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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100원으로 인생을 사다

  • 매서운 바람이 귀가에 스쳐 지나갔다.
  • 유희철이 갑자기 손을 뻗더니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고, 이유를 얘기하지도 않고 문 쪽으로 끌고 갔다.
  • 고슬기가 고개를 돌리자 유희철의 서늘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 “고슬기, 넌 정말 천해! 무릎 한번 꿇었다고 용서해주길 바라다니, 너무 순진하네! 네 집안도 너도 놓아주지 않을 거야. 우리의 게임은 이제야 시작이니까. 그러니 꺼져!”
  • 그녀는 복도로 내팽개쳐졌다.
  • 이내 그녀의 몸에 던져진 건 100원짜리 동전이었다.
  • “그리고 이거.”
  • 유희철이 차갑게 문 쪽에 서 있었고, 입가의 차가움은 어느새 조롱으로 바꼈다.
  • “그때 네가 바로 이 100원짜리 동전으로 내 감정을 매수했지. 기억나?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한 것 빼고는 역겨움 밖에 없어.”
  • 고슬기는 고개를 들어 동전을 쳐다봤다. 순간 엎드려 동전을 손에 꽉 쥐었다.
  • 이건 당시 그들 사랑의 징표였다.
  • 그때는 그녀가 유희철에게 끈질기게 대시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특별히 둘만을 위한 100원짜리 동전을 만든 것이었다.
  • “유희철, 잘 들어. 나는 이 100원으로 네 인생을 살 거야, 동의해?”
  • “당연히 동의하지. 그런데 네 마음이 변하면 어떡해?”
  • “그럼 나는 죽을 때까지 불행해야지.”
  • 하지만 고슬기는 이걸 이렇게 빨리 겪게 될 줄은 몰랐다.
  • 그녀는 조심스럽게 동전 테두리에 있는 이름 이니셜을 쓰다듬었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희철을 보며 살며시 물었다.
  • “이 모든게 다 인과응보겠지. 그런데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진짜 만족할지는 모르겠네?”
  • 그녀는 말을 끝낸 후 벽을 짚고 일어나 절뚝거리며 걸어나갔다.
  • 그 뒤에 있는 유희철은 안색이 어두웠고, 이마에 있는 핏줄은 널뛰고 있었다.
  • 옷이 단정하지 못한 채 초라하고 비천한 고슬기를 보고 그는 마음이 편해야 했다.
  •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짜증과 분노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 뒤돌아 떠나려고 하는 찰나, 멀지 않은 곳에서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시빈이 한손에는 우산, 다른 손에는 약상자를 들고 황급히 걸어왔다.
  • 그리고 고슬기와 스쳐 지나갈 때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 “도련님, 피를 가져왔어요.”
  • 시빈은 유희철의 곁으로 가 고개를 들며 말했는데, 유희철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 “도련님, 얼굴이?”
  • 시빈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자 유희철은 그를 쳐다보았다.
  • “왜?”
  • 시빈은 입이 떡 벌어졌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듯이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유희철에게 건네 주었다.
  • “도련님, 직접 보세요.”
  • 유희철이 핸드폰을 건네받고 봤더니 살짝 움찔했다.
  • 무섭고 언제든지 터져버릴 것 같던 핏줄로 가득했던 얼굴은 수혈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기적처럼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 그는 고슬기가 떠난 방향을 쳐다봤다.
  • 머릿속에 나타난 의심의 씨앗은 그의 얼굴을 더욱 어둡게 하였다.
  • 시빈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슬기가 떠난 쪽을 바라보았고, 기쁨과 놀라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 “도련님, 저 여자의 몸에 도련님이 필요한 게 있어요. 수혈도 하지 않고 그저 저 여자의 몸을 만진 것뿐인데 얼굴이 회복됐어요! 저 여자가 아직 처녀여서 처녀 피를 사용하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