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전, 아버지는 계모가 독을 탄 음식을 먹고 갑자기 쓰러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 아버지가 그녀의 손을 꽉 쥐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당부했다.
“슬기야, 동생을 데리고 유희철을 찾아가렴, 풍성을 어서 떠나!”
“아빠가 예전에는 뭘 몰라서 너랑 유희철의 관계를 반대했어. 그런데 그 아이의 겉모습만 봐도 귀티가 흐르는 걸로 보아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해도 바닥에서 길 운명이 아니야.”
그날 밤, 고슬기는 아버지에게 눈물의 작별 인사를 한 후, 남동생과 함께 도망을 갔다.
하지만...
20분 뒤, 그들은 유희철을 찾기 300미터 전 지점에서 결국 다시 붙잡혔다.
그녀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방에 갇혔고, 물과 음식을 먹지도 못했으며, 외부와 단절되었다.
그렇게 3일 후에야 그녀는 몸집이 큰 두 성인 남자에게 끌려 나갔고, 반짝반짝 빛나는 거실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계모 임소연은 앞에 서서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소중한 딸아, 내가 너무 매섭다고 탓하지 마. 탓하려면 너의 피가 너무 값진 걸 탓해!”
“누군가 전국의 피 보관소에서 너를 찾았는데, 네 피에 희귀 유전자가 있어서 어느 재벌집 도련님을 구할 수 있다지 뭐니. 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너의 피를 원해, 한 번에 1억. 이렇게 돈을 잘 버는데 너를 그냥 보내기에는 내 손해가 너무 크잖니!”
고슬기는 거의 탈수 직전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누워 충혈된 눈으로 임소연을 쳐다봤고, 입술을 떨며 힘겹게 말했다.
“임소연, 당신은 벌써 우리 집안을 다 가졌잖아요. 우리 아빠랑 동생은 다들 놔줘요.”
“나는 여기 얼마든지 있을게요. 내 피, 얼마나 가져가든 상관없어요...”
그녀가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녀의 가족만 살 수 있다면 괜찮았다.
그녀는 상대방이 자신의 피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그녀가 임소연에게 아무 가치도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희철 또한 그녀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 말을 듣자 임소연은 미간을 찌푸렸고, 바보를 보는 것처럼 웃었다.
“고슬기, 너도 참 순진하다. 설마 이 피를 주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고슬기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매섭게 바라봤다.
“무슨 말이에요?”
임소연은 그녀의 머리채를 꽉 쥐었고, 귀에 대고 비웃었다.
“네 몸에 흐르고 있는 피보다 네 깨끗한 몸에 있는 처녀피가 더 효과가 좋아. 그들은 너의 피뿐만이 아니라 너의 처녀 피, 처녀의 몸을 원한다고.”
순간 고슬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싫어요!”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고, 임소연을 밀쳐내고 미친 것처럼 문 쪽으로 기어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유희철이에요, 내 순결한 몸을 그에게 줘야해요, 안 돼요! 안 돼요!”
임소연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고, 몇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고슬기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재빨리 핸드폰을 눌렀다.
그러자 유희철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기야, 같이 풍성을 떠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어디 있는 거야?”
“벌써 이틀째야, 오늘은 너의 집으로 찾아갔어. 그 사람들이 네가 어떤 남자랑 떠났다고 하는데, 나는 못 믿어. 슬기야, 착하지, 오기만 하면 너에게 내 진짜 신분과 내 비밀을 알려줄게.”
“고슬기.”
남자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안 오는 거지, 그렇지? 셋째 날이야, 이건 내가 주는 마지막 시간이야. 네가 오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게. 만약에 오지 않으면... 죽었다고 생각할게.”
“그거 알아? 내가 너에게 말을 남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미 나와 잘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
순간 고슬기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희철아...”
그녀는 기어가서 핸드폰을 뺏어오고 싶었지만, 곧바로 임소연에게 머리채 를 잡혀 다시 끌려갔다.
여자는 음흉하고 매서운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그거 알아? 저놈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내가 사람을 심어놨어.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네가 가장 사랑하는 그 유희철을 차 몇 대로 깔아뭉갤 수 있어. 선택해, 유희철이 무사히 그곳을 떠나게 할래, 아니면 남아서 그놈 두 눈으로 직접 네년이 더럽혀지는 걸 보고 같이 죽게 할래?”
