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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에서 깨어나면

악몽에서 깨어나면

오소영

Last update: 2021-11-04

제1화 네가 더러워지면 같이 죽어야지

  • 인생에서 가장 갑작스러운 절망이 뭘까?
  • 바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과 도망치려한 순간,
  • 돌연 다른 남자에게 제물처럼 바쳐진 개같은 상황이다.
  • 그들이 원하는 건 고작 나의 피한방울,
  • 하지만 난 그것 때문에 남은 생을 지옥에서 보내야 했다.
  • ------------------------------------------
  • 고슬기가 집에 갇혔다.
  • 3일 전, 아버지는 계모가 독을 탄 음식을 먹고 갑자기 쓰러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 아버지가 그녀의 손을 꽉 쥐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당부했다.
  • “슬기야, 동생을 데리고 유희철을 찾아가렴, 풍성을 어서 떠나!”
  • “아빠가 예전에는 뭘 몰라서 너랑 유희철의 관계를 반대했어. 그런데 그 아이의 겉모습만 봐도 귀티가 흐르는 걸로 보아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해도 바닥에서 길 운명이 아니야.”
  • 그날 밤, 고슬기는 아버지에게 눈물의 작별 인사를 한 후, 남동생과 함께 도망을 갔다.
  • 하지만...
  • 20분 뒤, 그들은 유희철을 찾기 300미터 전 지점에서 결국 다시 붙잡혔다.
  • 그녀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방에 갇혔고, 물과 음식을 먹지도 못했으며, 외부와 단절되었다.
  • 그렇게 3일 후에야 그녀는 몸집이 큰 두 성인 남자에게 끌려 나갔고, 반짝반짝 빛나는 거실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 계모 임소연은 앞에 서서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 “소중한 딸아, 내가 너무 매섭다고 탓하지 마. 탓하려면 너의 피가 너무 값진 걸 탓해!”
  • “누군가 전국의 피 보관소에서 너를 찾았는데, 네 피에 희귀 유전자가 있어서 어느 재벌집 도련님을 구할 수 있다지 뭐니. 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너의 피를 원해, 한 번에 1억. 이렇게 돈을 잘 버는데 너를 그냥 보내기에는 내 손해가 너무 크잖니!”
  • 고슬기는 거의 탈수 직전이었다.
  • 그녀는 바닥에 누워 충혈된 눈으로 임소연을 쳐다봤고, 입술을 떨며 힘겹게 말했다.
  • “임소연, 당신은 벌써 우리 집안을 다 가졌잖아요. 우리 아빠랑 동생은 다들 놔줘요.”
  • “나는 여기 얼마든지 있을게요. 내 피, 얼마나 가져가든 상관없어요...”
  • 그녀가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녀의 가족만 살 수 있다면 괜찮았다.
  • 그녀는 상대방이 자신의 피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그녀가 임소연에게 아무 가치도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 그리고 그녀는 유희철 또한 그녀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믿고 있었다.
  • 이 말을 듣자 임소연은 미간을 찌푸렸고, 바보를 보는 것처럼 웃었다.
  • “고슬기, 너도 참 순진하다. 설마 이 피를 주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 고슬기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매섭게 바라봤다.
  • “무슨 말이에요?”
  • 임소연은 그녀의 머리채를 꽉 쥐었고, 귀에 대고 비웃었다.
  • “네 몸에 흐르고 있는 피보다 네 깨끗한 몸에 있는 처녀피가 더 효과가 좋아. 그들은 너의 피뿐만이 아니라 너의 처녀 피, 처녀의 몸을 원한다고.”
  • 순간 고슬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싫어요!”
  •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고, 임소연을 밀쳐내고 미친 것처럼 문 쪽으로 기어갔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유희철이에요, 내 순결한 몸을 그에게 줘야해요, 안 돼요! 안 돼요!”
  • 임소연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고, 몇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고슬기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재빨리 핸드폰을 눌렀다.
  • 그러자 유희철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슬기야, 같이 풍성을 떠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어디 있는 거야?”
  • “벌써 이틀째야, 오늘은 너의 집으로 찾아갔어. 그 사람들이 네가 어떤 남자랑 떠났다고 하는데, 나는 못 믿어. 슬기야, 착하지, 오기만 하면 너에게 내 진짜 신분과 내 비밀을 알려줄게.”
  • “고슬기.”
  • 남자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 “안 오는 거지, 그렇지? 셋째 날이야, 이건 내가 주는 마지막 시간이야. 네가 오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게. 만약에 오지 않으면... 죽었다고 생각할게.”
  • “그거 알아? 내가 너에게 말을 남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미 나와 잘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
  • 순간 고슬기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희철아...”
  • 그녀는 기어가서 핸드폰을 뺏어오고 싶었지만, 곧바로 임소연에게 머리채 를 잡혀 다시 끌려갔다.
