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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소신은 기꺼이 보좌할 것입니다

  • 서숙의는 아름다운 눈망울을 빛내면서 기쁘게 대답했다.
  • “네!”
  • 왕을 대신해 명을 만드는 일은 아주 영광스러운 일로 그녀가 진무열의 신임과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며, 전하가 국고의 허실 문제를 조사하겠다고 한 것은 그가 정말 변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곽자운은 얼굴이 벌겋게 된 채 신심이 가득했다.
  • “그럼 곽자운은 나가보거라. 빠른 시일 내에 과인에게 방법을 올리도록 하거라. 그리고 궁전을 수선하는 것을 멈추고 모든 지출을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거라.”
  • 진무열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 “알겠사옵니다.”
  • 곽자운은 격동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물러섰다.
  • 편전에는 서문만 남겨졌다. 그는 여전히 점잖은 모습으로 예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진무열이 태도를 바꾸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언짢았다. 진무열은 조금 어색함이 느껴졌고 그때 서숙의가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의 오라버니와 전하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 “오라버니. 이 누이가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사오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 그녀는 일어서서 인사를 올렸고 서문은 눈썹을 찌푸린 채 자신의 이 착하고 사리 밝은 누이가 가슴 아파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서숙의는 그에게 살며시 눈짓을 보내며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전하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귀띔했다.
  • 서문은 그 뜻을 알아차리긴 했지만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고 속으로 이 막돼먹은 왕만 아니었더라면 누이가 이런 억울함과 몰매를 맞지 않아도 됐었다고 생각했다.
  • “쿨럭, 그러니… 처남.”
  • 진무열이 입을 열자 서문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 “소신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사옵니까. 전하께선 저를 역신이라 불러주시는 게 더 편하옵니다.”
  • 진무열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처남이 자신에 대한 원망이 아주 큰 것 같았다. 몸 주인의 기억을 더듬어 봤을 때 자신이 서씨 가문에 대한 태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두 남매를 때리는 등 지나친 행동을 많이 했었다.
  • 그래서 서문의 이런 태도를 탓할 순 없었다. 서숙의의 예쁜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곧 진무열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 “전하, 오라버니께서 홧김에 그러는 것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옵소서.”
  • 진무열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하며 측은한 눈빛으로 말했다.
  • “괜찮다. 과인이 잘못한 게 맞는데 왜 탓하겠느냐? 그리고 우리는 집안 식구인데 서로 남 말을 해서야 되겠느냐?”
  • 이 말을 들은 서숙의는 감동을 하였고 서문을 힐끗 바라보았다. 서문의 표정이 풀리는 듯싶더니 진무열을 바라보며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 진무열은 이 기회를 타 계속 말을 이었다.
  • “서문, 도창산에 도둑 잡으러 보내 마적 토벌 두목으로 명하려 한다.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면 정식 총사령관으로 인정해주고 더 많은 군대를 영솔하게 해 과인의 걱정을 덜려 한다.”
  • 서문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으로서 왕의 걱정을 덜어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날 전하께서는 간신배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난신 역적들이 활개를 치는 바람에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치지도 못했다. 정말 총사령관이 된다면 마음껏 힘을 떨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왕가를 비롯한, 권리를 앞세워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의 압력을 받지 않아도 된다.
  • “서문,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 대답이 없자 진무열이 다시 한번 물었다. 서문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반신반의하며 천천히 대답했다.
  • “전하, 이 일은 관련된 사람이 너무 많사옵니다. 전하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고 해도 호조 판서가 반대할 듯하옵니다.”
  • 이 말을 들은 진무열의 눈빛이 반짝였다. 서문도 안중원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로 보아 중대한 결정에 대해선 안중원의 동의가 없이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안중원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도 맞는 일이었다.
  • “과인이 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냐? 솔직히 과인이 안중원을 비롯한 권세를 잡은 신하들에 대해 불만이 있은 지 오래됐고 그들에게 압력을 주려는 생각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와 곽자운을 일으켜 세우지 않을 것이다.”