고슬기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것처럼 순식간에 힘이 풀렸다.
아버지.
남동생.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유희철...
계모는 핸드폰을 건네주는 김에 그녀의 뺨을 두세 번 툭툭 건드리고는 멀지 않은 소파로 가 앉았다.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생각해.”
기막힌 타이밍에 손바닥에서 핸드폰의 진동이 매섭게 울렸다.
한번, 또 한번.
그녀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그녀가 사라진 3일 동안 남자의 끈질긴 의지를 반영하듯 진동은 계속 울렸다.
고슬기의 눈이 빨개졌고,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슬기야, 드디어 전화를 받았네!”
유희철의 목소리에선 실망 끝에 보이는 기쁨이 잔뜩 묻어있었다.
“올 줄 알았어!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줘, 내가 당장...”
“알려주면 뭘 어떡할 건데?”
그녀의 다정했던 목소리가 갑자기 심장을 찌르는 칼로 변했다.
고슬기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고, 목이 메인 목소리를 죽도록 누르고 있었다.
“유희철, 내가 진짜 너랑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어? 너랑 헤어지기 전에 가벼운 농담한 것뿐이야. 나는 너랑 달라, 난 재벌집 딸이라고, 내가 너같은 일반인을 좋아할 줄 알았어? 웃기지 마!”
한순간의 침묵은 그가 당황하였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뭐라고 했어? 고슬기, 다시 말해봐!”
고슬기는 이를 악물며 한 글자씩 끊어서 말했다.
“그냥 너랑 잠깐 논 것뿐이라고. 이제는 질렸어. 우리는 끝났어!”
쾅쾅--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번개가 정원의 오래된 나무에 내리쳤다.
나무는 “쩍”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으로 쪼개져 땅으로 떨어졌다.
바람과 빗소리가 뒤섞이는 한편, 전화기에서는 외침이 들려왔다.
“고슬기, 너 후회할 거야!”
남자는 찢기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고, 괴로운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낯선 남자들의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이 사람이 피를 토하고 있어!”
“희철아...”
고슬기는 순간 당황해서 이름을 외칠 뻔했다.
“내 이름 부르지 마!”
유희철은 낮은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외쳐댔다.
“고슬기, 너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고, 내 감정을 가지고 논 유일한 여자이기도 해. 나는 풍성을 떠날 거야.”
“그런데 나는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왜냐면 내가 꼭 다시 돌아와서 너랑 같이 놀아줄 테니까!”
뚝-
고슬기는 핸드폰을 든 채 바닥에 쓰러졌고, 스피커폰에서 흘러나오는 신호음을 들으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희철아, 미안해, 미안해...
임소연의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잘했어! 네가 말귀를 알아듣는 년이라서 다행이야.”
그리고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옆에서 몇 명이 바로 달려왔다.
“데리고 가서 준비해, 조용히 좀 하라고 하고, 우리 물주님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상대방이 동의만 한다면 우리는 오늘 저녁에 돈을 크게 벌 수 있어. 하하하...”
임소연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고슬기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으며, 두 눈은 마치 죽은 것처럼 생기가 없었다.
남자 몇 명이 거칠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로 위로 끌고 갔고, 그녀의 턱을 잡아당겨 입을 억지로 벌리더니 정체불명의 알약을 거칠게 집어넣었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몸에 힘이 빠졌고, 뜨거운 오븐속에 있는 것처럼 온몸이 불타올랐다.
그녀는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절망했다.
창밖에 바람이 불었고, 비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차 경적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덩치 큰 남자들이 별장으로 들어왔다.
앞장선 훤칠한 남자가 비바람이 섞인 한기를 몰고 들어왔고, 그의 한쪽 얼굴은 강인하고 날카로운 반면다른 쪽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무서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물주가 도착한 걸 보자 임소연의 부하가 바로 반기러 갔다.
“사람은 준비해놨습니다, 안에 있어요.”
그는 말을 하며 머리를 들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그 남자를 보자 비명을 지르더니, 귀신을 본 것처럼 뒷걸음질하며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