  • 여자는 음흉하고 매서운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 “그거 알아? 저놈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내가 사람을 심어놨어.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네가 가장 사랑하는 그 유희철을 차 몇 대로 깔아뭉갤 수 있어. 선택해, 유희철이 무사히 그곳을 떠나게 할래, 아니면 남아서 그놈 두 눈으로 직접 네년이 더럽혀지는 걸 보고 같이 죽게 할래?”
  • 고슬기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것처럼 순식간에 힘이 풀렸다.
  • 아버지.
  • 남동생.
  •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유희철...
  • 계모는 핸드폰을 건네주는 김에 그녀의 뺨을 두세 번 툭툭 건드리고는 멀지 않은 소파로 가 앉았다.
  •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생각해.”
  • 기막힌 타이밍에 손바닥에서 핸드폰의 진동이 매섭게 울렸다.
  • 한번, 또 한번.
  • 그녀는 받지 않았다.
  • 하지만 마치 그녀가 사라진 3일 동안 남자의 끈질긴 의지를 반영하듯 진동은 계속 울렸다.
  • 고슬기의 눈이 빨개졌고,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 그녀는 한참 후에야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슬기야, 드디어 전화를 받았네!”
  • 유희철의 목소리에선 실망 끝에 보이는 기쁨이 잔뜩 묻어있었다.
  • “올 줄 알았어!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줘, 내가 당장...”
  • “알려주면 뭘 어떡할 건데?”
  • 그녀의 다정했던 목소리가 갑자기 심장을 찌르는 칼로 변했다.
  • 고슬기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고, 목이 메인 목소리를 죽도록 누르고 있었다.
  • “유희철, 내가 진짜 너랑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어? 너랑 헤어지기 전에 가벼운 농담한 것뿐이야. 나는 너랑 달라, 난 재벌집 딸이라고, 내가 너같은 일반인을 좋아할 줄 알았어? 웃기지 마!”
  • 한순간의 침묵은 그가 당황하였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 “뭐라고 했어? 고슬기, 다시 말해봐!”
  • 고슬기는 이를 악물며 한 글자씩 끊어서 말했다.
  • “그냥 너랑 잠깐 논 것뿐이라고. 이제는 질렸어. 우리는 끝났어!”
  • 쾅쾅--
  •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번개가 정원의 오래된 나무에 내리쳤다.
  • 나무는 “쩍”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으로 쪼개져 땅으로 떨어졌다.
  • 바람과 빗소리가 뒤섞이는 한편, 전화기에서는 외침이 들려왔다.
  • “고슬기, 너 후회할 거야!”
  • 남자는 찢기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고, 괴로운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낯선 남자들의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빨리, 이 사람이 피를 토하고 있어!”
  • “희철아...”
  • 고슬기는 순간 당황해서 이름을 외칠 뻔했다.
  • “내 이름 부르지 마!”
  • 유희철은 낮은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외쳐댔다.
  • “고슬기, 너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고, 내 감정을 가지고 논 유일한 여자이기도 해. 나는 풍성을 떠날 거야.”
  • “그런데 나는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왜냐면 내가 꼭 다시 돌아와서 너랑 같이 놀아줄 테니까!”
  • 뚝-
  • 고슬기는 핸드폰을 든 채 바닥에 쓰러졌고, 스피커폰에서 흘러나오는 신호음을 들으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 희철아, 미안해, 미안해...
  • 임소연의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 “잘했어! 네가 말귀를 알아듣는 년이라서 다행이야.”
  • 그리고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옆에서 몇 명이 바로 달려왔다.
  • “데리고 가서 준비해, 조용히 좀 하라고 하고, 우리 물주님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 “상대방이 동의만 한다면 우리는 오늘 저녁에 돈을 크게 벌 수 있어. 하하하...”
  • 임소연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 고슬기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으며, 두 눈은 마치 죽은 것처럼 생기가 없었다.
  • 남자 몇 명이 거칠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로 위로 끌고 갔고, 그녀의 턱을 잡아당겨 입을 억지로 벌리더니 정체불명의 알약을 거칠게 집어넣었다.
  •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몸에 힘이 빠졌고, 뜨거운 오븐속에 있는 것처럼 온몸이 불타올랐다.
  • 그녀는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그녀는 결국 절망했다.
  • 창밖에 바람이 불었고, 비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차 경적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덩치 큰 남자들이 별장으로 들어왔다.
  • 앞장선 훤칠한 남자가 비바람이 섞인 한기를 몰고 들어왔고, 그의 한쪽 얼굴은 강인하고 날카로운 반면다른 쪽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무서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 물주가 도착한 걸 보자 임소연의 부하가 바로 반기러 갔다.
  • “사람은 준비해놨습니다, 안에 있어요.”
  • 그는 말을 하며 머리를 들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그 남자를 보자 비명을 지르더니, 귀신을 본 것처럼 뒷걸음질하며 얘기했다.
  • “얼...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