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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비밀리에 탐관을 조사하다

  • “낮이면 어떠시오. 내가 서숙의를 낮에 안으면 안 된다는 법규가 있는 것이오? 서숙의, 가만히 있으시오. 난 한순간도 더 기다릴 수 없소!”
  • 진무열은 그녀를 부드러운 침상 위에 눕혔다. 서숙의는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나른한 몸을 살짝 떨며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 ‘전하께서 나를 이렇게 예뻐해 주시는 것은 드문 일이야. 낮이면 어때.’
  •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진무열을 받아주었다.
  • 하지만 그녀는 진무열이 어젯밤처럼 거칠까 봐 걱정되어 수려한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 “전하, 저를 아껴주시옵소서.”
  • 진무열이 알겠다고 하더니 그녀가 투명하게 반짝이는 붉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 ...
  • 고성국, 안씨 저택
  • 안중원과 안명이 전당 안에 앉아 하인들을 물러나게 했다.
  • “아버지, 이제 어떡합니까? 전하께서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신 걸까요? 왜 서문을 중용하려는 걸까요?”
  • 안명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오리무중에 빠졌다. 하지만 안중원은 안색이 변하지 않은 채,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
  • “또 무슨 이유가 있겠느냐. 네 동생이 이미 소식을 전했다. 서씨 가문의 그 계집이 왕의 침상에 기어올라 왕의 귓가에 말을 전한 것이다.”
  • “흥! 그럴 줄 알았습니다!”
  • 안명이 주먹을 꽉 쥐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 “아버지,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마적 토벌 총사령관의 귀한 자리는 우리 손에 들어와야 합니다. 서문은 우리 편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 안중원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안명을 훈계했다.
  • “명아, 급해 말아라.”
  • 그의 말에 안명이 다시 조용해졌다.
  • “이 일은 어딘가 이상하다. 네가 보기에 전하께서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 않더냐?”
  • 안명이 돌이켜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아주 이상합니다. 평소라면 우리 안씨 가문의 말에 순순히 따랐을 터인데 오늘은...”
  • “내가 이미 시향이를 보내 전하를 떠보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인이 드러날 것이라 믿는다. 만약 정말 서숙의가 뒤에서 일을 꾸며 우리 가문과 척을 지려는 것이면 그년을 가만히 놓아둘 수는 없다!”
  • 안명의 혼탁하면서도 노련한 눈빛에 예리한 빛이 감돌았다.
  • ...
  • 화양전.
  •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후.
  • 서숙의는 진무열의 팔 안에 온순한 고양이처럼 누워있었다. 그녀의 희고 투명한 피부는 지극히 매혹적이었는데 마치 조금 전 세례를 받은 듯했다.
  • “전하, 앞으로 신첩의 화양전에 자주 들러주실 건가요? 신첩은 입궁한 지 일 년이 되었으나 지금껏 전하를 위해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 후궁에 말이 많사옵니다...”
  • 서숙의가 고개를 들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진무열을 바라봤다.
  • 여자로서, 그리고 숙의로서 그녀는 전하가 매일 그녀의 화양전에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 “하하, 좋소. 그대가 오지 말라고 해도 내가 매일 올 것이오!”
  • 진무열이 그녀의 탱탱한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 “다만, 서숙의는 조금 전처럼 부드럽고 내 말을 잘 들어야 하오.”
  •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순간, 서숙의는 얼굴이 달아오르며 너무 쑥스러워 답을 하지도 못했다.
  • 얼마 후, 그녀가 다시 예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 “전하, 말씀하신 대로 하셔야 하옵니다. 저 서유온은 전하의 말이라면 뭐든 들을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전처럼 신첩을 냉대하지만 말아 주시옵셔. 신첩은 이 행복을 잃을까 두렵사옵니다.”
  • 진무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이런 최고의 미색을 가진 깨끗하고 부드러운 여자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그가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을까?
  • 진무열이 뭐라 하려는 찰나, 최나인이 참지 못하고 귀띔했다.
  • “전하, 서장군과 곽자운나리께서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셨사옵니다.”
  • 침전 안에서 진무열이 벌떡 일어났다.