  • 서문의 마음이 복잡해졌고 진무열의 예리한 눈빛을 바라보며 이 왕을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진무열은 뒷짐을 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서문, 과인이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다. 나의 보좌를 할 의향이 있느냐?”
  • 서문의 늠름한 얼굴에 잠시 주춤하는 표정이 어렷다. 그는 이 막돼먹은 왕을 믿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서숙의는 그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사정하고 싶었다. 오라버니가 진심으로 마음의 상처를 내려놓고 전하에게 충성하는 것은 그녀가 가장 원하는 그림이었다.
  • 서문은 누이의 그런 눈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진무열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태도로 대답했다.
  • “전하께서 새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신은 전하를 보좌할 의향이 있사옵니다.”
  • 진무열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 “그래, 과인이 새사람이 된다고 약조하마.”
  • 서문은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했다. 한 나라의 왕이 이토록 간곡하게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으니 적어도 정말 변하려는 마음이 있는 듯했다.
  • 폭군에서 예의와 겸손을 겸비한 왕이 되려 하다니, 진무열은 도대체 무얼 겪은 것일까? 그는 이런 의혹이 들었지만 믿기로 마음먹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서문은 궁을 떠났고 서숙의는 친히 그를 배웅했다. 두 사람은 궁을 따라 걷고 있었고 그 뒤로 내관과 궁녀들이 따랐다. 서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마마, 전하께서 왜 이렇게 몰라보게 변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갑자기 우리 서씨 집안에 대한 믿음도 커진 것 같습니다.”
  • 서숙의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 “오라버니, 전하께서 어젯밤 화양전에서 밤을 보내셨사옵니다.”
  • 서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 “그렇다면 전하께서 어젯밤…”
  •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은 방금 누이가 걷는 모습이 불편하다고 느껴졌던 게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휴, 이 막돼먹은 왕이 진심으로 바뀐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제가 좌태파를 데리고 가서 한 판 할 것입니다.”
  • 서숙의는 표정이 확 바뀌더니 서문을 흘겨보고 말했다.
  •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그는 그제야 실언했음을 느끼고 곧 입을 다물었다. 출궁 전 그는 눈썹을 찌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전하께서 이미 변하실 마음이 있으시니 신은 성의껏 보좌할 것입니다. 안가의 세력이 크니 안귀인이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마마, 후궁은 위험한 곳이니 항시 조심하십시오.”
  • 서숙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전하께선 아직 슬하에 자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마마… 힘을 좀 내보십시오.”
  • 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모빙자귀(母凭子贵: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면 어머니도 따라서 지위가 높아진다는 말)라고 두 귀인 중 누가 먼저 아들을 낳을지에 따라 왕후의 자리가 정해진다.
  • 서숙의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전하, 안귀인께서 찾아뵙자고 하시옵니다.”
  • 청문각.
  • 진무열은 동작을 멈추었고 궁녀는 고개를 숙인 채 전하의 대답을 기다렸다.
  • 안귀인, 이 이름은 그에게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몸 주인의 기억 속에서 이 여자에 인상이 가장 깊었는데 아주 요염한 것이 홍안화수인듯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몸 주인이 그토록 그녀에게 미련을 가지고, 시키는 대로 다 했을 리가 없었다.
  • 하지만 진무열은 안씨 가문의 세력이 이토록 하늘을 찌르고 자신의 왕권까지 위협할 줄은 몰랐다. 오늘날 안귀인은 사람을 시켜 서숙의를 때리도록 했으니 그는 그녀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고 담담히 대답했다.
  • “들라 하라!”
  • 궁녀는 이 말에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어투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고 전하께서 감히 안귀인에게 이렇게 말씀을 한다는 것에 의아했다.
  • 얼마 안 지나 아름답고 가녀린 여인이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한들거리는 자태가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다홍색의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가늘고 긴 목에 정교로운 쇄골이 마치 백옥같이 느껴졌으며, 가느다란 허리에 몸매가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덴 완벽히 들어가 있었다.
  • 탐스러운 다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눈가에 있는 기미마저 소리 없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이 여자는 아름다움의 극치임이 틀림없었고 세상 그 어떤 남자도 이 여자를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