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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 여자 엄청 더럽다던데

  • 예정한은 수술실 밖에 앉아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조금 전 윤슬의 팔과 다리에 난 찢어진 상처자국을 보았을 때 그는 마음이 난도질을 당한 것만 같았다.
  • 뒤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정율이 예정한 곁으로 왔다.
  • “정한아, 슬이는 괜찮아? 걔는…… 어머, 정한아, 너 어깨 왜 이래?”
  • 정율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예정한의 상처를 살피려고 했다.
  • 그러나 예정한은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윤슬에게 아이에 대해 뭐라고 말했어?”
  • “안 그래도 막 너에게 말하려던 참이었어. 어젯밤에 사람을 시켜 죽은 아이를 슬이에게 보내주라고 했는데, 내가 오늘 아침에 슬이를 보러 갔더니 슬이가 글쎄 아이를……그 아이를……”
  • 예정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 “뭔데?”
  • “네가 싫다고 버렸으면 자기도 싫다고 그 아이를 뒷마당에서 경비원이 기르던 개에게 버렸대.”
  • 예정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 정율은 다정하게 예정한의 팔을 잡았다.
  • “정한아, 화내지 마. 슬이도 그때 아마 화가 나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경비원이 슬이가 아이를 버린 후 바로 후회하고 다시 돌아가서 개한테서 아이를 뺏으려고 하다가 개한테 물렸다고 하던데, 상처가 꽤 심각하대. 괜찮은지 모르겠네.”
  • 예정한은 여기까지 듣고는 벌떡 일어나 떠나려 했다.
  • 정율은 몸을 일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정한아, 어디 가려고? 슬이는……”
  • “오늘부터 그 여자에 관한 일은 나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 나랑 상관없으니까.”
  • 그는 말을 마치고 정율을 차갑게 힐끗 쳐다보고 떠났다.
  • 예정한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정율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렸다.
  • 그녀는 예정한 곁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했지만, 그에게서 단 한 번도 따뜻한 눈빛을 받아본 적 없었다.
  • 그럼 윤슬은 또 무슨 자격으로 누려?
  • 그녀는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냉혹하게 분부했다.
  • “큰고모한테 연락해.”
  • “네.”
  • 수술실 문을 돌아보는 정율의 눈빛에는 온통 사악함뿐이었다.
  • “윤슬, 지옥이 어떤 맛인지 네가 가서 직접 느껴봐.”
  • 윤슬이 깨어났을 때는 병실이었다.
  • 아랫배에서 전해지는 고통은 그녀가 죽지 않았음을 말해줬다.
  •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불현듯 큰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병상에서 홱 잡아당겼다.
  •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윤슬은 눈썹을 찡그렸다. 예정한의 큰고모인 예향이었다.
  • “이 천한 년아, 예가에서 오랫동안 거들먹거리더니 제 신분을 완전히 잊은 모양이구나. 감히 내 조카를 칼로 찍어 죽이려 하다니, 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니?”
  • 윤슬은 흉하게 일그러진 예향의 얼굴을 보며 그저 웃기다는 생각만 들었다. 예정한에게 준 피해로 말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예향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인물인데, 근데 그런 예향이 지금 와서 그녀를 추궁한다고?
  • 허, 예향은 분명히 개인적인 원한을 풀려고 하는 거였다.
  • 예향은 윤슬의 차가운 시선을 보고,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한 대 때렸다.
  • “이년이 아직도 감히 나를 이렇게 쳐다봐?”
  • “엄마, 이런 여자한테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해? 내가 말했잖아, 그 여자를 나한테 맡기라고, 난 걔가 죽는 것만 못하게 할 방법이 많다니까.”
  • 뒤에서 들려오는 건들거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예향의 아들인 서보형일 것이다.
  • 그는 키가 크고 몸이 약간 뚱뚱하여 건장해 보였다.
  • 방자한 눈빛으로 윤슬의 몸을 훑어보며 입가에 이상한 웃음을 띠고 있는 그는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찌질한 변태 같았다.
  • 이 황성에서 서보형은 워낙 방탕하기로 유명한데, 그의 손에 넘어가서 좋을 것 하나 없었다.
  • 윤슬은 고통을 참으며,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나랑 예정한 사이의 일은 당신들이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난 예정한을 만나야겠어요.”
  • 예향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통쳤다.
  • “정한이를 만나겠다고? 허, 꿈도 꾸지 마. 우리 정한이가 지금 널 얼마나 증오하는데. 정한이가 앞으로 너의 생사는 자기랑 상관없다고 그러던데? 보형아, 이 여자는 너한테 맡길게, 너 마음대로 갖고 놀아.”
  • 서보형이 앞으로 나섰다.
  • 예향은 몸을 돌려 나가려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또 당부했다.
  • “안전조치 잘하고. 이 여자 엄청 더럽다고 하던데.”
  • 예향이 문을 열고 나간 후, 서보형은 병상으로 걸어가면서 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 “가장 아름다운 미녀……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정말 소원성취를 할 줄이야.”
  • 윤슬은 무서워서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배의 상처로 인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꼈다.
  • “서……서보형, 너 함부로 굴지 마. 난 아직 예정한 아내야.”
  • “그게 어때서?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예정한의 여자인데. 허, 너 비실비실한 거 보니까 오히려 더 재밌네.”
  • 윤슬은 힘겹게 손을 들어 벨을 눌러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 서보형은 빠르게 눈치채고 그녀의 손을 덥석 눌렀다.
  • 그는 잽싸게 침대에 뛰어올라 그녀를 제압했다.
  • “지금은 하느님이 와도 도망갈 수 없어.”
  • 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여 윤슬의 입술에 키스했다.
  • 윤슬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힘겹게 피하며 애써 외쳤다.
  • “살려줘…… 싫어, 살려주세요.”
  • 서보형은 참을성이 있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손을 들어 윤슬의 뺨을 때린 후,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환자복을 벗겼다.
  • 그의 입술이 다시 한번 침범하려 할 때, 갑자기 누군가가 밖에서 병실 문을 밀어 열었다.
  • 서보형은 고개를 돌리며 난폭하게 소리쳤다.
  • “x발, 누구……정……정한? 네가 여긴 웬일이야.”
  • 환자복을 입은 예정한은 서보형에게서 윤슬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얼굴에 악기가 가득했다.
  • 서보형은 그의 표정에 반응하고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 “정한아, 오해하지 마, 이 여자가 나를 여기로 부른 거야. 난 얘가 많이 아픈 것 같아서 거절했는데, 얘가……먼저 옷을 벗고 나를 꼬시는 바람에 나도 어쩔 수 없이……”
  • 윤슬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예정한의 등 뒤로 정율이 불쑥 나타났고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윤슬을 바라봤다.
  • “어머, 슬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너는 어떻게 이런 때에도 정한을 배신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