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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너에게 목숨을 줄게

  • 예정한은 피로 물든 제 옷을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윤슬을 바라보았다.
  • 이 여자는 진심으로 그에게 살의를 품었다.
  • 만약 그가 몸을 옆으로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 칼은 그의 심장을 찔렀을 것이다.
  •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는 거지?
  • 차 안에 있던 기사는 상황을 보고 급히 차에서 내려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 그러나 예정한이 차갑게 말했다.
  • “꺼져.”
  • 기사는 그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고 급히 한쪽으로 비켜서서 멀리서 지켜보았다.
  • 예정한은 칼을 잡은 윤슬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윤슬을 차 본넷에 눌렀다.
  • 그는 칼날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 “윤슬, 너 정말 미쳤어?”
  • “나 미쳤어. 내가 싫으면 나한테 따졌어야지, 왜 윤가를 망쳐? 왜 우리 엄마를 죽게 해? 왜 내 아이의 체면을 지켜주지 않았어? 예정한, 너 이러고도 양심 안 찔려?”
  • “양심?”
  • 예정한은 차갑게 비웃었다.
  • “너희 윤 씨 가문이 나한테 양심을 말할 자격이 있나?”
  • 그는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겨, 비꼬듯 말했다.
  • “윤슬, 네 엄마도 너처럼 비열해. 네 엄마가 우리 아버지를 꼬시는 바람에 우리 엄마는 교통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됐어. 그러니까 네 엄마는 죽어도 싸.”
  • 짝.
  • 예정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 윤슬은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남아있던 힘을 모조리 써버렸다.
  • 그녀는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 “아니.”
  • 예정한은 윤슬의 목을 졸랐다. 그의 눈빛에 지독한 악기가 짙게 번득였다.
  • “이 천박한 여자야, 다 죽었어야 해. 너도 마찬가지야. 그날 난 하마터면 불난 곳에서 죽을 뻔했는데, 정율이 목숨을 걸고 나를 구했어. 근데 넌? 넌 다른 남자랑 뒹굴고 있었지.”
  • 윤슬은 분노에 차 고함을 질렀다.
  • “아니야, 난 그러지 않았어. 그건 다 정율이……”
  • 예정한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한쪽으로 내쳤다. 그는 전혀 그녀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 “닥쳐, 다 네가 악랄한 탓이야. 설령 정율이 너를 망가뜨리려고 해도 다 네가 자초한 거야.”
  • 윤슬은 가뜩이나 허약한 몸으로 예원의 담장까지 들이받으니 개에게 물렸던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옷소매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 그녀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젠 예정한이 그녀를 이렇게 모욕해도 그녀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 처음에 정안과 정율은 윤가에 맡겨졌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한 무리의 짐승들에 의해 짓밟혔고 정안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정율도 자궁을 다쳐 평생 불임으로 살게 되었다.
  • 예정한은 그 사건을 끈질기게 조사했고, 결국 그녀가 오명을 쓰게 됐다.
  • 그때도 그는 지금처럼 그녀의 목을 조르고 따졌다.
  • “너는 정안이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정안을 해쳤어?”
  • 아무리 설명해도 예정한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 그는 그녀가 질투심 때문에 악행을 저질렀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 그 후, 예정한은 또 형과 동생의 죽음에 관해 조사하다 뜻밖에도 윤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윤슬은 예정한을 바라보며 허허 가볍게 웃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는 애절하고 절망적이었다.
  • 그녀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숙인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 “그래, 내 자업자득이야, 널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어, 감히 네 침대에 올라가지도 말았어야 했고 너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
  • 이성을 잃은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자, 예정한은 문득 몇 년 전, 이 황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의 얼굴에 나부끼던 소탈한 웃음이 떠올랐다……
  • 그때, 그녀는 만인이 주목하는 높은 곳에 서서, 모든 사람을 향해 큰소리로 선언했다.
  • “나 윤슬은 평생 예정한이랑만 결혼할 거야.”
  • 그때의 그녀는 얼굴에 온통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 하지만 지금은……
  • 그는 심지어 윤슬이 얼마나 오랫동안 진심 어린 미소를 보이지 않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 윤슬은 불현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온통 절망뿐이었다.
  • “예정한,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내가 너에게 목숨을 줄 테니, 너는 나의 엄마와 딸을 돌려줄래?”
  • 그녀는 그 말과 함께 손을 들어 예정한의 어깨에 꽂혀있던 칼을 뽑아 들었고——
  • 예정한은 어깨에 통증을 느낌과 동시에 윤슬의 동작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 그는 두 눈으로 그 칼이 윤슬의 아랫배에 푹 꽂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아랫배는 즉시 검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 그는 윤슬이 비틀거리며 몸을 뒤로 젖히자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품에 꼭 안았고 두 사람은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