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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궁궐 안팎으로 권력이 높은 안씨 가문

  • 태극전.
  • 문무백관이 숙연하게 서 있었다.
  • 금린용 기둥이 커다랗고 휘황찬란한 궁전을 받치고 있었고 중생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 진무열은 살면서 TV 안의 왕을 본 적이 있었으나 그가 직접 왕이 되어보니 뭇사람이 자신을 우러러볼 땐, 남자의 야심과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천하는 내가 가질 거야! 폭군이든, 혼군이든 상관없어. 내가 꿀리는 대로 할 거야!’
  • “전하, 관중 일대에 심한 가뭄으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백 리에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백성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없으니 전하께서 속히 결정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 붉은색 옷을 입은 늙은이가 옥 지팡이를 짚고 나와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외쳤다.
  • ‘자연재해가 이토록 심각하면 큰일이야!’
  • 그는 왕의 위엄있는 말투로 말했다.
  • “휼민(恤民)하여라, 백성을 구휼하여라! 호조 판서, 더 큰 흉년을 맞이하기 전에 즉시 고성통폐(고성국의 화폐)와 식량을 나누어 관중 일대를 지원하여라.”
  • 그 말에 조정의 신하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조정에 돈이 남아 있던가?
  • 흰 수염을 기른 한 삐쩍 마른 노인이 신하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가늘고 긴 두 눈을 가졌는데 속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었다. 그 노인이 바로 호조 판서 안중원이자 안귀인의 아버지였으며 조중 권신(权臣)의 우두머리였다.
  • 그는 고개를 숙이며 난처한 어조로 말했다.
  •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국고의 고성통폐가 바닥났사옵니다. 지난해 용천신궁을 건조하였고 이번 해는 고성궁 후원을 수선하여 국고가 거의 텅 비어버렸사옵니다. 현재 국고에 남은 원결은 오십만 냥 뿐이옵니다. 이 정도로는 구휼은 고사하고 조정의 지출을 충당하기도 넉넉지 않사옵니다.”
  • ‘오십만 냥?’
  • 진무열은 경악했다. 그의 기억 속 고성국은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여 주변국을 아울러 흥하던 국가였는데 어떻게 국고에 오십만 냥밖에 없는 걸까?
  • 그가 유일하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라곤 신하 중 탐관이 있어 사사로이 돈을 먹어버렸다는 것뿐이었다.
  • “당장 장부를 가져오거라. 과인이 살펴봐야겠다!”
  • 그의 어조는 불만스러웠다. 안중원의 표정이 굳어지며 의문이 생겨났다. 왜 왕께서 오늘 갑자기 장부를 보려 하는 걸까?
  • 하지만 그는 조금도 긴장하는 기색 없이 즉시 장부를 꺼내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 얼마 후, 장부가 진무열의 손에 들려졌고 한참 장부를 들여보던 그의 안색이 흐려지며 탄식했다.
  • 알고 보니 몸의 주인이 정말로 국고의 돈을 써버렸다. 멀쩡한 궁을 두고 기어코 용천신궁을 만들어 걸핏하면 안귀인를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놀러 다녔는데 매번 거액의 지출을 동반했다.
  • 하지만 진무열은 고성국이 엄청나게 강성하여 몸 주인이 아무리 흥청망청 쓴다고 한들 국고가 바닥날 정도가 되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그 말은 즉, 궁궐 안에 썩은 벌레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 ‘탐관오리를 조사하기엔 아직 너무 일러. 난 아직 제대로 발을 붙이고 서지도 못했어. 조정 안의 세력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니 섣불리 행동하면 오히려 화를 입을 거야.’
  • 그는 속으로 생각하다가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 “즉시 용천신궁의 건조를 멈추어라. 고성궁 후원과 석묘의 수선 작업도 전부 그만두어라! 그리고 매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매각하여 고성통폐로 바꿔 구휼을 진행하여라!”
  • 그의 말이 떨어지자 조중의 신하들이 두 귀를 의심했다. 조정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조용했다.
  • 오늘 전하께서 왜 평소와 이토록 다르실까? 신궁 건조를 멈추고 백성을 구휼하라니, 예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안중원의 노련하고 악랄한 두 눈이 번뜩이며 진무열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으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 “전하, 현명하시옵니다! 백성들의 살길이 열렸사옵니다!”
  • 붉은 관복을 입은 늙은 신하가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범벅이 되어 외쳤다. 그의 모습이 진무열의 마음을 흔들었고 그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 그 신하가 바로 사대부의 곽자운이었다!
  •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누추한 집안의 늙은 신하로서 오롯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뿐으로 살며 줄곧 왕을 찾아 백성을 구휼하려 했으나 몸 주인이 여색에 빠져 그를 만나주지 않았을뿐더러 그에게 태형까지 내렸었다.
  • 진무열이 후회하며 나지막이 얘기했다.
  • “좋다. 이 자는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여 등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니라.”
  • 바로 이때, 안중원이 슬그머니 자기 측근에 있는 신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신하가 뜻을 알아채고 얼른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 “전하, 소신이 상소를 올리고 싶나이다.”
