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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그녀의 편을 들어주다

  • 서문의 서글서글한 눈에 의아한 빛이 가득했다. 이 못된 왕이 왜 간신을 총애하지 않고 자신을 중용하려는 걸까?
  • “소신...”
  • 서문이 입을 열려는 찰나, 안중원이 끼어들었다. 그는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마적 토벌 총사령관의 자리와 군사적 공로는 매우 중요했기에 반드시 자기 아들을 위해 쟁취해야 했다.
  • “전하, 소신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사옵니다. 좌태파는 낙성을 보호하여야 하니 함부로...”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노한 진무열이 불쾌한 듯, 말을 끊었다.
  • “과인이 경에게 물었는가!”
  • 안중원이 멈칫하자 다수의 신하도 넋을 잃어버렸다.
  • 대전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 진무열의 행동이 평소와 너무 달랐다. 평소라면 그는 진작 안명을 총사령관으로 책봉할 것이며 안중원을 난처하게 만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 일은 너무 불가사의했다.
  • “그만하여라. 총사령관 책봉에 관해 과인이 결정하여 곧 공표할 것이니라!”
  • 진무열이 담담하게 한마디 남기곤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조정에서 나와버렸다. 조정에 남은 신하들만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뿐이었다.
  • 떠나는 진무열의 뒷모습을 보며 안중원의 노련한 두 눈에 음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 곧이어 그가 고개를 돌려 서문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 왕이 서문을 도와주려 하는 것은 반드시 서숙의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 ‘흥. 전임 영의정이 나 안중원을 적으로 두었을 때 그놈이 죽어서 묻힐 자리도 없게 만들어줬어. 네까짓 서숙의는 내 상대가 아니야. 두고 보자, 이 조정은 여전히 우리 안씨 가문의 조정일테니까!’
  • 진무열이 금린 대전에서 나온 후, 그는 곁을 따라다니는 호위를 시켜 비밀리에 서문과 곽자운에게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전했다.
  • 전자는 자신의 큰 처남이고 후자는 누추한 집안의 충신이었다. 진무열은 그 두 사람이 양성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 후궁 화양전.
  • 이곳은 서숙의의 거처였다.
  • 진무열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곳으로 찾아왔다. 어젯밤의 쾌락을 맛본 후, 그는 중독되어 한시라도 서숙의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 화양전 입구에 들어서자 진무열은 화양전에 내관과 궁녀가 많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천한 것, 전하께서 네 화양전에 오시자마자 넘어져 다치셨어. 넌 죽어 마땅해!”
  • “흥, 안귀인이 너를 한 달간 화양전에서 나오지 말고 잘 반성하라 말했어!”
  • “서숙의, 조금 전 하사한 따귀는 내가 주는 교훈이라 생각해. 네년이 감히 또 같은 짓을 번복하면 우리가 널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까!”
  • 세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소의(昭儀)들이었다.
  • 그녀들은 젊고 미모가 빼어났으며 지위는 귀인의 바로 다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난히 제멋대로 각박하게 굴고 있었다.
  • 세 사람 가운데서 서숙의는 빨간 볼을 부여잡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처량하게 눈물을 흘렸다.
  • 어젯밤 진무열이 넘어졌다는 말이 새어나가면서 이른 아침부터 안귀인이 사람을 보내 그녀를 문책했다.
  • 서숙의가 후궁 소의들에게 따귀를 맞고 그녀를 따르는 최나인같은 궁녀도 함께 그 죄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 그 순간 그녀는 전하께서 그의 약조처럼 나타나 자신을 보호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이내 눈빛이 암울해졌다. 전하는 안귀인를 쭉 총애했다. 그러니 이 일을 알게 된다고 해도 못 본 척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됐다.
  •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가 아름다운 눈을 살짝 들어 올리자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고 위엄있는 뒷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 “짝짝짝!”
  • 맑고 청아한 따귀 맞는 소리가 연속 세 번 울려 퍼졌고 커다란 궁전에서 메아리를 울렸다.
  • 그 순간, 화양전의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왕이 세 명의 소의들의 따귀를 때렸다니! 이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 대전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 세 명의 소의들은 뺨을 맞아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채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 “무엄하다, 과인의 여인에게 감히 손을 대다니. 죽고 싶은 게냐?”
  • 진무열이 분노에 차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 그는 타임슬립하고 나서 서숙의의 첫날밤을 가졌으니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의미에서 말하는 여자라고 여겼다.
  • 조금 전 그 세 명의 소의들은 그의 머릿속에 거의 인상이 없었으며 그녀들의 난폭한 모습도 보고 나니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 “저, 전하.”
  • 장소의가 얼굴을 어루만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그녀는 왕이 서숙의를 위해 나서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 “전하, 서숙의가 먼저 전하를 다치게 하여 저희가 죄를 묻고자 왔사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만하여 잘못을 알면서 고치지 않으려 하여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어 훈계했던 것이옵니다.”
  • 유소의가 진무열의 발아래 무릎을 꿇더니 울며 호소했다. 진무열은 서숙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돌려 싸늘하게 웃었다.
  • “이젠 잘못을 덮어씌우려고 하는구나. 서숙의는 이토록 부드러운데 네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보기에 오만한 건 너희들이니라!”
  • “아, 억울하옵니다, 전하!”
  • 유소의가 여전히 발뺌했다.
