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내 아이 돌려줘, 돌려줘……예정한, 난 널 증오해, 널 증오한다고……악……”
정율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남자 도우미가 앞으로 나와 악견의 목줄을 잡아당겼다.
이때 윤슬은 이미 피범벅이 된 채 땅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반쯤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정율은 앞으로 나와 발을 들어 윤슬의 손을 밟았다.
“쯧쯧쯧, 이 피아노 치고 그림 그리는 손이 개에게 물려서 이 꼴이 되었으니 앞으로 못쓰게 되겠네, 허, 아까워라.”
정율은 몸을 웅크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한테 말하는 걸 까먹었네. 너의 그 박복한 딸은 정말 귀엽게 생겼더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너랑 똑같이 박복한 팔자로 태어났어. 정한이는 그런 더러운 종자따위 죽었으면 죽었지, 어차피 네가 낳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게다가 또 다른 사람을 찾아서 나에게 아이를 하나 입양해 줄 거래, 정한이는 나에게 정말 자상하다니까.”
윤슬은 비 온 뒤 물이 고인 땅바닥에 엎드려있었다. 추웠다. 하지만 마음이 더 시렸다.
정율은 일어나, 윤슬의 몸을 걷어찼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너에게 비밀을 하나 더 알려줘도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네. 정한은 나와 언니의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 윤동 그룹을 정씨네 그룹으로 바꿨어. 네 아버지는 망하고, 오빠는 실종되고, 동생은 여자의 노리개가 되었고, 네 엄마는 죽었어. 허, 자살했어. 건물에서 뛰어내렸지. 그때는 정말 끔찍했다니까……”
정율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면서 옆에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얘는 이제 이용 가치 없으니까 쫓아내.”
윤슬은 갑자기 미친 것처럼 온몸의 힘을 다해 정율의 발목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정율의 목덜미를 물어뜯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정율……”
“못 믿겠어?”
정율은 그녀를 걷어찼다.
“그럼 내가 직접 확인하게 해줄게.”
정율은 말을 마치고 거들먹거리며 떠났다.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누군가가 윤슬이 정신병원에 왔을 때 입었던 옷을 그녀에게 던져주고 그녀를 차에 태웠다.
윤가의 별장으로 돌아오니, 별장 안은 캄캄했고 대문에도 봉인이 붙어 있었다.
정율의 말은 사실이었다. 윤가가 사라졌다.
그녀는 차에 앉아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녀가 차에서 내릴 시간도 주지 않고 묘지로 데려갔다.
남자 도우미는 한밤중에 차마 윤슬을 데리고 산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둘은 윤슬을 차에서 끌어내린 후 차를 몰고 냉큼 자리를 떠났다.
윤슬은 예전에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유독 귀신만 무서워했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갑자기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아무리 악귀라도 예정한보다 더 악독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갈기갈기 찢긴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비 온 뒤의 산돌길을 반쯤 걷다가 어둠을 더듬어 윤가의 선산까지 왔다.
그곳에 솟아오른 새 무덤을 보자 그녀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묘비 앞에 엎드렸다.
달빛을 빌려 그녀는 묘비 위의 사진을 똑똑히 보았다.
눈물이 한순간에 뺨을 타고 쏟아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묘비를 끌어안더니 갑자기 머리를 비석에 힘껏 부딪쳤다. 이마에 맺힌 피가 사진 속 어머니의 다정한 얼굴 옆으로 번졌다.
“잘못했어요, 엄마……내가 잘못했어요……”
다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녀는 예정한을 건드리지도, 좋아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날이 밝자 어머니의 묘 앞에서 밤새 무릎을 꿇은 윤슬이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손을 뻗어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눈물이 없었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 제가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 복수가 끝나면 엄마랑 아기에게 가서 참회할 거니까 기다려줘요.”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외롭고 가냘픈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정한은 간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그는 서재에 있는 프로젝터를 부수고, 윤슬이 몇 년 동안 그에게 준 모든 선물을 망가뜨렸다.
정오에야 그는 마침내 예원을 떠났다.
그러나 차가 문을 나서는 순간, 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예정한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자 마침 차 앞을 가로막은 초라한 모습의 윤슬이 보였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그 사람들에게 그녀의 산후조리도 맡겼는데, 그녀는 왜 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단 말인가.
윤슬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치 산 채로 가죽을 벗기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슬의 눈빛을 보자 예정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그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는 냉담하게 차 문을 열어 차에서 내리고, 성큼성큼 윤슬에게 다가가 윤슬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나? 누가 감히 너에게 여기에 다시 올 낯짝을 줬지?”
윤슬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눈물 한 방울 흘리려 하지 않았다.
“내가 눈이 멀어서 너를 사랑하게 된 거야. 너, 예정한은 자격이 없어.”
예정한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뭐라고?”
윤슬의 얼굴에 한 가닥의 절망이 피어올랐다.
“잘못이 나로 인한 것이라면 내가 직접 끝내야지.”
“예정한, 죽어.”
그녀가 손을 들자, 줄곧 소매 밑에 감춰 두었던 칼이 드러났다. 그녀는 칼을 들어 예정한의 심장을 매섭게 찔렀고 검붉은 피가 순식간에 예정한의 어깨 너머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