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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너는 이 반지와 똑같이 더러워

  • 그 얼굴의 반은 준수했지만 다른 반쪽은 귀신과도 같았고, 피부가 없이 혈관만 가득하고 언제라도 폭발할 듯했다.
  • 남자는 조용히 서 있기만 해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 옆에 있던 사람이 임소연의 부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 “그 더러운 입 그만 놀려! 도련님의 얼굴이 이러지 않았으면 우리가 여기 왜 왔겠어? 문 열어!”
  • “네네네!”
  • 부하는 허겁지겁 문 쪽으로 달려갔다.
  • “딸칵”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이미 멘붕상태에 다다른 고슬기는 어렵게 고개를 돌렸고,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 그리고 문이 잠겼다.
  • 고슬기가 눈치를 채기도 전에 비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왔다. 남자는 아주 거칠게 그녀를 잡았고, 바닥으로 매섭게 내팽개쳤다.
  • 펑!
  •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옷이 찢기는 소리가 한꺼번에 울리기 시작했다.
  • 암흑과 공포만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 고슬기는 온몸이 떨렸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고, 저항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절망적인 흐느낌 만이 방구석 곳곳을 채울 뿐이었다.
  • 남자는 그녀의 몸을 뒤집었고, 강제로 가장 굴욕적인 자세로 무릎을 꿇게 했다.
  • 그리고, 거칠게-
  • 고슬기는 자신의 몸을 움츠렸고, 절망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 “슬기야, 나랑 떠나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걸 줄 수 있어,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 “난 네가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신분도 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도 가지고 있어. 너만 원한다면 내가 다 말해줄게.”
  • “슬기야, 기다릴게, 얼마나 걸리든, 나는 기다릴게.”
  • 그녀는 원래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차지할 수 있을 줄 알았고, 그녀의 첫 경험을 자신이 사랑하는 유희철에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그녀는 이제 더러워졌고,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그녀는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고, 약물 때문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마음속으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내뱉었다.
  • 유희철.
  • 유희철.
  • 희철아...
  • 비바람은 거세게 몰아쳤고, 도무지 언제 그칠지 알 수 없었다.
  • 남자는 작정한 듯이 그녀를 원했고, 또 그녀가 밉다는 듯이 바닥으로 내팽개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떠났다.
  • 문은 그렇게 다시 잠겼다.
  • 밖에서 지키고 있던 부하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고, 남자의 귀신 같던 반쪽 얼굴은 여자와의 정사 후 정상으로 회복된 것을 발견했다.
  • 현재 그의 얼굴은 매우 카리스마가 넘쳤으면, 마치 하느님이 정교하게 빚은 인형처럼 완벽했다.
  • “도련님, 루카가 말한 게 맞네요, 저 여자의 피가 정말 효과가 있었어요! 드디어 안심하고 저희랑 돌아가실 수 있겠네요!”
  • “돈을 쓰는 것보다 안에 있는 저 여자들 데려가는 게 낫겠어요, 혹시 모르니...”
  • 남자는 뒤돌아서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뒤에 있는 방을 스캔했다.
  • “필요 없어.”
  • “이런 일은 한번이면 충분해, 나는 저 여자의 피만 원해. 앞으로 여자는 내 곁에서 싹 다 치워버려.”
  • 부하는 당황했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 “도련님, 갑자기 여자를 이렇게 싫어하시다니, 혹시 도련님이 기다리시던 여자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정말 그 여자를 데려가고 싶으신 거면 하룻밤 더 머무르면서 찾아오면 되잖아요?”
  •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고, 눈동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 돌연 그는 차갑게 비웃었다.
  •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야!”
  • 그는 말을 끝낸 후 별장 밖으로 걸어나갔다.
  •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멈췄고, 뒤돌아 부하에게 차갑게 지시했다.
  • “풍성을 떠나기 전, 사람을 시켜서 처리할 일이 있어.”
  • .....
  • 남자가 떠난 후, 고슬기는 죽은 것처럼 조용히 바닥에 누워있었다.
  • 밖에는 비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고, 그녀의 세계는 진작에 무너졌다.
  • 아래층에서는 돈을 받은 임소연의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와 문을 열어 고슬기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혀를 차더니, 그녀 곁에 쭈그려 앉았다.
  • “정말 생각도 못했네, 네년의 그 얇디얇은 처녀막이 무려 20억이나 한다니, 내가 널 과소평가했나 봐.”
  • 고슬기는 충혈되어 빨개진 눈으로 계모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목을 당장이라도 물어뜯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들은...”
  • “걱정 마, 네 아빠도 잘 살게 하고 남동생도 잘 보살필게. 유희철은 이미 30분 전에 풍성을 떠났어.”
  • “그런데 가기 전에 사람을 보내서 물건을 하나 전해줬더라고. 오늘 협조해준 것에 대한 보상이야.”