  • “저런! 중요한 일을 잊어버렸군. 서숙의, 환복을 도와주시오. 처남이 왔소.”
  • 서숙의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난처함이 나타났다. 큰 오빠가 왔는데 그녀는 전하와 침상 위에 있었으니 생각만 해도 낯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얼른 최나인을 불러 함께 진무열의 환복을 도와줬다.
  • 얼마 후, 둘은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별전으로 들어갔다.
  • 서문과 곽자운은 이곳에서 이미 차를 몇 잔이나 마셨다. 드디어 진무열이 나타나자 둘은 자리에 꿇어앉아 예를 갖추며 말했다.
  • “전하를 뵙사옵니다.”
  • 진무열이 얼른 다가가 둘을 일으켜 세우며 친근하게 웃었다.
  • “얼른 일어나시오. 자리에 앉게나.”
  • 진무열이 신하를 존중하는 모습에 곽자운은 몸 둘 바를 모르는 한편 의아했다. 그의 기억 속 왕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으니까.
  • 하지만 서문은 담담했다. 그는 아예 진무열의 “방식”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신하가 된 도리만 아니라면 그는 진무열과 대화조차 나누고 싶지 않았다.
  • 그는 진무열이 평소에 조정에서 저지른 짓과 여동생을 때린 일을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 그들이 자리에 앉은 후, 진무열과 서문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만 보기만 하여 분위기가 퍽 어색했다. 결국 진무열은 곽자운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 “곽경, 과인이 그대를 부른 이유를 알고 있소?”
  • 곽자운은 쉰 살이 가까워져 수염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공손하게 답했다.
  • “전하, 소신 잘 모르겠사옵니다. 전하께서 알려주시옵소서.”
  •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였소. 다만 자네가 이토록 큰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오.”
  • 진무열이 그를 중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줬다. 그러자 뜻을 잔뜩 품었으나 발휘할 곳이 없었던 곽자운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즉시 무릎을 꿇었다.
  • “전하! 소신이 이 한 몸 바쳐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 진무열이 만족한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곽경, 과인은 자네가 관중 일대의 자연재해로 인해 곤경에 처한 백성을 구휼하는 것을 전적으로 책임지기를 바라오. 그리 해주겠소?”
  • 곽자운은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전하께서 이토록 중대한 임무를 내게 맡기려 하다니!’
  • 그는 순식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전하, 백성을 구휼하려는 전하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신 그리하겠사옵니다!”
  • “우선 그보다 먼저 자네에게 비밀리에 맡길 임무가 있소.”
  • 진무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고 곽자운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엄숙하게 들었다.
  • 그와 동시에 서숙의가 손을 저어 별전의 모든 내관을 내보냈다.
  • “과인은 그대가 비밀리에 국고가 비어버린 것을 조사하길 바라오!”
  • 진무열의 말은 확신으로 가득했다. 그 말을 들은 서문이 저도 모르게 진무열을 바라봤다. 주색에 미쳐있던 왕이 지금 탐관의 부패를 조사하려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곽자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 했으나 이내 멈췄다. 그러자 진무열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 “경은 하고픈 말이 있으면 하시오. 과인은 그대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소. 그대를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하시오.”
  • 곽자운은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전하, 정말 마음을 먹으셨사옵니까? 고성국의 탐관과 부패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커다란 느티나무에 벌레가 득실거리니 만약 그것을 헤집으면 수많은 인물이 휘말려 있을 것이옵니다!”
  • 진무열도 당연히 그 생각을 했었기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 “과인은 임전무퇴의 결심이 있소. 혹시 곽경이 이 명을 받들기 어려운 것이오?”
  • 그 말에 곽자운이 수염을 흠칫 떨며 진지하게 바닥에 꿇어앉아 읊조렸다.
  •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내린 명이라면 이 곽자운은 주저 없이 따를 것이옵니다!”
  • “좋소, 아주 좋소!”
  • 진무열이 호탕하게 웃었다. 눈앞의 늙은이의 몸에서 강직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으며 이는 마침 그가 원하던 사람이었다.
  • “서숙의, 이따가 직접 과인을 대신하여 곽자운을 감찰어사 종 2품으로 책봉하여 관중 일대의 구휼, 원결(元結)과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책임지도록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