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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를 향해 무릎을 꿇다

  • 그날 밤, 풍성에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한바탕 거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왔고, 마치 만신창이가 되어 산산조각난 마음과도 같았다.
  • 고슬기는 울면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고, 곧이어 이를 악물고 참았으며, 결국 무뎌져서 마치 숨을 쉬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자신의 몸 위에 있는 남자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뒀다.
  • 한번, 또 한번.
  • 이런 고문이 얼마나 지속됐을까, 남자는 그제서야 콧방귀를 뀌더니 드디어 그녀를 놔줬다.
  • 파박.
  • 실내 조명이 밝게 켜졌고, 눈이 부신 불빛이 고슬기에게 쏟아졌다.
  • 그녀의 긴 속눈썹까지 떨리고 있었으며,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주사 자국이 가득한 팔을 가렸다.
  • 그녀는 온몸을 떨고 있었고, 일어나 자신의 옷을 주우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녀는 앉자마자 머리가 핑 돌았고, 앙상한 몸은 다시 쓰러졌다.
  • 탕.
  • 뒷통수가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고, 방이 큰 탓인지 유난히 크게 들렸다.
  • 유희철은 무표정으로 가운을 꺼내 걸쳤고, 몸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처럼 욕실로 걸어갔다. 그렇게 몸을 돌리자 여자가 빨개진 눈으로 시체처럼 바닥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걸 발견했다.
  • 순간 짜증이 밀려왔고, 유희철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실눈을 뜨고 차갑게 말했다.
  • “왜, 내가 여기서 밤을 지새길 기다리고 있어? 아니면 욕구가 넘쳐서 같은 자세로 한번 더 해주길 바라는 거야?”
  •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뒤돌아 갔다.
  • “유희철.”
  • 뒤에서 갑자기 고슬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으며, 옷으로 몸을 가리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 “우리 집...놔주면 안돼? 그건 우리 아빠의 피와 땀이야. 만약에 정말 복수를 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 그러면 안 되겠니?”
  • 유희철은 몸을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웃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 “놔주라고? 고슬기, 너는 지금 무슨 신분으로, 뭘 가지고 나한테 부탁을 하는 거야?”
  • 고슬기는 옷을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 “어떤 이유이든 너랑 나랑 잔 건 사실이야.”
  • 그녀는 남자의 매서운 눈빛을 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 “오후부터 지금까지, 총 다섯 번.”
  • “유희철 씨,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5년 전에 헤어져서 아무 관계도 아니야. 나랑 잤으니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나랑 결혼해달라는 말 안 해, 그 대신 우리 아빠 회사...읍!”
  • 유희철이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졸랐다.
  • 힘이 매우 세서 그녀의 온몸이 굳을 뻔했다.
  • “고슬기, 스스로도 더럽다고 생각하는 창녀가 무슨 자격으로 나랑 조건을 따져?”
  • “너랑 너희 집안은 나한테 한 푼의 가치도 없어!”
  •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창녀.
  • 알고 보니 그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그 정도로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 고슬기가 갑자기 더이상 몸부림을 치지 않았고, 눈을 감으며 남자가 더욱 세게 잡도록 놔뒀다.
  •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 집안을 놔줄 수 있는데...”
  • 그녀는 갑자기 목이 가벼워졌고, 이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 유희철의 목소리가 매섭게 떨어졌다.
  •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한테 무릎 꿇고 빌어.”
  • 고슬기는 고개를 들었고, 남자의 농담이라곤 일도 없는 표정을 보며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천천히 그의 곁으로 기어 갔다.
  • “알았어, 꿇을게.”
  • 그러자 그녀는 두 다리와 허리를 굽혀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