  • 임소연은 일어서면서 손에 들린 물건을 고슬기에게 휙 던졌다.
  • 탕.
  •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동그란 물건이 고슬기의 손 옆에 떨어졌다.
  • 그걸 보는 순간 고슬기의 죽은 듯한 눈빛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 그건 유희철의 반지였다.
  • 반지는 원래 커플링이었는데, 유희철이 손수 제작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였다.
  • 그들은 반지를 끼고 난 후 평생 후회를 하지도, 빼지도 말자는 약속을 했었다. 만약 이를 어길 시 그 사람은 평생 용서를 받지 못하기로 말이다.
  • 그리고 현재, 그녀의 반지는 남아있었지만 그는 정작 반지를 버렸다.
  •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
  • 칼에 베인듯한 아픔이 가슴에 잔뜩 밀려왔고, 고슬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그가... 또 뭐라고 했어요?”
  • 임소연이 차갑게 웃었다.
  • “네년과 이 반지가 자신의 멍청한 과거를 의미한대. 네가 살아있는 동안 어딜 가도 간직하길 바란대. 왜냐면 너도 이 반지와 똑같이 더러우니까.”
  • 더럽다.
  •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는 걸 후회할 뿐만 아니라, 더럽다고 느꼈다.
  • 몇 년 간의 감정이 무서운 농담처럼 느껴졌다. 절망, 암흑, 고통은 소리 소문 없이 고슬기를 지옥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 길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내야 한다니, 그녀는 갑자기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 고슬기는 그 반지를 꼭 쥐더니 실성한 사람처럼 갑자기 웃어댔다.
  • 그렇게 웃다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임소연은 그저 그녀가 당황하고 정신이 나간 걸로만 알고 미간을 찌푸렸으며, 뒤돌아 문 쪽으로 다가갔다.
  • 하지만 문고리를 잡는 순간 고슬기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 임소연은 곧바로 뒤를 돌았고, 이내 고슬기의 입가에서 피가 천천히 흐르고 있는 걸 발견했다.
  • “빨리 사람 불러!”
  • “이 년이 혀 깨물었어!”
  • .....
  • 5년 후.
  • 딸깍.
  • 별장 밖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고, 한 남자가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과 걸어 들어와 한 방으로 올라갔다.
  • 문을 열고 남자가 손에 있는 리모컨을 누르니 방에 불이 켜졌다.
  • “들어오시죠, 사람은 바로 저기 있습니다.”
  • 이미 봄이 다가왔고, 햇살과 꽃내음이 가득하고 새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방은 항상 빛이 없었고,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냄새를 자세히 맡으면 아주 희미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침대에 움츠리고 있던 연약한 형체가 흠칫 놀라더니, 손을 뻗어 눈부신 불빛을 가렸다.
  • 그녀는 고슬기였다, 무려 5년 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다.
  •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그녀의 혈색 없는 얼굴은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고, 그저 상대방에게 팔을 뻗을 뿐이었다.
  • 5년.
  • 매달, 그는 아버지와 남동생을 한달에 한번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피를 뽑으러 오는 사람이 있었고, 임소연은 즉시 1억짜리 수표를 받을 수 있었다.
  • 모든 것이 평소처럼 이렇게 끝이 날 줄 알았다.
  • 하지만 하필 이 날, 고슬기는 반쯤 열린 문틈을 통해 들려오는 티비 소리를 듣고 말았다.
  • “오늘, 풍성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청년기업가 유희철이 갑자기 나타나 풍성의 비즈니스 업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 유... 희철?
  • 익숙한 이름을 듣자 고슬기는 힘차게 고개를 들었다.
  • 그리고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옆 사람을 밀고 비틀거리며 달려나갔다.
  • 하지만 오랜 시간 갇혀있던 터라 근력이 빠질 대로 빠진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그녀는 거실로 나가자마자 바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고슬기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
  • 마치 세월이 그만을 빗겨나간 것처럼,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은 변함이 없었고, 성공한 엘리트들 몸에서만 볼 수 있는 카리스마가 더해졌다.
  • 그의 두 눈은 블랙홀처럼 깊웠고, 차마 들여다볼 수 없었다.
  • 정말 그 사람이었다.
  • 그가 돌아온 것이다!
  • 옆에서는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졌고,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대단했다.
  • “유희철님은 풍성 출신이신가요?”
  • “사업 본부를 풍성에 건설한다는 선택을 하셨는데, 이 도시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어서인가요?”
  • “혹시 싱글이신가요? 혹시...”
  • 돌연 기자들의 소란스러운 질문 사이로 여자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유희철의 뒤에서 들려왔다.
  • “이 사람 난처하게 하지 마요, 희철씨 성격이 생각보다 좋지 않거든요. 만약에 화를 내면 당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 곧이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유희철의 뒤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 그리고 또 작은 형체가 여자의 뒤에서 튀어나오더니, 바로 유희철에게 달려갔다.
  •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