았다.
  • “너 미쳤어? 그 사람은 예정한의 어머니야.”
  • 정율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 “뭐 어때? 내 길을 막는 건 다 없애버릴 거야.”
  • 윤슬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정율이 그녀를 밀어내자 가뜩이나 허약한 윤슬은 비틀거리며 땅에 넘어졌고 너무 아파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 정율은 문을 열고 떠났다.
  • 힘겹게 일어나 문밖으로 쫓아나간 윤슬은 자신이 정율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자 옆을 지나가는 간호사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 “정율이 사람을…… 예정한의 어머니를 죽이려 해요. 정율을 막아주세요, 부탁이에요……”
  • 간호사는 혐오스럽게 그녀를 밀어냈다.
  • “미쳤어요? 왜 나를 잡아당겨요? 진짜 싫어.”
  • 다른 간호사가 다가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어머, 이 여자에게 뭘 화를 내고 있어. 이 여자는 정말 정신병자가 맞아. 정신병원에 1년 동안 입원한 적이 있으니까. 게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죽은 아이를 낳았대, 진짜 재수 없는 여자야. 가자, 가자, 가자.”
  • 두 간호사는 잔뜩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윤슬을 쳐다보고는 함께 자리를 떠났다.
  • 윤슬은 그녀들에게 화를 낼 틈도 없이 혼자 힘겹게 쫓아갔다.
  • 그녀는 결코 정율이 목적을 달성하게 할 수 없었다.
  • 만약 시어머니가 이대로 돌아가신다면, 그녀의 어머니도 헛된 죽음을 맞이한 거랑 다름이 없었다.
  • 절대 안 돼.
  • 윤슬은 비틀거리며 부지영의 병실에 도착했다.
  • 병실에는 정율 혼자 시어머니 병상 옆에 앉아 있었다.
  • 침대 위의 시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 윤슬은 순간 마음이 조여왔다. 시어머니는 사실 깨어나지 않았는데 정율이 그녀를 속였던 것이다.
  • 정율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다.
  • 예정한은 지금 자신을 전혀 믿지 못하니 이곳에 남으면 말려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윤슬은 돌아서서 병실을 나가려 했다.
  • 그러나 정율은 오히려 탁자 위의 과도를 들고, 침착하게 말했다.
  • “네가 이 문을 나서기만 하면 너의 시어머니는 죽고 너는 시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될 거야.”
  • 윤슬이 고개를 돌리자 정율이 부지영의 목덜미에 과도를 겨누고 입가에 악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 “정율, 함부로 행동하지 마. 이 사람은 예정한의 어머니야, 너는 예정한을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 “그래, 난 정한이를 사랑해, 그래서 내가 정한이를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는 거야.”
  • 윤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손을 들었다.
  • “난 너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야. 난 예정한이랑 이혼할 거야.”
  • “이혼? 허, 모자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지옥이야.”
  • 정율은 일어서서 칼을 들고 부지영의 몸을 찔렀다.
  • 당황한 윤슬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들어 정율을 밀었다.
  • 하지만 정율의 칼은 여전히 부지영의 왼쪽 하복부에 꽂히고 말았다.
  • 피가 솟구치는 순간 윤슬은 정율의 팔을 낚아채 안간힘을 써서 그녀를 밀쳤다.
  • 정율의 손에 쥐어진 칼도 윤슬에 의해 내팽개쳐졌고 정율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부지영의 하복부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 윤슬은 손을 뻗어 앞으로 나아가 부지영의 상처를 누르고 두려움에 떨며 바깥에 대고 소리쳤다.
  • “거기 누구 없어요? 빨리 여기 좀 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 그녀가 당황하고 겁에 질린 모습을 보고, 정율은 땅바닥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 “윤슬, 이번에는 내가 반드시 너를 이길 거야, 내가 너보다 독하니까.”
  • 정율은 그렇게 말하고 과도를 자신의 어깨에 힘껏 찔렀다.
  • 일전에 예정한이 다친 위치와 똑같은 위치였다.
  • 윤슬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마침내 정율의 목적을 깨달았다.
  • 정율은 확실히 독했다. 정말 지독했다.
  • 바로 그때 간호사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 정율은 흥분하며 소리쳤다.
  • “살려주세요, 날 죽이려고 해요.”
  • 간호사는 병실 안의 상황을 보고 겁에 질려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며 몸을 돌려 뛰쳐나갔다.
  • 불과 몇 초 후 달려온 예정한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 병실이 어수선한 것을 보고 예정한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 정율은 예정한의 발끝으로 기어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 “정한아, 빨리 아주머니를 구해. 칼에 찔려서 다치셨어.”
  • 어머니의 하복부에 난 상처를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윤슬을 본 그는 화가 치밀어 윤슬을 홱 밀쳤다.
  • 윤슬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예정한을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 “나 아니야.”
  • 경비원과 의료진은 먼저 자리를 뜬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병실로 왔다.
  • 의료진은 부상을 입은 부지영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 윤슬은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가 예정한의 팔을 잡았다.
  • “나를 믿어줘, 정말 내가 아니야. 이 세상에 나보다 시어머니가 깨어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어, 정율이야, 얘가……”
  • 정율은 나지막이 울기 시작했다.
  • “슬아, 나는 네가 나에게 준 상처를 따지지 않고, 너의 모든 죄명을 대신 뒤집어쓸 수 있어. 하지만……넌 이렇게까지 악랄하게 굴면 안 됐어. 저분은 정한이의 어머니잖아. 너……설마 아주머니가 깨어나서 네 말이 들통날까 봐 그래? 그래서 아주머니를 죽이려고 한 거야? 만약 오늘 내가 없었다면, 너는 또 누구를 불러서 이 죄명을 대신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거야?”
  • 예정한은 윤슬이 거의 질식할 때까지 윤슬의 목을 움켜쥐었다.
  • 그는 눈 밑이 새빨갛게 물든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윤슬! 우리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 가족의 목숨으로 갚게 될 줄 알아.”
  • 그는 윤슬을 뿌리치고 경비원에게 그녀를 제압하라고 한 뒤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정율을 부축했다.
  • 정율은 겨우 두 발짝 내딛고 기절했다.
  • 예정한은 그녀를 가로로 안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 윤슬은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앞으로 숙이고 이마를 바닥에 천천히 댔다.
  • 마음이……너무 아팠다.
  • 왜 나를 믿지 않아, 예정한, 넌 왜 나를 믿지 않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