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열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좌태파 서문밖에 없었다. 나머지 태파는 거의 모두 안 씨 일가의 사람들로 지배되었다.
다시 말하여 안 씨 일가에서 역모를 꾸미려 한다면 진무열의 처지는 아주 위험할 것이다.
“청룡위의 대장군 자리가 비긴 했는데 말이야.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2만여 명의 병력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자리에 올릴만한 인재조차 없어 그는 더더욱 걱정되었다.
한참 고민을 해보다가 뭔가 확 떠올랐는지 그의 눈에서는 한 줄기의 빛이 보였다.
“무과를 치러 무과 장원을 뽑으면 되겠구나!”
“그래, 과인에 대한 충심을 지닌 무과 장원을 뽑으면 되는 거야, 한문 출신인 사람으로 말이야.”
진무열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면서 왔다 갔다 했다.
권신 자제 중에서도 얼마나 되는 사람이 안 씨 일가에 포섭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감히 중용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기 세력을 다시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여봐라! 당장 서 장군을 궁에 들라 하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서문이 도착했다.
진무열은 그에게 고성궁 후원을 걷자고 제안했다.
무과 장원을 뽑겠다는 진무열의 말에 서문은 조금 놀랐다.
‘조정의 신하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막돼먹은 왕이라고 비난까지 받은 사람이 맞아? 인재를 다스리는 법까지 알고 있단 말이야?’
진무열은 그의 우려를 알아챘는지 용포를 걷어 일어서고는 차분하게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서문은 처음에 그의 말이 그저 장난인 줄 알고 그리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진심인 것 같았다.
서문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드러난 얼굴이 숨겨지지 않았다. 등에 식은땀도 났다.
‘저 사람... 저 사람이 그 막돼먹은 왕 맞아?’
“서장군, 과인이 생각한 게 어떤 것 같소? 잘 될 것 같소?”
진무열은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서문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철퍼덕 무릎을 꿇고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전하! 참으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소신은 더할 나위 없이 탄복하옵니다!”
“좋소! 그럼 무과 장원을 빨리 뽑을 수 있게 준비해주오!”
진무열이 말했다.
서문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 우람한 진무열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오랫동안 막돼먹은 왕이라고 불리던 저자가 계속 멍청한 척을 해왔던 거 아니야?’
다음 날 조회에서 진무열은 무과 시험을 열겠다고 했다. 한문 출신의 자제이든 권신 자제이든 똑같이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명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 무과 장원이 금위군 청룡위의 대장군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조짐을 엿보였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조회는 떠들썩해졌다.
서문을 대장군으로 뽑았다면 안중원과 같은 권신들은 불쾌해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문 출신의 자제들도 모두 포함해 그중에서 무과 장원을 뽑는다고 하니, 그것도 청룡위 대장군이라는 큰 자리를 걸고 이러니 그들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안중원은 백관을 데리고 나서면서 견결히 반대했다.
“전하, 이미 그렇게 하시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소신들은 이 태극전에서 바로 죽음을 택하겠사옵니다, 그래도 정녕 마음을 돌릴 수 없겠사옵니까?”
이조판서 이봉주가 단호하면서도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예로부터 고성국에서는 한문 출신의 자제를 중용하고 귀족을 밀어낸 적이 없사옵니다! 전하! 이러시면 귀족들은 얼마나 낙심하겠습니까? 이러다 다른 일이라도 낸다면 더 큰 문젯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과인이 언제 귀족을 밀어낸다고 했느냐?”
“과인은 그저 한문 출신의 자제 한, 두 명 등용하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난리인 것이냐?”
그의 말을 들은 보수파 문인, 사대부, 사관은 지난 일을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전하, 선왕께서 말씀하셨지요, 고성국을 세우는데 여러 귀족이 큰 한몫을 했다고요. 지금 전하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근본을 잊는 게 아니겠사옵니까?”
“한문은 대체로 비천하니 어찌 전하 옆에 둘 수 있겠사옵니까!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 이런 졸렬한 꾀는 누구한테서 들었사옵니까?”
진무열은 목이 바짝 탔다. 여러 신하와 말싸움을 펼치려니 자기편이 하나도 없어 말싸움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마를 짚었다. 떠들썩한 신하를 내려다보니 머리가 아팠고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몇 번 이를 악물고 위엄을 세우려 했지만 결국 참았다.
‘급해서는 안 돼. 한문과 귀족 사이의 문제는 예로부터 해결하기 쉽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도 그는 안중원뿐만 아니라 모두의 반대를 감당하고 있었다.
결국 조회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고 끝났다.
진무열은 화양전으로 돌아가고는 화를 벌컥 냈다.
“쨍그랑!”
그는 청화자기 화병을 발로 차버렸다.
내관과 궁녀는 바닥에 떨어진 자기 조각을 부들부들 떨면서 주웠다. 모두 숨을 죽이면서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전하가 이렇게 화를 내본 적은 아마 몇 년 만일 것이다.
“사의대부가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내 생각이 졸렬해? 정말 내가 자기를 죽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보수파 문인들도 말이야, 감히 안중원의 말을 따르고 내 말은 안 들어? 무과 시험은 왜 막으려는 거야! 권신들이 다 휘어잡고 있는데 왜 한문을 쓰면 안된다는 거야, 쓸모없는 것들.”
진무열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원목 탁자를 또 엎어버렸다.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서숙의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작고 고운 손으로 차 한잔을 들고 진무열 곁으로 다가갔다.
“전하, 물 좀 마셔요.”
진무열은 아직 화가 사그라지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팔을 휙 걷어냈다.
“쿵!”
찻잔이 그의 팔에 맞히면서 날아갔고 서숙의도 그의 팔 힘에 중심을 잃어 바닥에 쓰러졌다.
진무열은 바로 미안한 마음에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미안하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오, 다른 궁녀인 줄 알았소.”
서숙의는 아직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괜찮사옵니다, 전하.”
“전하, 옥체를 보중하옵소서, 화를 내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께서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분명 다른 방법도 있겠지요. 굳이 신하들과 싸우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진무열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는 신하들을 위해 좋은 말을 해주고 있는데 너와 네 오라버니는 그들에게 장난 거리밖에 되지 않는구나.’
서씨 일가의 조상은 상인이었는데 역시 비천하다고 귀족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
오늘 조회에서도 많은 신하는 서문과 서숙의를 언급했다. 모두 그들이 전하에게 한문 출신의 자제도 무과를 볼 수 있도록 시켰다고 떠들어댔다.
뜻하지 않게 서문과 서숙의는 모두 이 일에 연루되어 귀족 신하의 미움을 샀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중원의 미움을 샀다.
다시 이 일을 생각하자니 진무열은 막 머리가 아파 났다. 그는 서숙의의 다리를 베고 있었고 서숙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머리를 주물러줬다.
그녀는 손재주가 좋았다. 조금 머리를 주물러줬을 뿐인데 진무열은 정신이 맑아지고 개운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그대의 손길이 제일 좋소.”
진무열은 눈을 감은 채 감탄하면서 말했다.
서숙의는 행복의 미소를 띠고는 그에게 말했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신첩은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전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송구하옵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오? 왕자를 많이 낳아주면 되지 않겠소?”
진무열은 추파를 던지면서 말했다.
서숙의는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고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