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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아줌마가 곧 깨어나

  • 예정한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정율은 앞으로 나서며, 조금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슬아, 정한은 비록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나는 정한이 항상 너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그런데 너는 어떻게 정한에게 복수하려고 정한의 사촌 형과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너 이러는 거 근친……근친……”
  • 윤슬은 상처의 아픔을 참으며 호통을 쳤다.
  • “넌 입 닥쳐. 함부로 사실을 왜곡하지 마. 방금은 서보형이……”
  • 서보형은 앞으로 나서서 윤슬의 말을 끊고, 그녀의 얼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윤슬, 너 나한테 누명 씌우지 마. 난 네 몸에 상처가 있는 걸 보고 분명히 거절했어. 하지만 네가 나한테 정한이 정율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 죽더라도 나랑 만날 거라고 했잖아. 정한이 힘들 수 있도록. 정한아, 내 말을 믿어줘. 얘가 먼저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감히 네 여자를 건드릴 수 있었겠어? 난 그럴 용기가 없어.”
  • 예정한은 차갑게 대꾸했다.
  • “나를 힘들게 한다고? 허, 그럴 자격이 없어.”
  • 해명을 하려던 윤슬은 마음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듯했다.
  • 온몸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아픔도 그 말 한마디에 미치지 못했다.
  • 정율은 몸을 돌려 예정한의 손목을 잡고 연약한 얼굴로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 “정한아, 그런 말 하지마. 슬이도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다 내 탓이야. 내가 없었다면 슬이가 이렇게 너한테 화내지 않았을 거야,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정한아, 제발 부탁할게. 슬이를 원망하지 말아줘.”
  • 윤슬은 이 ‘명배우’들의 열연을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
  • “정율, 네 가식따위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져.”
  • 예정한은 자연스럽게 정율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윤슬을 사납게 흘겨보았다.
  • “가식으로 따지면 어디 너만하겠어? 말과 행동이 겉 다르고 속 다르니 괘씸하기 짝이 없어.”
  • 윤슬은 눈을 감았다. 얼마나 우스운가, 그녀는 그렇게 열심히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그 노력의 대가가 무엇인가?
  • 참 아이러니하네.
  • 정율은 예정한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야, 정한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슬이와 함께 자랐으니까 나는 슬이를 이해해. 슬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와 슬이 사이에는 분명 무슨 오해가 있는 거야.”
  • 그녀는 예정한 품에서 떠나 다급하게 윤슬 앞으로 왔다.
  • “슬아, 넌 항상 억울하다고 하지 않았어? 요 며칠 아주머니가 깨어나실 기미가 보이니, 아주머니가 깨어나서 그 당시 교통사고의 진상을 밝히기만 하면 이모는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너와 정한도 다시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난 너한테서 정한이를 빼앗지 않을 거야. 난 그냥 너희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야.”
  • 윤슬은 조금 뜻밖이었다. 시어머니가 깨어나신다고?
  • 한편, 곁에 있던 서보형이 빈정거렸다.
  • “봐봐, 다 똑같은 여자인데. 저기요 윤슬 아가씨, 사촌 언니한테 좀 배워. 네가 이렇게 악독하니 내가 다 정한이를 불쌍하게 여길 지경이야. 정한아, 이런 여자는 차라리……”
  • 예정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보형을 쏘아봤다.
  • 서보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급히 말을 바꾸었다.
  • “난 그냥 네 편을 들려고.”
  • 설령 자신이 윤슬과 원한이 있다 하더라도, 예정한은 서보형 같은 사람과 한패가 되는 건 극도로 싫었다.
  • “꺼져.”
  • 예정한의 싸늘하고 섬뜩한 눈빛을 본 서보형은 말도 끝내지 못하고 흠칫 놀라 재빨리 몸을 굽혀 자신이 바닥에 떨어뜨린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 정말 재수가 없네, 고기는 먹지 못하고 온몸에 비린내만 배다니.
  • 정율이 입을 열었다.
  • “정한아, 내가 따로 슬이랑 몇 마디 해도 될까? 나는 슬이를 좀 설득하고 싶어.”
  • “아니, 필요없어. 앞으로 이 여자의 생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잖아.”
  • 그는 말을 마치고 윤슬을 흘겨보고는 정율을 껴안고 밖으로 나갔다.
  • 윤슬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 엄마, 엄마의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엄마의 누명을 벗길게요.
  • 며칠 동안 예정한은 윤슬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오히려 정율이 종종 지금처럼 그녀를 자극하러 왔다.
  • 그녀는 자신의 욕설이 더 이상 윤슬에게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정율은 윤슬이 예정한에게 이미 체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다.
  • 그녀가 원하는 것은 윤슬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 여긴 아직 지옥이 아니었다.
  • “아 참, 알려줄 게 있는데, 방금 오면서 아주머니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았어.”
  • 윤슬의 잔잔했던 눈빛이 살짝 일렁였다.
  • 그 모습을 캐치한 정율은 못마땅하게 웃었다.
  • “너의 그 지긋지긋한 얼굴에 드디어 표정이 생겼네. 아줌마가 깨어나면 정말 너한테 도움이 되나 보네? 허, 근데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 것 같아?”
  • 윤슬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고개를 들었다.
  • “정율, 또 뭐 하려고?”
  • “난 너를 지옥으로 밀어넣을 거야. 그러니 당연히 너에게 유리한 사람이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거지.”
  • 정율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 “정한이 소식을 듣고 회사에서 오고 있으니까, 너랑 쓸데없는 말 할 시간이 없어. 나는 정한이 돌아오기 전에 너의 희망을 완전히 망쳐야 하거든.”
  • 정율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서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 안 돼, 시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