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익숙하고도 낯선 아픔 때문에 고슬기는 정신을 차리고 저항하려 했고, 몸부림을 치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손과 발이 묶여져 있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암흑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고슬기는 귓가에 울리는 잔잔한 비소리와 뼛속까지 느껴진 추위 때문에 깨어났다.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자 순간 수많은 플래시를 마주했고, 놀라움 그리고 경멸의 감정이 담긴 수많은 눈빛들이 쏟아졌다.
그녀는 고가네 본가의 담장 쪽에 기대고 있었고, 몸이 비로 흠뻑 젖어 흐트러진 옷 사이로 유희철의 거친 몸짓으로 인해 생긴 크고 작은 흔적들이 불빛 아래서 훨씬 선명히 보였다.
고슬기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고, 당황스러운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고가네 본가였다!
그녀가 왜 여기 있는 걸까?
그리고 마침 이때, 임소연이 이곳에서 인맥을 쌓기 위한 파티를 진행하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아직 파티 현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우산을 들어 고슬기에게 손가락질했으며, 이내 수군댔다.
“저기 있는 저 사람 고가네 장녀 고슬기 아니야? 5년 동안 사라졌다더니 어떻게 다시 돌아온 거지?”
“왜 돌아왔겠어? 딱 봐도 벌받은 거지! 그때 고슬기가 웬 가난뱅이를 끈질기게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했잖아. 그런데 나중에는 갖고 놀다가 질려서 그 사람을 차버렸대. 저 여자도 밖에서 다른 사람이 갖고 놀다가 버린 거겠지!”
“몸에 있는 저 흔적들을 봐, 격렬하게도 했네.”
사람들의 유언비어와 이상한 시선을 보자 고슬기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를 악물며 담장을 짚으며 가까스로 일어났다.
“고슬기!”
정원 대문 뒤에서 갑자기 임소연의 급한 외침이 들렸다.
그리고 대문이 열렸고, 임소연 뒤에 있는 하인들이 우산을 들고 나왔다.
임소연은 그녀 앞으로 걸어 가더니 바로 손을 들어 뺨을 때렸다.
찰싹.
“돌아올 낯짝이 있어?”
고슬기의 얼굴이 한쪽으로 돌려졌는데, 그녀는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임소연은 플래시 밑에서 분노와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고슬기를 손가락질하며 꾸짖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한사코 말렸어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친구를 버리더니, 아주 바람기가 몸에 베어 있었지. 가족들의 간섭이 싫다고 다른 남자와 떠나더니 5년 동안 보이지도 않았지.”
“너희 아빠는 너 때문에 화가 나 뇌출혈에 걸렸어. 내가 밤을 새면서 외국 병원에 데려다 놓지 않았으면 목숨도 건지지 못했을 거야. 그동안 네 남동생이 외국에서 유학하면서 아빠 곁에 있어주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고생하며 우리 집안의 기둥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런데 너는 다른 남자랑 다 놀고, 그 사람한테 버려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생각이 났니? 넌 이 집안의 수치야!”
말을 끝낸 후 그녀는 플래시가 터지고 사람들이 수근대는 틈을 타 고슬기의 멱살을 잡았고, 그녀에 귓가에 대고 말했다.
“영악한 계집애, 나한테 협조하지 않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겠지?”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렸고, 구경꾼이 더 몰려 플래시가 더욱 눈부셨다. 모든 사람이 조용히 고슬기를 쳐다봤고, 그녀가 대답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임소연이 말한 모든 죄를 인정할까? 아니면 다른 속 사정이 있는 걸까?
아무도 알지 못했고,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건 현장에 있는 어느 카메라로 유희철에게 생중계되었다.
이때 그는 금융 타워의 제일 높은 층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을 어두운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으며, 그 역시 고슬기가 입을 열기 기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