  • “흥! 내 직접 두 눈으로 보았는데 거짓이란 말이냐!”
  • “퍽!”
  • 진무열은 단지 조금 전 직접 서숙의를 때린 사람이 유소의라는 이유로 조금도 봐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발로 차버렸다.
  • “말해보아라. 누가 시킨 짓이냐? 서숙의를 이리 기고만장하게 괴롭히다니, 너희들은 과인을 무엇으로 본 것이냐!”
  • 진무열이 화를 내며 버럭버럭 외쳤다.
  •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서숙의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왕은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 그는 진짜로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 ‘힘든 나날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 “어젯밤 전하께서 다치셔서 안귀인께서 옥체가 걱정되어 특별히 신첩들에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아 오라고 하셨사옵니다.”
  • 유소의가 두려운 안색으로 안시향을 입 밖에 냈다.
  • ‘안귀인, 또 안귀인야!’
  • 진무열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안시향이라는 여자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다.
  • 권신의 딸로서 후궁에서 이토록 활개를 치고 다니다니. 그녀의 명령이 없다면 이 세 명의 소의 역시 감히 손을 쓰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 “여봐라, 이 세 명의 오만한 여인을 냉궁으로 보내 과인의 명령이 없는 한 아무도 나올 수 없게 하여라!”
  • 그의 말에 세 명의 소의들은 완전히 넋이 나갔으며 예쁘장한 얼굴에 공포가 몰려왔다. 냉궁에 들어가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녀들이 진무열의 다리를 부여잡으며 빌었다.
  •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저흰 단지 전하를 위해서 그리하였사옵니다!”
  • “서숙의가 먼저 저희를 모욕하였사옵니다. 게다가 저흰 안귀인의 명을 듣고...”
  • “전하, 제발 냉궁으로 보내지 말아주시옵소서.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 “…”
  • 진무열은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엎드려있는 세 사람을 훑어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몇 명의 사내들이 세 명의 소의를 끌고 갔는데 그녀들이 발악하며 손톱으로 땅을 긁어 눈에 띄는 선홍빛의 피가 끌려간 자리에 주르륵 남게 되었다.
  • 그렇게 셋은 비참한 비명과 함께 점점 멀어졌다.
  • 오늘 진무열은 세 명의 숙의가 안귀인의 사람일지라도 서숙의를 위해 자신의 위엄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늘 이후로 감히 서숙의를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그 후궁은 냉궁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 화양전 안.
  • 진무열은 마음이 아픈 듯, 서숙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 “안 되겠소. 서숙의, 아무래도 어의에게 보여야겠소.”
  • 서숙의가 진무열을 잡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전하, 괜찮사옵니다. 신첩 괜찮사옵니다.”
  • 진무열이 탄식했다.
  • “서숙의, 과인이 그대를 잘 보호하지 못하여 오늘 그 몹쓸 소의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꼭 그대를 위해 나서줄 것이니까. 안귀인... 내가 반드시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 “괜찮사옵니다. 전하.”
  • 서숙의가 머리를 진무열의 품에 살포시 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 “전하께서 신첩을 신경 써 주신다면 그것 외에 더 중요한 것은 없사옵니다.”
  • 진무열의 마음에 따듯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 같았고 품 안의 여인이 더 가엾어 보였다.
  • 그는 그녀를 안으며 천천히 매끈하고 유들유들한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를 건넸다.
  • 화양전 안의 내관과 궁녀들도 눈치껏 고개를 숙이더니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 서숙의는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봄을 머금은 것 같았고 고혹적이었다.
  • “전하, 아직 날도 밝은데...”
  • 진무열이 히죽 웃었는데 눈빛이 반짝거렸다.
  • “왜 그러시오? 서숙의는 내가 낮에 화양전을 찾는 것이 싫은 것이오?”
  • “아니옵니다. 신첩은 꿈에서도 그리하시길 바랐사옵니다.”
  • 서숙의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진지하게 말하다 뭔가가 생각난 듯 얘기했다.
  • “전하, 신첩 전하께 보여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 “무엇이오?”
  • 진무열이 아쉬운 듯, 그녀를 놓아주자 그녀가 물건을 가지러 갔다.
  • 그녀는 베개 아래에서 하얀색 손수건을 꺼냈는데 그 위에 피가 몇 방울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매화가 활짝 피어난 것 같았다.
  • 서숙의가 얼굴을 붉히며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손수건을 건넸다.
  • “전하, 이것은 신첩이 첫날밤에 흘린 피옵니다. 전하께서 검사하여 주시옵소서.”
  • 고성국의 여자는 정조를 크게 신경 썼다. 남편과 동침하면 순결을 상징하는 첫날 밤에 흘린 피가 묻은 손수건을 보여주었으며 이 손수건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여자가 앞으로 남편의 집안에서 받게 될 대우를 직접 결정했다.
  • 진무열이 크게 심호흡했다. 손수건을 손에 들자 가슴이 요동쳤다. 이런 미인의 첫날밤을 자신이 가졌다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 “서숙의.”
  • 그가 한 손으로 서숙의를 끌어안으며 눈빛이 야수처럼 변했다.
  • 서숙의는 진무열의 생각을 읽은 듯, 얼굴에 홍조를 띠며 고개를 돌렸다.
  • “전하, 아직 대낮이옵니다. 그러니 이러시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