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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이 여자는 단순하지 않다

  • 진무열도 이 점이 아주 이상했다. 안중원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적어도 이재민 구제와 출병하는 두 가지 일은 한 단락 마친 것이었다.
  • 현무문.
  • 신하들이 조회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 “아버지, 방금 어찌하여 전하께 얘기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이것은 군공이옵니다.”
  • 안명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서문을 이를 갈며 미워했다.
  • “닥치거라!”
  • 안중원은 음침한 표정으로 욕을 했다.
  • “이렇게 경박스러워서야 어찌 큰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 전하의 태도가 안 보였느냐? 작정하고 서씨 집안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 이때 영의정 임종서가 다가와 담담하게 말했다.
  • “안 장군, 아버님의 말씀이 맞으시네. 전하께서 이런 태도를 보이시니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것이오.”
  • 안명은 눈썹을 찌푸리고 억울한 듯 말했다.
  • “그렇다면 이렇게 서씨 집안이 일어서는 걸 보고만 있을 것이옵니까? 우리가 몇 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고 이제…”
  • “짝!”
  • 안중원이 안명에게 힘차게 따귀를 날리고 나서 수염까지 떨며 음침한 표정으로 호통쳤다.
  • “불효자식, 입 닥치거라!”
  • 안명은 꾀가 많은 자신의 아버지를 아주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실언했음을 알아차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감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종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안명을 힐끗 보고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후궁의 형세가 갑자기 바뀌었으니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소.”
  • 그는 머뭇거리며 귀띔했다. 당당한 영의정으로서 호조 판서에게 이토록 존경을 표하며 안중원의 뜻을 묻고 있었다. 안중원의 표정도 점차 회복되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 “천수대군께 만나 뵙자고 전하거라.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말이다.”
  • 말을 마친 그는 예리한 눈빛을 지었다.
  • “서문, 좌태파라는 주력군이 떠나갔으니 전하의 날개에 힘이 없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누가 서숙의에게 힘이 될 것인지 두고 볼 것이오.”
  • ...
  • 진무열은 조정에서 나와 화양전으로 향했다. 그는 정력이 차 넘치는 것 같았고 서숙의의 예쁜 등과 탐스러운 허벅지가 자꾸 떠올랐다.
  • 하지만 가는 길에 발목이 잡혔다. 문 앞에 원망이 가득한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던 것이다. 안시향이었다. 그녀는 국화꽃이 수 놓인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잘록한 허리에 올림머리를 하고 하얗게 화장을 해 마치 연못에 갓 피어난 연꽃처럼 예뻤다.
  • 이 여자는 정말 천태만상이었다. 어제는 요염하더니 오늘은 청순했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내밀고 원망에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 “전하, 신첩을 속였사옵니다. 어제 분명 영롱전에 들른다고 하셔서 신첩 밤새 기다렸사온데 전하께선 오지 않고 신첩 혼자 독수공방했사옵니다.”
  • 말을 하며 그녀는 곧 울어버릴 것 같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진무열은 그녀의 태도가 의심스러웠지만 뭐라 할 수 없어 대꾸했다.
  • “안귀인, 내 기억력을 좀 보오, 어제는 과인이 너무 바빠서 깜박했으니 과인이 사과하오.”
  • 그는 다가가 안시향의 허리를 감쌌다. 이번엔 안시향이 도망가지 않고 혼을 빼놓을 듯한 눈빛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 “전하, 신첩을 잊고 숙의 동생한테 가 있은 건 아니시옵니까? 새로운 사람이 생기면 옛사람을 잊는 다고 하더니 전하께선 신첩의 마음을 많이도 아프게 하옵니다.”
  • 진무열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 “쿨럭, 과인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없었소. 시간이 지나면 과인이 안귀인에게 톡톡히 보상해 주리다. 요즘 국사를 처리하는 데 바빠 대부분 시간을 상소문을 처리하는 데 쓰오.”
  • 안시향은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따지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일로 심기를 건드리기 싫었다. 그녀는 남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진무열을 손에 넣고 놀 수 있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 “전하, 신첩 잘못을 인정하고 성의를 보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은자를 전부 이재민 구제에 지원하려 하옵니다.”
