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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무과 풍파

  • 조회가 끝난 후, 진무열은 청문각으로 돌아왔다.
  • 어젯밤의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안시향에 대한 그의 우려는 없어지지 않았다.
  • ‘이 여자, 만만치 않군.”
  • 3개의 태파와 2개의 위로 구성된 14만여 명의 병력이 낙정에 투입되었다.
  • 진무열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좌태파 서문밖에 없었다. 나머지 태파는 거의 모두 안 씨 일가의 사람들로 지배되었다.
  • 다시 말하여 안 씨 일가에서 역모를 꾸미려 한다면 진무열의 처지는 아주 위험할 것이다.
  • “청룡위의 대장군 자리가 비긴 했는데 말이야.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2만여 명의 병력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 자리에 올릴만한 인재조차 없어 그는 더더욱 걱정되었다.
  • 한참 고민을 해보다가 뭔가 확 떠올랐는지 그의 눈에서는 한 줄기의 빛이 보였다.
  • “무과를 치러 무과 장원을 뽑으면 되겠구나!”
  • “그래, 과인에 대한 충심을 지닌 무과 장원을 뽑으면 되는 거야, 한문 출신인 사람으로 말이야.”
  • 진무열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면서 왔다 갔다 했다.
  • 권신 자제 중에서도 얼마나 되는 사람이 안 씨 일가에 포섭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감히 중용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 처음부터 자기 세력을 다시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 “여봐라! 당장 서 장군을 궁에 들라 하여라!”
  • 얼마 지나지 않아 서문이 도착했다.
  • 진무열은 그에게 고성궁 후원을 걷자고 제안했다.
  • 무과 장원을 뽑겠다는 진무열의 말에 서문은 조금 놀랐다.
  • ‘조정의 신하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막돼먹은 왕이라고 비난까지 받은 사람이 맞아? 인재를 다스리는 법까지 알고 있단 말이야?’
  • 진무열은 그의 우려를 알아챘는지 용포를 걷어 일어서고는 차분하게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 서문은 처음에 그의 말이 그저 장난인 줄 알고 그리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진심인 것 같았다.
  • 서문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드러난 얼굴이 숨겨지지 않았다. 등에 식은땀도 났다.
  • ‘저 사람... 저 사람이 그 막돼먹은 왕 맞아?’
  • “서장군, 과인이 생각한 게 어떤 것 같소? 잘 될 것 같소?”
  • 진무열은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의 말을 들은 서문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철퍼덕 무릎을 꿇고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 “전하! 참으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소신은 더할 나위 없이 탄복하옵니다!”
  • “좋소! 그럼 무과 장원을 빨리 뽑을 수 있게 준비해주오!”
  • 진무열이 말했다.
  • 서문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 우람한 진무열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 ‘설마, 오랫동안 막돼먹은 왕이라고 불리던 저자가 계속 멍청한 척을 해왔던 거 아니야?’
  • 다음 날 조회에서 진무열은 무과 시험을 열겠다고 했다. 한문 출신의 자제이든 권신 자제이든 똑같이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 그리고 명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 무과 장원이 금위군 청룡위의 대장군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조짐을 엿보였다.
  • 그 소식이 전해지자 조회는 떠들썩해졌다.
  • 서문을 대장군으로 뽑았다면 안중원과 같은 권신들은 불쾌해하고 말았을 것이다.
  • 하지만 이번에 한문 출신의 자제들도 모두 포함해 그중에서 무과 장원을 뽑는다고 하니, 그것도 청룡위 대장군이라는 큰 자리를 걸고 이러니 그들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 안중원은 백관을 데리고 나서면서 견결히 반대했다.
  • “전하, 이미 그렇게 하시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소신들은 이 태극전에서 바로 죽음을 택하겠사옵니다, 그래도 정녕 마음을 돌릴 수 없겠사옵니까?”
  • 이조판서 이봉주가 단호하면서도 큰 목소리로 말했다.
  • “예로부터 고성국에서는 한문 출신의 자제를 중용하고 귀족을 밀어낸 적이 없사옵니다! 전하! 이러시면 귀족들은 얼마나 낙심하겠습니까? 이러다 다른 일이라도 낸다면 더 큰 문젯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과인이 언제 귀족을 밀어낸다고 했느냐?”
  • “과인은 그저 한문 출신의 자제 한, 두 명 등용하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난리인 것이냐?”