  • “말해 보아라.”
  • 진무열이 주저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 “검남 도창산 일대에 마적이 판을 치고 다니며 나날이 그 세력이 커지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이미 1만여 명으로 확장되어 곳곳에서 살인과 강도질을 일삼아 백성과 상인이 멀리 피하고 있사옵니다. 만약 조정에서 발병(出兵)하지 않으면 훗날 엄청난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사옵니다!”
  • 그 말을 들으니 진무열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성국은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는 걸까? 천재가 들이닥쳤다 하더니 이젠 마적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님은 틀림없었다!
  • “발병하여라!”
  • 그가 과감하게 명령하며 장군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을 훑었다.
  • “누가 갈 것이냐?”
  • 뭇 장군들이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누가 감히 나서서 쟁취할 수 있을까? 이는 이미 안씨 가문이 예정한 일과 다름없었다. 그때 한 문관이 얼른 나서서 제안했다.
  • “전하, 소신은 안명, 안장군께서 가시는 것이 타당하다 생각되옵니다!”
  • “맞습니다. 안장군은 용맹하고 전투에 능해 마적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사옵니다.”
  • “안장군은 온 마음을 다해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며 또한 금오위의 대장군으로서 병법에 통달하여 도창산의 난을 평정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옵니다!”
  • “…”
  • 진무열이 싸늘하게 눈앞의 광경을 지켜봤다.
  • ‘오호라, 조정안 절반이 넘는 신하가 모조리 안씨 가문의 장자 안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한패가 틀림없구나.’
  • 많은 장군이 감히 나와 그들과 경쟁하지 못했다.
  • ‘안씨 일가의 세력이 대체 얼마나 큰 걸까? 호조 판서, 장군, 귀인가 모두 한 가문에서 나왔어.’
  • 진무열은 고대에 이런 식으로 권력이 기울여져 조정이 난잡해진 경우는 수두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다른 장군들은 나서고 싶은 생각이 없단 말인가?”
  • 그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물었다. 그냥 묻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타협하고 싶지 않은 물음이었다.
  • 뭇 장군들이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안씨 가문과 사이가 좋았으며 일부 장군만이 안씨 가문과 서로 합이 맞지 않았으나 나선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전하, 다들 다른 의견이 없으니 소신이 보기엔 안명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책봉하여 전군을 통솔해 마적을 무찌르게 하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 청색 관복을 입은 행동거지가 기품있는 노인이 점잖게 웃으며 앞으로 나와 말했다.
  • 그 말을 듣자 진무열은 머리가 펑 터지는 기분이었다!
  • 이 노인의 이름은 이종서였고 고성국의 영의정이었다. 그마저 안씨 가문과 한패란 말인가?
  • ‘제기랄, 이건 미쳤어!’
  • 동시에 검은 갑옷을 입은 젊은 장군이 앞으로 나왔는데 그가 바로 안명이었다.
  • “전하, 소신이 반드시 전하의 걱정을 덜어드리겠사옵니다. 7일 내로 도창산 일대의 마적을 모조리 뿌리 뽑겠나이다!”
  • “안장군의 기개가 대단하옵니다! 소신이 상소를 올리오니 안장군을 마적 토벌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주시옵소서!”
  • “전하, 소신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 “…”
  • 누군가 먼저 나서서 무릎을 꿇으며 진무열에게 안명을 마적 토벌의 총사령관으로 책봉하라 요구했다. 마치 진무열이 그리하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 진무열은 속에서 분노가 들끓는 것을 느꼈다. 이는 명백히 그에게 안명을 책봉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 총사령관이 함부로 책봉할 수 있는 자리었던가? 만약 그렇게 되면 모든 장군이 그의 지휘하에 있게 되는데 그 권력이 대체 얼마나 커진단 말인가?
  • 게다가 반대하는 신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진무열의 기억 속 몸 주인은 너무 막돼먹어 주색에 빠진 채 안씨 가문을 맹신하여 이런 국면을 만들었다.
  • 진무열이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며 조정을 훑어보다 기골이 장대한 한 중년 장군을 보자 시선이 고정되었다.
  • 그가 바로 서문이었다. 그는 낙정 좌태파의 대장군이자 서숙의의 친오빠였으며 충심이 갸륵하였다!
  • 하지만 그 역시 서숙의과 마찬가지로 안씨 가문이 권력을 함부로 확대하는 것에 불만을 품어 그들의 눈 밖에 나게 되어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밀려난 처지였다.
  • 언젠가 진무열이 서숙의를 죽도록 때린 후, 화를 누를 수 없었던 서문이 욕을 몇 마디 한 것이 진무열의 귀에 들어가 태형 100대를 맞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
  • 그러므로 서문은 왕의 신하로 살고 있으나 그 속은 왕과 한없이 멀었다.
  • 이때, 진무열은 커다란 위기감을 느꼈다. 권신이 횡포하고 충신이 멀리하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닐까?
  •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고 그의 한마디는 조중에 천둥처럼 내리쳤다.
  • “소문 장군, 그대가 도창산의 난을 해결할 수 있는가?”