  • 진무열은 은자를 받아들었는데 족히 10만 냥은 되는 듯싶었다. 안시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이렇게 하면 전하께서 만족하시려는지요?”
  • 진무열은 내관과 궁녀가 전부 50m 밖으로 물러선 것을 보고 손으로 안시향의 몸을 더듬었다. 안시향은 몸매가 참 좋았고 살결이 아주 부드러웠다.
  • “좋소.”
  • 진무열은 그녀의 몸매를 말한 것인지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이번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소, 짐이 더는 묻지 않을 것이니 안귀인도 앞으로 조심하시오.”
  • 안시향의 웃음이 한순간 사라졌고 아리따운 얼굴이 굳어졌다. 비록 진무열이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그녀는 그 속에 숨어있는 뜻을 알 수 있었다.
  • 진무열은 은자를 거두었다. 어차피 안중원이 호조 판서이니 조정의 돈을 많이 갈취했을 것이고 이 정도는 이자라고 쳐도 문제없었다.
  • “알겠사옵니다. 신첩 앞으로 후궁에서 조신하게 행동하도록 하겠사옵니다.”
  • 안시향은 오늘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였고 진무열은 이런 그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입궁했으니 자신의 여자이고 그렇게 된 이상 안씨 집안과 손을 잡고 조정을 흔들려 한다면 결론은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안시향은 매혹적인 눈빛을 짓더니 갑자기 진무열의 귓가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안시향의 유혹에 그는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 “전하, 오늘 밤엔 꼭 영롱전으로 오시옵소서.”
  • 젠장!
  • 진무열은 마음속으로 세상에 이런 여자를 거부할 수 있는 남자가 존재하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이 선녀 같은 안귀인이 어떻게 몸을 비틀 건지 보고 싶었다.
  • 그 순간 안시향은 진무열의 눈빛이 변한 것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했고 전하가 오늘 그녀에게 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또 진무열의 몸에서 미끄러져 나와 웃으면서 말했다.
  • “전하, 신첩 물러가겠사옵니다. 오늘 밤 전하께서 목욕에 쓰실 약재를 준비해뒀사옵니다.”
  • 진무 열은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정신 차릴 수 없었다. 한들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은 정신이 혼미해지게 했다.
  • “이 여자가 그리 간단하진 않을 것 같군, 몸으로 나를 유혹하다니, 그리고 재주도 좋을 것 같아…”
  • 진무열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고 눈빛이 예리하게 변했다. 그의 마음속에선 안시향이 보기와는 다른 뭔가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자신의 이 몸체는 건장한 남자의 몸으로서 비약하진 않았고 어제 풍천도가 혈 위를 열고 어양정기를 수련했기에 정상적인 남자들보다 더 건장하다고 볼 수 있었다. 서숙의와 사랑을 할 때 손에 조금만 힘을 주면 그녀는 아파했고 몸에 멍이 가기도 했다.
  • 자신이 방금 그렇게 힘을 줘 안시향을 꼬집었는데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녀를 껴안았을 때도 마치 미끄러져 나가듯 번번이 자신의 품을 벗어났다. 그녀의 배경을 떠올린 진무열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오늘 밤 기회를 봐 시험해 봐야겠어. 침소에서 조금의 위협도 존재해선 안 돼.”
  • 진무열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아무리 안시향이 귀인이라 하지만 명의상 자신의 여인이었고 감히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죽여버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 점심을 먹고 오후에 상소문을 처리했으며 저녁엔 좌선으로 어양정기를 수련했으니 그의 하루는 편하면서도 바쁜 하루였다. 날이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안시향은 사람을 보내 진무열을 요청했다. 진무열은 그녀를 시탐해보려는 마음으로 더는 거절하지 않고 청문각을 나서 영롱전으로 향했다.
  • 영롱전에 도착한 그는 놀라 턱이 빠질뻔했다. 눈앞에 휘황찬란하고 사치스러운 궁전이 펼쳐지자 그는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 “방탕하군, 너무 방탕해. 국고가 왜 공허한지 이제야 알겠어. 몸주인이 다 여자한테 갖다 쓴 거야. 내가 왔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고성국이 이 바보 같은 인간의 손에 다 날아가 버렸을 거야. 이건 너무 사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