  • 그의 말을 들은 보수파 문인, 사대부, 사관은 지난 일을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 “전하, 선왕께서 말씀하셨지요, 고성국을 세우는데 여러 귀족이 큰 한몫을 했다고요. 지금 전하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근본을 잊는 게 아니겠사옵니까?”
  • “한문은 대체로 비천하니 어찌 전하 옆에 둘 수 있겠사옵니까!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 “전하, 이런 졸렬한 꾀는 누구한테서 들었사옵니까?”
  • 진무열은 목이 바짝 탔다. 여러 신하와 말싸움을 펼치려니 자기편이 하나도 없어 말싸움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 그는 이마를 짚었다. 떠들썩한 신하를 내려다보니 머리가 아팠고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 몇 번 이를 악물고 위엄을 세우려 했지만 결국 참았다.
  • ‘급해서는 안 돼. 한문과 귀족 사이의 문제는 예로부터 해결하기 쉽지 않았어.’
  • 그래서 지금도 그는 안중원뿐만 아니라 모두의 반대를 감당하고 있었다.
  • 결국 조회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고 끝났다.
  • 진무열은 화양전으로 돌아가고는 화를 벌컥 냈다.
  • “쨍그랑!”
  • 그는 청화자기 화병을 발로 차버렸다.
  • 내관과 궁녀는 바닥에 떨어진 자기 조각을 부들부들 떨면서 주웠다. 모두 숨을 죽이면서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전하가 이렇게 화를 내본 적은 아마 몇 년 만일 것이다.
  • “사의대부가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내 생각이 졸렬해? 정말 내가 자기를 죽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보수파 문인들도 말이야, 감히 안중원의 말을 따르고 내 말은 안 들어? 무과 시험은 왜 막으려는 거야! 권신들이 다 휘어잡고 있는데 왜 한문을 쓰면 안된다는 거야, 쓸모없는 것들.”
  • 진무열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원목 탁자를 또 엎어버렸다.
  •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서숙의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작고 고운 손으로 차 한잔을 들고 진무열 곁으로 다가갔다.
  • “전하, 물 좀 마셔요.”
  • 진무열은 아직 화가 사그라지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팔을 휙 걷어냈다.
  • “쿵!”
  • 찻잔이 그의 팔에 맞히면서 날아갔고 서숙의도 그의 팔 힘에 중심을 잃어 바닥에 쓰러졌다.
  • 진무열은 바로 미안한 마음에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 “미안하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오, 다른 궁녀인 줄 알았소.”
  • 서숙의는 아직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 “괜찮사옵니다, 전하.”
  • “전하, 옥체를 보중하옵소서, 화를 내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께서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분명 다른 방법도 있겠지요. 굳이 신하들과 싸우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진무열은 쓴웃음을 지었다.
  • ‘너는 신하들을 위해 좋은 말을 해주고 있는데 너와 네 오라버니는 그들에게 장난 거리밖에 되지 않는구나.’
  • 서씨 일가의 조상은 상인이었는데 역시 비천하다고 귀족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
  • 오늘 조회에서도 많은 신하는 서문과 서숙의를 언급했다. 모두 그들이 전하에게 한문 출신의 자제도 무과를 볼 수 있도록 시켰다고 떠들어댔다.
  • 뜻하지 않게 서문과 서숙의는 모두 이 일에 연루되어 귀족 신하의 미움을 샀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중원의 미움을 샀다.
  • 다시 이 일을 생각하자니 진무열은 막 머리가 아파 났다. 그는 서숙의의 다리를 베고 있었고 서숙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머리를 주물러줬다.
  • 그녀는 손재주가 좋았다. 조금 머리를 주물러줬을 뿐인데 진무열은 정신이 맑아지고 개운해진 것 같았다.
  • “그래도 그대의 손길이 제일 좋소.”
  • 진무열은 눈을 감은 채 감탄하면서 말했다.
  • 서숙의는 행복의 미소를 띠고는 그에게 말했다.
  • “망극하옵니다, 전하. 신첩은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전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송구하옵니다.”
  • “어찌 그런 말을 하오? 왕자를 많이 낳아주면 되지 않겠소?”
  • 진무열은 추파를 던지면서 말했다.
  • 서숙의는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고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신첩도... 빨리 전하에게 도움이 되고 싶사옵니다.”
  • “전하의 대를 이을 왕자나 왕녀를 낳을 수 있다는 건 신첩의 영광이옵니다.”
  • 진무열은 그윽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 ‘이런 여자가 내 여자라니, 더는 소원이 없구나.’
  • “후훗, 더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소.”
  •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숙의를 침상로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